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시간만 다시 기자로 살아봤으면…언론탄압 편든 해직 판결 바로잡아야”

신다은 기자 2026. 4.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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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 낸 동아투위·조선투위
1975년 무더기 언론인 해직사태
‘부당해고’ 눈감은 대법원 판결
재판소원, 위헌적 판결 바로잡을 기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부영 위원장(왼쪽)과 이영록 위원이 4월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5층에 전시된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단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동아일보에 돌아가 내가 있던 자리에 앉아 보고 싶다. 후배들과 언론 자유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도 나눠보고 싶다.”

기자 시절을 밝게만 추억할 수는 없다. 유신 정권에서 영장도 없이 유치장에 갇힌 기억이 선명하다. 혹시나 빌미가 될까 취재수첩도 불태워야 했다. 해고도 두 번 당했다. 한번은 노조를 만들었다고, 또 한번은 해고 반대 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다.

그러나 동아일보 해직기자 이영록(81)씨는 고초 가득했던 일터로 지금도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언론 자유를 ‘기업 질서’ 아래 굴종시킨 판결을 뒤집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동아투위 50년을 맞았을 때, 다시는 이런저런 걸 따지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로부터) 대답이 없으니까. 그런데 다시 재판을 해 볼 기회가 왔으니 ‘명예를 위해서라도 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 57명(유가족 20명 포함)과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위원 2명은 50년 전 해직을 정당화한 사법부 판결을 취소해 달라고 사법부에 요구했다. 지난달 12일 시행된 재판소원(판결 취소를 청구함) 제도를 통해서다.

이 위원은 1975년 회사의 무더기 해고에 맞서다 해고당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기업 광고가 줄줄이 끊기는 등 ‘백지 광고 사태’가 나자, 언론 자유 수호에 나선 기자들을 내보내고 소속 부서를 폐지했다.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명분이었지만 회사는 정작 기자들의 감봉 제안은 받지 않았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다가 광고 해지를 당한 게 불명예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엉뚱하게 ‘경영상 문제’로 해고한다는 거예요. 만약 그렇다 해도 부서를 달리하든 다른 방법을 구했어야죠. 부서에 있는 사람을 그냥 딱 들어내서 ‘너희는 해고다’ 이렇게 하는 게 원칙에 맞냐는 거예요.”

백지광고 사태를 빚은 1974년 12월26일치 ‘동아일보’ 지면. 동아투위 제공

기자와 프로듀서(PD)들은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나섰다. 신문 조판실을 걸어 잠근 채 단식 농성을 벌였고 방송실에 들어가 “동아일보·방송은 제작 거부 중”이라고 국민께 알렸다. 갈등이 고조되자 동아일보는 기자 49명을 차례로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했다. ‘경칭 없이 주필을 모욕했다’, ‘허가 없이 유인물을 배포했다’, ‘사무실에서 집회를 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노조 동의 없이 제·개정된 취업규칙이 주된 해고 근거로 쓰였다.

당시 법원 판결은 동아일보의 마구잡이 해고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1975년 1심 법원은 해직 기자들이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서 청구인 69명 중 64명이 “경영난 속 현저한 업무 지장”을 초래했다며 해고 효력을 인정했다. 2심은 그나마 1심에서 해고가 취소된 5명도 “해사 행위”를 했다며 도로 해고 대상에 포함시켰다. 1978년 대법원 판결은 상황 논리의 절정이었다. 동아일보가 바꾼 취업규칙이 “과반수 노조 동의가 없어 효력이 없다”면서도 “상사를 모욕하고 항명을 일삼아 회사의 안위와 존망이 경각에 달리”게 했다며 징계 효력을 인정했다. “사법부가 국가권력의 언론탄압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 사법적으로 확정했다”고 이희영 변호사가 비판하는 이유다. 이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으로, 이번 사건에서 해직 기자들을 대리하고 있다.

동아일보 광고 탄압 배후에 유신 정권이 있었다는 사실은 지난 2008년에야 공식 확인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당시 내막을 잘 아는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 관계자와 기업 광고 담당자의 진술, 정치인 회고록 등을 토대로 유신 정권 압박이 실재했다고 밝혔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광고주를 동원해 동아일보가 비판적 언론인을 통제하거나 내쫓도록 압박했다. 1980년 들어선 신군부는 아예 ‘위해 언론인’ 명부를 만들어 언론계 재취업마저 방해했다(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발표).

