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UAE의 OPEC 전격 탈퇴, 트럼프 외교의 승리?

권순욱 2026. 4. 2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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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집요한 ‘오일 카르텔 파괴’ 결실
‘호르무즈 봉쇄’, 위기를 기회로 바꾼 미-UAE
이란 공습 피해 큰 UAE, GCC 외면에 결심
사우디의 고립과 중동 ‘각자도생’ 시대 개막
석유수출국기구(OPEC) 로고가 새겨진 석유 드럼통 모형.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이란 공습이 세계 경제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면, 아랍에미레이트(UAE)의 석유수출기구(OPEC) 전격 탈퇴는 지각 변동 수준의 충격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던 ‘오일 카르텔’은 해체 위기에 직면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신경을 긁으며 러시아와 중국과 밀착하는 등 이중 행보를 걷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당사자로 전락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UAE는 호르무즈 바깥에 있는 푸자이라 항구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단했다. 이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걸으며 세계 에너지 시장의 질서 재편에 나서게 됐다.

UAE는 2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5월 1일 자로 카르텔 탈퇴를 예고했다. UAE는 “이번 결정은 국내 에너지 생산에 대한 투자 가속화를 포함해 UAE의 장기적인 전략적·경제적 비전과 진화하는 에너지 시장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역할에 대한 의지를 강화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중동의 금융·관광 허브로 도약한 UAE가 점진적인 유가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을 높여 국제시장에 석유를 최대한 많이 팔겠다는 자국 이익 중심의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UAE의 OPEC·OPEC+ 탈퇴 선언은 예견된 ‘독립 선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 변화를 넘어선다는 평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해 온 ‘반(反) 카르텔’ 외교와 ‘미국 우선주의’가 거둔 상징적 승리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번 사태는 이란과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중동의 전통적인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미국 주도의 새로운 에너지 질서를 재편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시절부터 OPEC을 향해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거나 “유가를 인위적으로 올려 세계 경제를 좀먹는 존재”라고 맹비난했다. 그의 외교 철학에서 OPEC은 자유 시장 경제를 방해하는 ‘적대적 독점체’였다. 이번 UAE의 탈퇴는 이러한 트럼프의 압박이 중동의 핵심 우방국인 UAE를 카르텔로부터 이탈시키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은 이란과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집단적 결속력보다는 UAE와 같은 개별 국가와의 전략적 밀월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OPEC의 가격 통제력을 무력화하는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란 전쟁으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은 사상 최악의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 위기를 역설적으로 사우디 주도의 질서를 흔드는 카드로 활용했다. 해협을 우회할 수 있는 푸자이라 항구를 보유한 UAE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UAE가 사우디의 감산 요구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원유를 증산·수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 이는 이란에 대한 강력한 압박인 동시에,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려 했던 사우디에 대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이 “UAE의 탈퇴는 트럼프에게 커다란 외교적 승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그간 사우디는 OPEC을 통해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하며 중동의 맹주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핵심 동맹이었던 UAE의 이탈로 ‘오일 카르텔’의 근간이 흔들리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와의 관계에서도 철저히 ‘비즈니스적 접근’을 취하며, 더 이상 사우디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해왔다. UAE가 탈퇴 과정에서 사우디와 전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중동 국가들이 미국의 새로운 질서 안에서 사우디라는 ‘중간 관리자’를 거치지 않고 각자도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한때 형제국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양국은 예멘 내전에 공동 참전하면서 대리 세력 지원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어왔다. 사우디가 예멘 정부군(PLC)을 지원하는 반면, UAE는 남부 분리주의 세력(STC)을 밀어주며 동맹은 갈등 관계로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1월 사우디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UAE 측 거점인 아덴을 함락한 사건은 UAE를 결정적으로 자극했다. 이후 UAE은 예멘에서 잔류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켰고 양국의 군사 동맹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번 이란 전쟁 중에도 UAE는 이란의 공습으로 직접 타격을 받았지만, 사우디가 주도하는 GCC(걸프협력회의)의 소극적인 대응에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됐다. 전쟁 초기 생명줄과 같은 푸자이라항과 제벨알리항이 이란의 드론 및 미사일 공격에 노출되었을 때 UAE는 GCC의 공동방위체제인 반도방패군의 즉각적인 가동 또는 강력한 공동 군사 대응을 기대했지만 GCC는 여전히 소극적이었고 이 때 UAE는 ‘오일 카르텔’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결심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GCC의 협력을 받지 못한 UAE는 독자적인 방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한국에 무기 구매를 긴급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이란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이 가시화되면서 요격 체계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UAE는 이란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소모된 천궁-II 요격탄의 보충을 위해 우리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고, 한국 정부는 유도탄 30여기를 전격적으로 우선 납품하며 화답하기도 했다.

또한 UAE는 기존에 계약된 잔여 천궁-II 포대(총 8개 포대 중 남은 분량)의 인도 시기를 대폭 앞당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실전에서 천궁-II가 100%에 가까운 요격률을 기록하며 성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UAE의 OPEC 탈퇴는 트럼프 대통령이 꿈꿨던 ‘저유가와 미국 중심의 에너지 패권’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닦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전쟁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면 카르텔의 간섭에서 풀려난 UAE의 증산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셰일 오일 업계와 결합해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노르디아의 얀 폰 게리히 수석 분석가는 로이터 통신에 “UAE는 더 많은 석유 생산을 원한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유가에 부정적(하락) 요인이 될 것”이라며 “전쟁이 끝나면, OPEC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UAE를 모델 삼아 다른 산유국들의 이탈을 은밀히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60년간 지속된 ‘OPEC의 시대’가 저물고 미국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새로운 시대가 개막된다는 걸 의미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대이란 공습이 뜻밖의 결말을 향해 가고 있다. 출구전략을 찾지 못하고 궁지에 몰렸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백악관에 울려퍼지고 있다.

권순욱 기자 kwonsw8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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