백석·이상, 조선의 힙스터들이 쓰고 그린 잡지 한자리에
‘조광' ‘창조’ 등 근대 잡지 80종 조명

일제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워버리려 했던 1938년. 백석은 만주로 떠나기 전 시를 썼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시는 조선일보사가 만든 여성 잡지 ‘여성’(1936년 창간)에 수록됐다. 백석은 편집장이었다. 일제강점기 가장 많은 호수(통권 57호)를 발행한 여성 잡지였다. 가정주부, 중산층 여성 등이 주 독자층이었다. 풍부한 화보와 읽을거리로 매호 절판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상업적 여성지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이 28일부터 한국잡지협회와 함께 ‘모던 매거진(Modern Magazine)-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전시를 열었다. 1896년 국내에서 처음 발행된 것으로 알려진 잡지부터 평소 쉽게 접하지 못했던 희귀 근대 잡지까지 약 80종의 자료를 한자리에 모았다. 근대의 잡지는 백석 같은 당대 ‘힙스터(Hipster·자신만의 멋과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활동했던 뉴미디어였다는 뜻을 전시명에 담았다. 김희섭 중앙도서관장은 “100여 년 전 잡지는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던 문화 선구자들의 열망을 담아낸 중요한 매체”라며 “잡지가 조선의 근대 문화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살펴보고자 기획했다”고 말했다.

신문사가 주도한 잡지들은 일제강점기 대중문화의 중심이 됐다. 1935년 조선일보사가 창간한 ‘조광’은 이상의 ‘날개’ 등 당대 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발표 무대 중 하나였다. 특히 첫머리 기사를 화려한 사진과 화보로 시작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김민영 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의 아침’이란 의미를 담은 조광은 신문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동시대 문화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당시 동아일보사의 ‘신동아’와 ‘신가정’, 매일신보사의 ‘월간매신’ 등도 당대 인기를 끌었다.

소파 방정환의 아동 잡지 ‘어린이’(1923년 창간)원본도 만날 수 있다. 훈육의 대상이었던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이광수, 박태원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윤석중이 편집을 맡아 일제 말 어려운 여건 속 수준 높은 아동 문학을 소개했던 ‘소년’(1937년 창간, 조선일보사) 등도 함께 전시된다.

당시 잡지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문예지의 창간과 신문학 운동이었다. 김동인·주요한 등이 1919년 창간한 ‘창조’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로 불린다. 계몽주의적 문학을 극복하고 자연주의 문학을 개척하고자 했던 염원이 담겼다. ‘폐허’, ‘백조’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문예 동인지로 불렸다. 이시우, 이상 등이 참여한 ‘삼사문학’(1934)은 문단에 초현실주의 바람을 일으켰다. 김환기가 표지화와 삽화를 그렸다. 정지용·박태원 등의 문예지 ‘시와소설’(1936)은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었다.

이 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출판사 ‘신문관’(최남선 설립)의 잡지 ‘소년’(1908) ‘청춘’(1914)을 비롯해 1896년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최초의 잡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 등이 전시된다. 전시작 중 일부는 영인본을 통해 직접 읽을 수 있다. 전시는 6월 2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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