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한국서 났다면 골고타 오를 때 아리랑 불렀을 것”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골고타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라리랑 아라리요 골고타 고개 고개를 넘어간다.”
익숙한 가락이었다. 인생의 버거움과 원망, 그리움, 설움을 무심한 듯 단조로운 가락에 툭 얹어 부르는 노래, 정선아리랑이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나고 자라 정선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이동훈 프란치스코 주임신부는 “예수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에 오를 때 분명히 아리랑을 불렀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해 뜨면 해 넘어가는 두메산골” 정선이라는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척박한 곳에서 불리운 노래, 정선아리랑은 다른 어느 지역 아리랑보다도 짙은 한을 담고 있었다. “그 ‘존재론적 탄식’이 예수 그리스도 수난의 영성과 만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라고 생각했다. 정선아리랑을 천주교 신앙과 결합한 ‘골고타 아리랑’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 신부를 지난 26일 정선성당에서 만났다.
이 신부가 정선성당과 인연을 맺은 건 이번이 두번째다. 사제서품을 받은 1998년은 정선·영월 일대에서 동강댐건설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강원도 태백 금대봉에서 발원해 정선·평창 일대를 지나 영월읍에서 서강과 만나기까지 148km를 달리는 맑은 물줄기 동강. 이 강에 댐이 지어진다는 소식에 수몰예정지역 주민들이 천주교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천주교가 시민사회단체와 손을 잡자 동강댐 반대 목소리에 확실히 힘이 실렸다. ‘동강댐 꼭 막아보라’는 은밀한 미션을 받고 정선성당에 파견된 새내기 신부는 정신없이 일했고, 결국 동강댐 백지화라는 성공의 기쁨을 맛봤다. ‘이 세계가 인간만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라는 믿음은 환경신학 공부로 이어졌다.
천주교환경연대 대표, 제천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 원주교구 정평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이 신부가 고민한 것은 ‘세상과 분리되지 않는 신앙과 교리는 어떻게 가능한가’였다. “코로나팬데믹 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혼자 성체조배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는 벌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형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교회는 늘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하고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요.”
2023년 주임신부로 정선성당에 와보니, 사정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20여년 전 보좌신부 때는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는 준비를 했는데, 이젠 ‘인구소멸지역’으로 분류돼 갖가지 소생장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100명씩 북적대던 주일학교는 꿈같기만 했다.
정선군은 오일장을 찾는 관광객이 좀 더 정선에 머물 수 있도록 읍내 일대를 둘러보는 ‘아리랑 마을 투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재래시장·정선문화원 등 주요 사이트와 붙어 있으며 독특한 건축방식으로 지어진 정선성당도 투어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정선성당은 교회 종탑을 전통 불교 석탑 형상으로 풀어낸 모습이 이색적인데 정선군은 이를 관광 포인트로 잡아내기도 했다.
고향 강원 정선에 2023년 부임
지역문화와 신앙 결합 고민하다
정선아리랑 선율에 기도문 붙여
‘골고타 아리랑’ 프로젝트 첫발
성당외벽엔 ‘아리랑 십자가의 길’도
“아리랑 짙은 한, 영성과 만날 토양”
“정선은 어려서부터 아리랑을 배우고, 어디를 가든 누구나 한곡조씩 부르는 곳이에요. 진용선(아리랑아카이브 대표) 같은 분이 있어 다른 곳보다 기록·보존이 잘 돼 있고, 아리랑연구소·재단·박물관·센터도 있지요. 정선이라는 지역문화 안에서 복음은 어떠한 모습으로 새롭게 토착화할 수 있는가 고민했습니다. 지역 문화를 신앙으로 승화시키고, 성당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삶을 돌아보는 묵상의 공간으로 이용할 순 없을까?”
‘골고타 아리랑’ 프로젝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일단, 천주교 기도 절차 중 하나인 ‘십자가의 길’을 아리랑과 접목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십자가형 선고를 받은 순간부터 시작해 골고타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묻히기까지 14개의 사건을 장면별로 묵상하는 기도다. 이 신부는 정선아리랑 선율에 14가지 기도문을 가사로 붙여 ‘골고타 아리랑’을 지었다. 올해 부활절엔 성당 건물 외벽에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도 새로 만들었다. 십자가의 길 그림은 정선이 고향인 이규형 작가에게 맡겼다. 도자기로 구워 부조로 제작한 그림엔 상투를 튼 예수가 정선의 고갯길을 올라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아리랑과 교회가 만나는 자리에 노래와 그림을 놓은 이 신부는 앞으로 기도와 묵상, 피정, 여행 프로그램 등을 차곡차곡 쌓아갈 예정이다. 정선성당은 지난 2월 정선아리랑문화재단과 ‘아리랑문화예술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문화콘텐츠 융합 및 교육, 문화프로그램 운영, 문화관광활성화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 신부는 특히 내년 7월 한국에서 열리는 가톨릭 축제 ‘세계청년대회(WYD)’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미 숙소 마련 등 실무 준비가 진행 중인데 정선 일대에도 350명의 젊은이가 머물 예정이다.
“외국 청년들과 골고타 아리랑을 노래하고 기도하면서 함께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아가면 좋겠습니다. 정선의 맛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물론이고요.”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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