고 윤활식 동아투위 위원은 그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 중 하나였다. 11년간 동아방송 피디로 일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부셨다고 딸 윤아무개(67)씨는 말했다. “방송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셨어요. ‘정계 야화’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셨는데 전 국민이 그 시간만 되면 라디오를 다 켜 놓을 정도였거든요.”

그랬던 아버지가 해직 뒤 상품 판매원 등을 전전하는 모습에 딸은 속을 끓였다. “아버지가 구직할 때마다 ‘이 사람은 절대 안 된다’면서 (정부가) 막았어요. 어느 방송사도 못 갔죠. ‘아버지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싶어 속상했어요.” 윤 위원은 끝내 부당해고를 인정받지 못하고 지난 2021년 91살로 세상을 떠났다. 딸 윤씨는 “그렇게 열정이 컸던 업계를 떠나셔야 했으니 그리움이 얼마나 크셨겠냐”며 “승소한다면 아버지도 더더욱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엔 윤씨처럼 이미 고인이 된 기자들을 대표해 유족들도 참여했다. 각종 수난을 지켜보며 자녀들도 부모의 숙원을 제 일처럼 여기게 됐다. “아버지의 재판은 통상의 다른 재판과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피고는 당당하고 판사들이 굴욕스러워했죠. 유치장에 갇힌 아버지가 결혼식을 앞둔 딸을 만날 수 있게 검사가 자리를 만든 적도 있어요. 판·검사들도 정의로운 일이 아니라는 건 다 알았던 거죠.”

지난 2021년 세상을 떠난 고 윤활식 동아투위 위원의 영정 사진. 유족 제공

이렇게 사회적 평가는 바뀌어도 지나간 판결만은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재판소원 제도가 생겼을 때 해직 기자들은 희망을 봤다. “언젠가는 바로잡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거의 포기한 단계였는데, 기회가 온 거죠.” 조선투위 신홍범(85) 위원장이 말했다.

신 위원장은 1974년 12월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칼럼이 신문에 실리자 편집국장에게 항의하다가 해고당했다. ‘공정성을 위해 비판 칼럼도 함께 실으라’는 요구에 국장은 ‘편집권 침해’라며 징계를 내리고 끝내 신 위원장과 동료들을 해고했다. 당시 청와대 담당 기자였던 이종구 조선투위 위원도 ‘관리자가 사내 농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정치권력에서 독립한 언론을 만들자는 요구가 해고 사유가 될까. 유신체제의 법원은 사실상 ‘그렇다’고 했다. 1976년 1심 법원은 “행동 동기가 신문의 공정성과 자율성을 위한 것이었더라도 상사에게 정도가 지나친 언행을 취하였다면 사내 위계질서를 문란케 한 것”이라며 해고를 인정했다. 2·3심도 “언론 자유의 침해 여부 판단은 각자가 하더라도 그 의도를 실천에 옮김에 있어서는 고용계약 등 기업체 규범에서 오는 제약과 양립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언론 자유 수호 활동을 기업 규범에 종속시킨 것이다.

“한 기자가 자기의 양심과 존재를 걸고 싸운 투쟁이 사내 질서 유지보다 못하다는 거지요. 그저 ‘언론 노동자니까 노무를 제공하라’는 하찮은 이유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언론 자유를 팽개쳐 버렸어요.” 신홍범 위원장과 이종구 위원이 재판소원에 참여한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 한달째인 지난 11일 기준 395건을 접수받아 194건을 이미 각하했다. “단순 판결 불복에 불과하다”는 등의 이유다. 하지만 해직 기자들의 재판소원은 다를까. 이희영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법률 해석에 오류가 있는 것은 물론,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와 결사의 자유, 근로권을 침해하는 전형적 재판소원 대상”이라고 짚었다. 이부영(84) 동아투위 위원장도 “역사를 속이고 헌법을 위반한 동아·조선일보 언론인 대량 해임 사건이 유신 독재 대법원의 판결로 정당화된 것”이라며 “독재정권에 부역한 대법원의 민낯을 씻어내야 한다”고 한겨레 기고에서 밝혔다.

신홍범 위원장은 이번 재판소원이 현직 언론인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이런 판례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의 언론 자유 운동도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할 거예요. 지금이라도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야죠. 그 명예로운 전통을 헌법재판소가 만들면 좋겠어요. ‘헌재는 역시 다르구나’ 그런 사례를 남겨줬으면 좋겠어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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