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손으로 지문등록…“한국생활 긴장되지만 설레요”

광주일보 2026. 4.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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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농촌으로 ‘찾아가는 이동출입국 서비스’ 가보니
농번기 계절근로자 편의 제공…라오스인 등 400여명 등록
근로자·고용주 모두 행정부담 호소…현장 지원 확대키로
27일 오후 3시께 나주시 완곡면 나주시농업기술센터 1층 대강당에서 라오스 국적 계절근로자들이 언어소통도우미 와리따씨의 안내에 따라 지문 등록을 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3시께 나주시 왕곡면 나주시농업기술센터 대강당(400여㎡) 은 라오스 국적 계절근로자 120여명으로 가득했다.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운영하는 ‘찾아가는 이동출입국 서비스’를 받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지난 3월 말과 4월 초 라오스에서 나주시로 입국한 계절근로자들이었다.

광주출입국사무소는 이날 현장에서 이동출입국 서비스를 진행했다. 농번기철을 맞아 인력 수요가 집중되면서 계절근로자들이 지문 등록을 위해 광주까지 일일이 찾아오는 불편함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찾아가는 사무소’를 운영했다.

현장을 찾은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은 낯선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도 언어소통도우미(통역) 와리따(여·29)씨의 “모자 벗어주세요”, “손 올려주세요” 등 라오스어 지시를 받아 척척 지문을 등록했다. 지문을 등록하는 과정에서도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 와 손에 흙이 묻어 지문 인식이 잘 되지 않는 등 사례가 잇따라 출입국사무소 직원들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복도에도 100여 명의 계절근로자들이 줄을 지어 통장 개설 여부와 사증 발급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기다리느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이날 오후 8시에야 마무리됐다. 이날 현장을 찾아 지문 등록을 마친 계절근로자만 397명에 달했다.

현장은 계절근로자들과 고용주들의 어려움과 부담감을 호소하는 자리였다.

특히 의료 문제의 경우 한 목소리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난해 이어 올해 4월 한국으로 재입국한 루크타(여·29)씨는 “지난해 고구마를 캐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치료를 받고 싶어도 일정이 바쁘고 병원을 가기 어려웠다”며 “결국 약국에서 파스와 진통·소염제를 사서 버텼다. 몸이 아파도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냥 참고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말리타완(여·28)씨도 “일주일 전 소고기를 먹다가 이가 부러졌는데, 치과 치료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보험이 되는지도 몰라 아직 병원을 가지 못했다”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알지만 비용이 많이 나올 것 같아 걱정이 커 참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사소통 문제도 한국에서의 불편함을 더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남마칸한(22)씨는 “작업 지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실수할까 걱정되고,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바로 물어보기가 쉽지 않다”며 “잘못할까 봐 눈치를 보면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맛투찬(26)씨는 “라오스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어 밭일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한국은 트랙터 등 기계를 많이 써 작업 방식이 달라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며 “작업 방법을 배우고 싶어도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 번에 익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인 고용주들이라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사증 발급부터 통장 개설까지 고용주가 대부분의 행정 절차를 책임져야 하는 구조 등으로 인한 부담감을 호소하는 고용주들이 잇따랐다.

산포면에서 부추 농사를 짓는 곽승룡(59)씨는 “계절근로자 지문등록을 하는 데 두 달 전에 미리 예약을 잡아야 하고, 당일에도 3~4시간씩 대기해야 한다”며 “농장주가 모든 걸 도맡아 해야 하니 챙길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인건비가 더 비싼 인력사무소에서 짧게 데려다 쓰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겠나”고도 했다.

배 농사를 짓는 김모(50)씨도 “계절근로자를 4년째 쓰고 있지만 사증 발급부터 지문 등록까지 전부 출입국관리소를 직접 찾아가 처리하는 것이 큰 부담”이라며 “인력도 부족한 농번기에 고용주가 직접 데리고 다니는데, 이번엔 광주출입국사무소에서 출장 서비스를 해주니 한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향후 찾아가는 지문 등록 서비스를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남 농촌지역에 배정된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2021년 343명에서 올해 1만5895명까지 40배 이상 급증하면서 행정 수요까지 덩달아 늘고 있는데다, 계절근로자와 농장주 등의 고충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어 향후 지원사업 등 방향 설정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출입국사무소측 판단이다.

유은주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 체류팀장은 “농번기에는 근로자와 농민 모두 행정기관 방문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현장 서비스를 마련했다”며 “등록 편의를 높이는 동시에 현장의 고충도 함께 파악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주=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나주 글·사진=하성민 기자 hs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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