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나태주의 인생 일기]

인간은 의외로 감성적이다. 아니, 감정적이다. 행복이라 말하고, 우울이라 말하고, 불행이라 하고, 소외감이라 하는 것들 모두가 감정이 이끄는 하위 개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도 남는 일이다.
불경에 근거해 오욕칠정(五慾七情)이라고 말할 때 그 오욕칠정이 하나같이 감정의 세항들인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도 오욕칠정에 근거한 것이고, 성경에서 경계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역시 감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시에서 꿈과 위로를 찾는 사람들

그런데도 교육이나 평가, 사회생활에서는 한사코 이성적인 쪽만 강조한다. 감성이란 것이 워낙 모호하고 다루기 까다로우니 아예 그쪽으로는 눈을 감아버리고 이성 쪽으로만 기우는 것이리라. 시(詩)도 감성에 관한 것이다. 애당초 시의 소재가 감정이고 시의 출발이 감성이다. 그러나 감성이나 감정이란 것이 무형이고 자취가 없다는 데 난관이 있다.
이와 같은 감정을 어떻게 하면 언어라는 도구로 재치 있고 순발력 있게 표현하느냐가 시의 출발이고 우선적인 과제다. 그것이 시의 시급한 문제고 중차대한 과업이다. 독자의 요구 또한 이즈음에 머물러 있지 싶다.
내 마음을 내 마음같이 표현한 시가 없을까? 그것이 오늘날 독자들이 시집을 읽으면서 찾고 있는 보물이다. 나의 마음에 맞는 시를 넘어서 독자 마음에 맞는 시를 쓰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오늘날 시인들은 알아야 한다.
올해도 여러 차례 문학강연에 나갔다. 어른들 자리에도 나가고 중·고등학교 학생들 자리에도 나가고 심지어 교회에도 나갔다. 번번이 강연장에 사람들이 몰리고 한 시간도 넘는 긴 시간을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걸 보면서 스스로 놀란다. 별스럽지도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귀를 세우고 열심히 듣는다. 그야말로 개떡같이 하는 말을 찰떡같이 듣는다. 그러니 이쪽에서도 정성껏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런 모습을 문화적 갈증 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먹고 사는 문제, 의식주 문제로 아주 많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한시름 내려놓고 살게 됐다. 그런 다음 남는 것은 문화적 욕구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일견 시인들은 오늘의 독자들이 시집을 잘 읽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시집이 안 팔린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독자는 읽을 만한 시집이 많지 않고 시가 너무도 어렵다고 불평한다. 이 끝없는 줄다리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좋은 시는 노래·철학·인생과 같다
나도 초기에는 내 마음에 치중하는 시를 써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나 혼자만의 감정 놀이에서 타인의 그것도 좀 챙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오게 됐다. 시는 일인칭(나)의 고백과 하소연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일인칭에서 그치면 안 된다. 이인칭(너)에게로 건너가서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그래야 시가 숨을 쉬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다시금 이인칭이 다른 이인칭으로 건너가면 삼인칭이 된다. 이렇게 시는 보편성을 얻는 것이다.
무릇 시는 거기까지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어떤 고민을 해야만 할까? 무엇(내용)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표현)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나의 시에 요구한다. 짧아져라. 단순해져라. 쉬워져라. 그리고 임팩트(impact)를 지녀라. 번번이 그럴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다 보면 독자들 가까이 가는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오늘날은 디지털 시대다. 컴퓨터와 휴대폰과 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대다. 이제는 시의 형식이나 표현도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사실 앞에서 제시한 나의 요구들은 시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독일 시인 괴테는 이런 말을 했다. “좋은 시란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에게는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다.” 이에 더해 정말로 좋은 시는 세대와 계층, 종교와 시대를 초월해서 정서적 통일과 평화, 화합과 행복을 선물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인들은 흔히 유명한 시와 유명한 시인을 꿈꾼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한 걸음 나아가 유용한 시인과 유용한 시를 꿈꾼다. 이름보다 작품이 우선한 시인을 말하는 것이고 작품의 쓸모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하다. 쓸모. 시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 어떠한 쓸모인가? 사람을 살리는 쓸모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는 게 힘들다 하고 지쳤다 하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심지어 불행하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 말을 좀 귀 기울여 들어 달라 사정하고 무슨 말이든 위로해 달라 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거리를 헤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거리를 헤매는 것이다.
두루 사람을 살리는 약이 돼야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이제는 정신과 의사와 종교인과 시인들이 손잡고 나서서 오늘날 헤매고 아파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시는 단순한 문장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살리는 그 무엇이 돼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밥이고 물이고 공기다. 시가 직접 그런 유익이 되지는 못할망정 힘든 사람들을 부축하고 위로하고 동행하고 기도해 주는 자리에 서야 한다고 본다. 소량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약이다. 이 시대 시는 모름지기 사람을 살리는 약이 돼야 한다. 세로토닌이나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우울증에 도움을 주듯이 시도 마땅히 마음의 도파민이 돼야 하고 세로토닌이 돼야 한다. 그 길만이 시인과 시의 궁극적 가치이고 시인의 역할인 것이다.
이 시대의 모든 시와 시인을 축원하는 마음으로 나의 시 한 편을 여기에 옮기고자 한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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