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근대문화유산 탐방Ⅱ·(1)] 일제도 막지 못한 ‘믿음의 길’… 의주길과 행주성당

강기정 2026. 4. 2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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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경기옛길과 근대문화유산

한양~평안도 잇던 경기 옛길 ‘의주길’
中 사신 맞이 흔적·전쟁 상흔 고스란히
남북 분단으로 단절 ‘평화 염원’ 깃들어

행주성당 내부 모습.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근대문화유산은 통상 개항기 이후의 문화 유산을 일컫는다. 근대화와 대일항쟁기, 광복과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친 만큼 당시의 고뇌, 고통, 희망, 의지 등이 고스란히 많은 유산에 남았다. 일상에 늘 자리했던 공간, 스쳐 지나갔던 것들에도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의 숨결이 깃들어있다. 그 얼은 지역의 정신이 되고, 미래를 키우는 뿌리가 된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태어난 경인일보는 지난 81년 간 경기도가 마주해온 격변의 시간을 기록해왔다. 이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을 꾸준히 조명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 가치가 주목받으며 재조명된 도내 근대문화유산들, 그리고 지역의 이야기를 톺아본다. → 편집자 주

길은 곧 생의 흔적이다. 움직임이 발자국을 내고, 숱한 걸음이 모여 길이 된다. 경기도는 그 옛날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되짚어, 그들의 생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이른바 ‘경기 옛길’이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신경준이 집필한 역사 지리서인 ‘도로고’와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토대로 했다. 22개 시·군에 걸친 7개의 옛길. 가장 긴 봉화길(135㎞)부터 가장 짧은 강화길(52㎞)까지 지역에 따라 저마다 다른 특색이 있다.

옛길은 선조들의 흔적이 깃든 유산들로 통했다. 일례로 강화길 중간엔 낮은 산인 당산미가 있는데, 이곳은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번졌을 당시 고촌 주민 50여명이 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3·1절 10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19년, 고촌지역 학생들이 이 같은 지역의 자부심을 일깨움으로써 그 가치가 재조명된 곳이기도 하다.

경기옛길 ‘의주길’ 지도. /경기문화재단 제공

서울 약현성당 공소로 출발 ‘행주성당’
경기북부 가장 오랜 역사·한옥 ‘특징’
건립 100주년 기념관, 자료·물건 보존
1899년 발간 주년첨례광익, 과거 엿보여

■ 대륙의 꿈, 평화의 염원으로

의주길은 이 경기 옛길 중 한 곳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수도 한양에서 당시 한반도 북부의 중심지였던 평안도 의주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고양 삼송역에서 시작해 북녘을 향하는 파주 임진각까지 뻗어있다. 반도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었던 길은 남북 분단과 함께 끊겨, 평화에 대한 염원이 깃들었다.

이 때문에 의주길 곳곳엔 그 옛날 중국에서 온 사신들을 맞았던 흔적들부터 전쟁의 상흔들까지 두루 남아있다. 파주 자유의 다리가 대표적이다. 지난 199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 다리는 본래 임진강 남북을 잇는 다리였지만 1953년 전쟁 포로였던 군인들이 이곳을 통해 귀환하면서 자유의 다리로 명명됐다. 그 이후 한국전쟁의 비극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근대문화유산이 됐다.

■ 꺾이지 않았던 믿음…100년 역사로 남다

행주성당의 모습.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의주길의 시작점에서 멀지 않은 곳엔 경기 북부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한 곳인 행주성당이 있다. 1899년 서울 약현성당의 공소로 출발해, 1909년 본당으로 승격되며 고양, 파주, 김포, 양주 등까지 경기 북부지역을 포괄했다.

한옥 형태의 성당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1910년 5칸의 한옥으로 처음 지어졌고 1928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지었는데, 그 때도 자재를 재활용해 원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한다. 1910년의 모습 그대로를 여전히 담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성당 건축물로는 일곱 번째, 한옥 성당으로는 두 번째로 오래 됐다. 광복 이후인 1949년, 성당을 2칸 증축했는데 이를 상세히 문서로 남겨 보존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토대로 지난 2010년 등록 문화재 제455호로 지정된 바 있다.

대일항쟁기, 광복,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친 한반도의 시간은 행주성당을 빗겨가지 못했다. 본당으로 승격된 후 일제의 탄압으로 다시 공소로 격하되고, 광복 이후 재정비를 마치자마자 한국전쟁 여파로 건물 일부가 붕괴되기도 했다. 굴곡 속에서도 변함이 없던 것은 꺾이지 않는 믿음 뿐이었다. 흔들림 없던 신념, 성당을 지켜내려던 마음은 100년 역사의 소중한 유산을 만들어냈다.

직접 찾은 행주성당은 결코 으리으리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았다. 주거지 틈새에 놓인 아담한 한옥은 웬만한 성당들보다도 작은 편이었다. 내부도 화려한 조형물 없이 단출했다. 그 소박함과 정갈함이 더욱 마음을 고요하게 했다. 내내 혼란하고 불안했던 시기, 한결같이 가족과 나라의 안녕을 기도했던 이들의 진심이 110여년을 넘어 느껴지는 듯 했다.

행주성당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1899년판 주년첨례광익.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지금의 성당은 고양시가 지난 2015년 기존 형태를 살려 다시 건축한 것이다. 행주성당은 건립 100주년을 맞아 성당 옆에 기념관을 세웠는데, 기념관 내부엔 전시 공간이 마련돼있다. 110여년간 성당에 보관돼있던 것이나 기증받은 각종 자료들과 물건들을 모아둔 것이다.

1899년 발간한 ‘주년첨례광익’ 등을 볼 수 있었다. 해당 서적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보급한 천주교 서적으로, 주년·첨례 등 축일을 안내하는 내용 등으로 구성돼있다. 오래된 종이에 옛 한글로 적힌 책자가 성당이 간직해온 시간을 짐작케 했다. 이에 대해 성당 측은 “과거엔 정해진 날짜, 장소에 모여 성인들의 전기와 축일을 읽고 묵상하는 등으로 신앙 생활을 했다. 주년첨례광익 등은 그 때의 신앙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옛 성당의 자재도 일부 전시돼있었다. 재건축 당시 성당을 해체하며 발생한 자재들을 버리지 않고,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보존을 택한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지역도 시시각각 달라져,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 그 기억조차 희미해진다. 그러나 그 옛날 작은 한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숱한 고비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생의 흔적이 길을 만들었고, 생을 이어가려는 치열함이 우리가 지켜내야 할 유산을 빚어냈다.


/강기정 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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