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레고 같은 차’ 시대

이인열 기자 2026. 4. 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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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전거 대리점에 가면 구매자의 나이와 평소 운동 능력, 출퇴근 거리를 살핀 뒤 그에 맞는 배터리 용량과 프레임 강도를 제안한다. 사용자의 페달링 습관에 맞는 모터도 추천해준다. 심지어 모터의 반응 속도와 출력 곡선을 소프트웨어로 미세 조정할 수도 있다. 부품을 레고 블록처럼 갈아 끼우고 개인 신체 조건에 맞춰 세팅하는 ‘맞춤형 모빌리티’의 진화다. 그런데 이는 미래 자동차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엊그제 막을 내린 베이징 모터쇼 전시장 한가운데 등장한 CATL의 ‘스케이트보드 섀시’와 화웨이의 지능형 플랫폼은 그 정점에 있다. 과거엔 자동차를 사려면 제조사가 정해둔 디자인과 성능 중에서 골라야 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됐다. 이 스케이트보드 같은 뼈대 위에 원하는 디자인의 차체를 얹으면 그게 곧 나만의 신차가 된다. 5분 만에 배터리를 80% 채우고, 뼈대는 그대로 둔 채 겉모습만 바꿔 타는 ‘레고 같은 자동차’의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화웨이가 직접 차를 만들지 않고도 이 플랫폼을 통해 쏟아낸 신차만 20종이 넘었다.

▶자동차의 140여 년 역사는 기계 공학의 시간이었다. 벤츠가 엔진을 만들고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돌린 이후 산업의 경쟁력은 수만 개의 부품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리느냐, 얼마나 튼튼하게 만드냐에 달려 있었다. 내연기관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진 자리에 전동 모터와 배터리가 들어서면서 이 높은 하드웨어의 성벽은 무너졌다. 이제 자동차 하드웨어 공정은 평준화되었고 진짜 승부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개인 맞춤형을 누가 더 잘 구현하느냐에 달렸다.

▶맨 선두에 서 있는 중국 기업들은 화웨이 OS(운영체제)라는 광장을 열어 모두가 서비스를 공유하도록 판을 짜고 있다. 누가 더 운전자의 일상을 파고들며 매끄러운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미래 차의 주도권을 결정짓는다. 이대로 가면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화웨이 생태계 안에서 껍데기를 공급하는 ‘파운드리 업체’가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현대차그룹 등 우리 기업들도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과 목적 기반 차량(PBV) 전략으로 사활을 걸고 있지만 내연기관 시대의 오랜 관성을 깨고 지능형 플랫폼의 주도권을 쥐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옛 안경을 쓰고 미래를 보다간 중국, 미국 등 소프트웨어 제국들에게 미래 시장 전체를 내줄 것이다. 지금 자동차 산업에서 벌어지는 지각 변동은 세상의 모든 산업이 예외 없이 빨려 들어갈 거대한 ‘AI의 중력’의 일부분 일지도 모른다.

일러스트=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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