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후회 길들이기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6. 4. 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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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킥을 했다. 전날 밤 술자리에서 괜히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둔 탓이다. 동이 트며 강해지는 아침 햇살은 눈을 찌르듯 마음을 후벼파더니, 잊고 있던 오래전 말실수까지 소환됐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했을 텐데… 샤워하는 내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돌아보면 인생은 후회의 연속인 것 같다. 후회는 내가 저지른 일을 최상의 선택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만약 다른 걸 했다면”이란 가정을 반복해보면서 더 나은 결과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맥락에서 후회는 본질적으로 과거를 지향한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현재를 설명하고, 지금의 감정을 스스로 합리화한다. 불쾌할수록 더 멀리 되돌아본다. 어제의 말 한마디로는 지금을 설명하기 어렵다면 자연히 그 전으로 거슬러가면서 누적된 선택의 오류와 조절하지 못한 욕망의 연대기들을 들춘다. 열고 싶지 않았던 사건들의 상자를 열어 오늘의 감정을 설명해야, 비로소 지금의 내 못남이 납득되기 때문이다. 나는 ‘더욱 못난 존재’ ‘언제나 기분 나쁨’으로 이어지고, 되돌아봄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 결국 “왜 태어났는가”라는 존재론적 무용론에 이르러야 마침표를 찍는다.

2012년 독일 연구진은 25세 청년, 65세 노인, 그리고 65세의 우울증 노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앞에 놓인 8개의 박스를 순서대로 여는데 7개는 금, 나머지 하나는 ‘꽝’으로, 이를 여는 순간 지금까지 얻은 금을 모두 잃게 되는 구조다. 참가자가 박스를 하나씩 열다가 원하는 순간 멈추는 실험인데, 이때 연구자가 실은 꽝이 놓인 박스가 몇번에 있었는지 알려준다. 예를 들어 3번째 박스에서 멈춘 참가자에게 꽝이 8번 박스에 있었다고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후회를 유도하는 게임을 80회 반복했다.

청년과 우울한 노인은 놓친 기회가 컸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다음 게임에서 더 뒤 박스까지 열어보는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했다. 후회가 다음 선택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에 반해 건강한 노인은 패턴이 바뀌지 않았다. 이는 뇌의 복부선조영역 반응성의 차이와 관련이 있다. 우울하거나, 감정 변화에 민감한 연령대에서는 놓친 기회에 대한 아쉬움이 훨씬 크고 후회가 다음 행동에 영향을 주었다. 연구진은 아픈 감정과 거리를 둘 줄 알아야 ‘그것도 인생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결론 내렸다. 나이가 들수록 실수는 많아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후회가 커지는 것은 아니었고,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후회를 덜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다. 불쾌한 감정에 젖어들수록 후회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더 강해지고, 과거를 돌아보며 잊어버려도 될 기억까지 끄집어내며 오늘의 마음은 점점 더 좁아진다.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에서 인생의 시간을 셋으로 나누며, 현재는 매우 짧고, 미래는 불확실하고, 오직 과거만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기억 속에 확실하게 남은 과거를 신뢰하기에 바꿀 수 없는 일들을 후회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짧은 현재를 아깝게 흘려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후회 없이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 후회란 감정을 길들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요령은 지금의 감정을 평온한 상태로 신속히 리셋하는 것이 첫 번째다. 다음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우거나, 과거를 돌아보기를 멈추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뒤만 돌아보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고, 작은 돌부리에도 쉽게 걸려 넘어진다. 때로는 그저 앞만 보며 갈 길을 가는 선택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나는 감정을 리셋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뛰러 나갔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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