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지정생존자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테러로 미 대통령과 대통령직 승계 서열 상위 인사들이 모두 숨지자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키퍼 서덜랜드)이 백악관 주인이 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승계 서열 13위 커크먼이 대통령직에 오른 것은 대통령 국정연설 당시 ‘지정생존자’여서 참변을 피했기 때문이다.
지정생존자란, 미국에서 국가 최고위층이 모일 때 권력 승계 서열에 있는 각료급 한 명을 제외해 안전한 곳에 두는 제도다. 수뇌부가 한꺼번에 유고되더라도 정부 기능이 마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지정생존자는 행사 직전 비밀리에 군부대 등으로 이동한다. 대통령급 경호가 이뤄지며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로 불리는 ‘핵가방’을 든 참모도 따라붙는다.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도 <60일, 지정생존자>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국회의사당이 폭탄 테러로 무너지고 대통령이 사망한 뒤 국무위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박무진 환경부 장관(지진희)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국엔 지정생존자 제도가 없는 만큼 박무진의 직책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나온다. 제목에 ‘60일’이 붙은 것은, 지정생존자가 대통령 잔여 임기를 수행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대통령 유고 시 60일 이내 차기 대선을 치르게 돼 있어서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이 발생한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당시 지정생존자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행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승계 서열 1위 J D 밴스 부통령, 2위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참석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승계 서열 1~18위 중 13명이 행사장에 있었다고 한다. 승계 서열 3위인 척 그래슬리 상원 임시의장은 불참했다.
존슨 하원의장은 “만약 총격범이 제지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래슬리가 대통령이 됐을 것”(KETV 인터뷰)이라고 말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승계 순위의 여러 장관이 개인 사정으로 불참키로 해 지정생존자를 둘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상황이 터졌을 때 ‘우연히 집에 있던’ 장관에게 핵가방 통제권을 줘도 될까. 미드 속 톰 커크먼은 엉겁결에 대통령이 되고도 국정을 잘 수습했지만, 현실은 다를 것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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