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우리들의 반면교사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이스라엘과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멀지만, 역사적으로는 의외로 가깝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한반도에서의 두 분단국가의 성립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948년에 이루어졌다. 한국전쟁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건국된 이스라엘이 미국 진영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데 1973년에 욤키푸르 전쟁이 촉발한 제1차 오일쇼크가 한국 경제를 강타한 이래, 이스라엘과 그 이웃 사이의 관계는 한국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이 불러온 전쟁 국면이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오늘의 상황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을 비롯한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이 이스라엘의 행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군 만행을 소셜네트워크(SNS)에서 규탄했다가 이스라엘 외교부뿐만 아니라 한국의 강경 우파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유대인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근대 초기부터 깊었던 만큼, 이와 같은 종류의 규탄 역시 꼭 새로운 것도 아니며 나아가 진보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여성(1901~?) 같은 사회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내 시온주의 정착민들을 ‘아랍인들을 억압하는 영국 제국주의의 협력자’로 보았던 것은 물론이고, 윤치호(1865~1945) 같은 보수적인 인물마저도 그 영문 일기에서 시온주의 정착민들의 팔레스타인 경제 장악을 식민지 조선 내 일본인 정착민과 일본 기업들의 행태와 비교하면서 한때 동유럽에서 학대받던 소수자들이 강자가 되는 순간 이처럼 억압자로 변신하는 상황을 한탄했다. 지금 이스라엘 국기를 성조기와 함께 흔들곤 하는 한국 극우 세력의 기이한 이스라엘관은 한국 근대의 전통이라기보다, 어디까지나 이스라엘을 미국의 분신으로 여기고 미국을 절대 선으로 보는 냉전 시대 국제관의 극단적인 잔재로 보인다.
냉전기부터 한국의 강경 보수는 종종 이스라엘을 한국의 ‘모델’로 여겼다. 극우 논객들은 이스라엘의 무기 산업이나 여성들까지 징병 대상이 되는 철저한 국민개병제를 찬양하는가 하면, 중도적 매체들조차 전쟁 발발 시 국외 체류 중인 이스라엘 예비역들이 즉시 귀국편 비행기를 타고 주저 없이 입대해 전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를 미담처럼 전하곤 했다. 심지어 사회주의적 뿌리를 가진 이스라엘의 키부츠(집단농장)까지 한때 새마을운동의 참고 모델이 된 적도 있었다. 유대인의 사회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다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일 수 있지만, 과연 이스라엘은 한국인이 지향해야 할 참고 모델일까? 나는 오히려 이스라엘이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의견에 대해 이스라엘의 ‘선진성’을 들어 반대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40~60%가량 더 높으며, 그 경제의 핵심 엔진은 하이테크 산업이다. 하이테크는 이스라엘 국민총생산의 약 17%, 수출액의 약 50%를 차지한다. 경제 성장의 절반 정도는 하이테크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력의 10분의 1은 고학력 하이테크 종사자들이다. ‘성장률’이나 ‘부가가치’, ‘1인당 국민소득’을 일종의 물신처럼 여기는 개발주의적 세계관이 거의 체질화된 한국의 보수층에게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모델로 보일 법한 구조다.
문제는 이 세계 최강 수준의 하이테크 복합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뒤에는 군산복합체라는 거대한 뿌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를 보면, 총인구가 채 1천만명도 안 되는 이스라엘은 2021~2025년 평균 기준 세계 7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글로벌 무기 수출의 4%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참고로, 이스라엘보다 인구가 5배 이상 많은 한국도 무기 수출국 9위권이다. 보수부터 중도 진보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케이(K)-방산’의 국제적 약진을 환영하는 오늘날의 분위기에서 한국보다 살인 기계의 국제 시장에 먼저 진출하고, 한국 이상의 몫을 차지하는 이스라엘이 일종의 ‘모델’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이스라엘 무기가 이토록 각광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무기들이 실전에서 매번 검증되기 때문이며, 이 실전이란 대개 가자지구나 레바논 등 인접 지역을 상대로 하는 무자비한 침공과 학살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이 규탄했던 만행들은 바로 이와 같은 침공의 불가피한 일부분에 해당된다.
이스라엘 경제가 무기 생산을 본위로 한다면, 이스라엘의 사회와 정치는 전쟁을 떠나서 존재한 적이 없다. 인구 구성이 다양한 지역인 팔레스타인에 19세기 말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시온주의 정착민들은 애초부터 팔레스타인의 ‘모든’ 주민을 위한 민주 국가가 아닌, 혈통 본위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원했다. 이는 종족을 초월하는 사회 통합을 처음부터 포기한 건국 사상이며, 궁극적으로 ‘종족 청소’와 영구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발상이다. 이스라엘 시민들 중 약 21%가 아랍계임에도 불구하고,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의 결혼은 지금도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즉, 지금도 ‘유대인’이라는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 통합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정 종족의 우월적 위치가 법제화된 이 사회에서는 극우파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정치 세력도 힘을 잃었다. 의회 내 중도파는 약 25~30%, 좌파는 7~10%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도파마저도 이란 침공 등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사회가 장기적으로 평화를 지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한다.
미래의 한국을 위한 바람직한 길은, 이스라엘이 밟고 있는 궤도의 정반대 편에 있다고 믿는다. ‘케이-무기 수출 성공’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전쟁과 지정학적 긴장에 종속된 수출 성장은 사실 최악의 미래 시나리오가 아닌가? 이스라엘의 금과옥조인 철저한 혈통주의 역시 한국이 궁극적으로 벗어나야 할 시대착오적 유산이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이 시대에 한국의 미래는 종족을 초월한 시민적 통합에 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식의 우파 독주는 한국에 악몽과도 같은 시나리오다. 우리가 결코 가지 말아야 할 방향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는 나라, 그곳이 바로 오늘날의 이스라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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