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근미래의 풍경] 인간 기자의 마지막 ‘뻗치기’, AI는 조용히 그 노하우를 삼켰다

장강명 소설가 2026. 4. 2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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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기성세대의 쓸모
50대 베테랑의 취재 요령을 AI 안경 쓴 테크기업 인턴이 습득
식당·학원까지 비법 학습… 인간의 지식, 다음 세대에도 유용할까

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일러스트=양진경

“아까 경찰과는 무슨 대화를 나누신 건가요?” 인턴 기자가 물었다. 인턴기자는 테가 지나치게 큰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 4선 국회의원의 집 앞 골목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순찰차가 한 대 서 있었다.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제가 신문기자라고 말하고 명함 한 장 드렸습니다.” 50대 후반인 전문 기자가 아들뻘인 인턴기자에게 공손하게 대답했다. 한때 정치부장을 지낸 그의 직함은 그냥 ‘전문기자’였다. 구체적인 담당 분야가 없는, 그냥 전문기자. 그도 가끔 자기가 어떤 분야의 전문기자인지 궁금했다. 망해 가는 언론계에서 생존하는 게 전문인 기자?

“경찰을 취재하신 게 아닌가요?”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데요." “그러면 경찰한테 명함은 왜 주신 건가요? 죄송합니다, 꼬치꼬치 여쭤봐서…. 그런데 이놈의 안경이 그게 궁금하다네요." 인턴기자가 넉살 좋게 웃었다. 인턴기자는 한국의 대기업 네카팡이 만든 최신형 AI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인턴기자는 네카팡에서 급여를 받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석 달간 일하며 고참 기자들의 취재 요령을 가까이에서 취재해서 동영상 기록을 만드는 것이 인턴 기자의 임무였다. 인턴기자는 신문사 기자들이 아니라 네카팡의 지시를 받았다. 그 지시가 AI 안경을 통해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저 경찰과 경찰 로봇한테 제가 의심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리려고요. 요즘 정국이 불안하니 만에 하나 테러가 발생할까 봐 경찰서에서 배치한 방범 인력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 국회의원이 귀가할 때까지 여기서 서성일 예정이거든요. 경찰 입장에서는 수상해 보이겠지요. 명함이 이런 때 쓸모가 있답니다.” “이게 그 ‘뻗치기’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이제 저는 하염없이 그 의원 양반을 기다릴 거고, 별 소득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인턴기자 분은 먼저 퇴근하시죠.” 인턴기자는 함께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전문기자는 막지 않았다. 그는 인턴기자에게 지시를 내릴 처지가 아니었다.

여러 빅테크 기업이 자신들의 AI가 인간이 만든 모든 문서를 학습했다고 선언했다. 어떤 기업은 AI의 다음 학습 목표를 중력과 관성, 마찰 등 현실 세계의 운동 법칙으로 잡았다. 어떤 기업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수성과 표정, 분위기를 AI에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네카팡은 각 업계에 퍼져 있는 암묵지(暗默知), 즉 ‘언어로 명시되지 않은 노하우’를 수집하겠다고 했다. 네카팡은 파견 인력 수천 명을 채용해서 AI 안경을 씌우고 사회 각 업계로 보냈다. AI와 로봇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업계들이었다. 파견 인력들이 그 업계의 인간 경력자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노하우, 문서화되지 않은 지식을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하겠다고 했다. 그런 파견 인력을 받는 기업에 네카팡이 거액의 인턴 교육비를 지급하고 네카팡 AI와 로봇 구독료를 깎아줬다.

“그 의원은 이미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집 앞에서 밤에 또 만나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인턴기자가 물었다. “그 의원은 국회에서는 통합하자는 메시지를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집에 들어가다가 기자한테 붙들려서 속내를 드러내는 상황이 연출되면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의원 입장에서는 다음 날 ‘그 기자가 내 말을 왜곡한 거다’ 하고 발뺌하기도 좋고요.” 전문기자의 설명에 인턴기자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인을 일식집에서 비밀스럽게 만나 정보를 듣는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 신문사 오기 전에는 어느 업계의 노하우를 수집했나요?” 이번에는 전문기자가 인턴기자에게 물었다. “작은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그 전에는 태권도 학원에서 일했고요.” ”식당? 요리법은 이미 AI가 어지간한 요리사들의 비법을 다 학습하지 않았나요?" “작은 식당에 맞는 서빙 노하우가 따로 있더라고요. 뜨거운 냄비는 테이블 모서리에 놔야 한다는 식으로요. 냄비를 테이블 가운데 놓으려고 하다가 엎으면 큰일 나거든요. 모서리에 놓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갑니다.” 듣고 보니 서빙 로봇에게는 유용한 지식이겠구나 싶었다. ‘언젠가 취재 로봇도 나오게 될까? 취재 로봇에게 뻗치기 요령이 필요할까? 내가 가진 지식은 과연 다음 세대에도 유용할까?’ 전문기자는 그 질문들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다. ‘미래의 저널리즘에도 뻗치기가 필요하다면, 분명 인간보다야 로봇이 더 잘하겠지. 로봇은 화장실에 가지도 않고, 졸지도 않을 테니.’

“저… 혹시 오늘 그냥 댁에 들어가기 싫으시면… 저랑 한 잔 하고 가셔도 됩니다. 네카팡에서 회식비를 전액 지원해줍니다. 회식 때 유용한 노하우를 많이 들을 수 있다면서요.” 인턴기자가 전문기자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전문기자는 젊은 후배들과 술자리를 같이한 적이 최근 1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다들 기성세대를 불편해하니까. 뭐라도 조언을 할라치면 꼰대로 여기니까. 누구도 원치 않았던 지식을 테크 기업이 거액을 들여 사려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못해 코믹했다. 아니오, 제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하고 전문기자는 정중히 사양했다. 그는 인턴기자를 후배라고 여기지 않았다. 저널리즘의 미래도 그 인턴기자에게 달려 있지는 않았다. 인턴기자가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네카팡의 파견 인력 자리를 따낸 인재임은 알았지만. 전문기자와 인턴기자는 말없이 4선 의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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