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치매 ④] 엘리자베스 1세, 죽기 전 ‘또 다른 나’를 봤다…도플갱어의 정체

황교진 기자 2026. 4. 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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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징조였나, 뇌의 변화였나… ‘또 다른 나’의 의미 분석
AI도 속인 닮은 얼굴, 400년 전 기록을 오늘의 과학으로 읽다
엘리자베스 1세 초상(Armada Portrait).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이후 제작된 작품으로, 영국의 해상 패권과 여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 Elizabeth I, Armada Portrait, c.1588, English School. (Public Domain)

영국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를 안정시키고 해상 강국의 기반을 다진 통치자로 평가받는다. 이른바 '엘리자베스 시대'로 불리는 그의 재위 기간은 정치와 문화가 동시에 번성한 시기로 기록된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의 말년에는 유난히 기묘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사망을 앞둔 어느 날, 여왕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다. 기록에 따르면 그 모습은 창백했고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왕은 그 광경을 목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603년 3월 24일 숨을 거두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살았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는 중세가 끝나고 초기 근대가 형성되던 시기로, 당시 유럽에서는 자신과 동일한 존재를 보았다는 경험이 기록되더라도 이를 별도의 개념으로 체계화하기보다 영혼, 환영, 예지적 징후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중세부터 이어진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육체와 분리된 '영혼'의 존재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외부에 나타나는 현상은 생명력의 이탈이나 죽음의 접근을 암시하는 징후로 해석되기도 했다.

 

도플갱어, "또 다른 나를 목격하는 경험"

이와 같은 경험은 18세기 후반 이후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해, 18~19세기 독일어권에서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중으로 걷는 자'라는 뜻의 이 용어는 독일 문학과 낭만주의 사유 속에서 확산하며, 자기 자신과 동일한 존재를 마주하는 경험을 가리켰다.

이후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회고나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윌리엄 윌슨》 같은 문학적 재현을 거치면서, 도플갱어는 단순한 유사성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 분열, 자기 파멸을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지로 굳어졌다.

즉,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전해지는 '또 다른 자신을 보았다'는 경험은 당시에는 초자연적 징후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도플갱어'라는 이름은 그보다 훨씬 뒤에 붙여진 것이다.

현대 의학은 이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신경학과 정신의학에서는 자기 인식(self-recognition)과 신체 표상(body schema)을 통합하는 뇌 기능의 이상으로 본다. 특히 우측 측두엽과 두정엽을 중심으로 시각 정보와 신체 감각을 통합하는 신경 네트워크의 균형이 깨지면, 자기 자신을 외부 대상처럼 지각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때 환자는 자신과 동일한 인물을 보거나, 자신의 위치가 분리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치매에서 관찰되는 자기 인식의 변화

이러한 자기 인식의 혼란은 치매에서도 관찰된다. 인지 기능 저하와 함께 현실 판단 능력이 약화되면, 자기 자신을 낯선 존재로 인식하는 경험이 나타나기도 한다. 도플갱어는 더 이상 초자연적 징후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인간의 인지 체계가 유지하던 '나'라는 감각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 생전 건강 상태와 인지 기능에 대한 직접적인 임상 기록은 제한적이다. 다만 후대 연구자들은 그녀의 말년 행동과 기록을 근거로, 인지 기능 변화 또는 신경정신학적 증상이 일부 동반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또 다른 자신을 보았다'는 일화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다시 읽힌다.

 

"또 다른 나"는 어디에서 나타나는가

이 장면은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의학에서는 '또 다른 나를 본다'는 경험을 자기 인식이 어긋나는 현상으로, 신경학 및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자기 외현 현상(autoscopic phenomena) 범주에서 다룬다.

도플갱어 증상은 1977년 그리스 정신과 의사 니코스 크리스토둘루(Nikos Christodoulou)가 관련 사례를 정리하면서 하나의 증상군으로 체계화했다. 그는 이를 자기복제 현상, 이른바 크리스토둘루 증후군으로 설명했다. 이 상태에서는 자기 인식이 하나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익숙해야 할 '나'가 눈앞의 타인처럼 분리되어 나타난다.

환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고 믿거나,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낯선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존재를 위협으로 느끼기도 한다. 타인을 향한 망상과 달리, 이 경험은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경험은 주로 우측 측두엽과 두정엽이 관여하는 기능과 연결된다. 이 부위는 시공간 감각과 신체 인지를 통합해 '내가 나다'라는 인식을 만든다. 이 균형이 흔들리면, 자기와 타인의 경계가 흐려지고, 그 틈에서 '또 다른 나'가 나타난다.

치매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점차 약해진다.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현실을 판단하는 힘이 흐려지면서, 자기 자신을 낯선 존재로 인식하는 경험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루이소체 치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실제처럼 보는 시각적 환시가 반복되기도 하는데, 이는 인식의 경계가 흔들리는 또 다른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도 이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직접적인 기록은 제한적이지만, 말년에 전해지는 여러 정황을 보면 인지 저하를 비롯한 신경정신학적 증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언급된다. '또 다른 자신을 보았다'는 일화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경험으로 해석된다.

 

400년 후, AI도 '또 다른 나'를 착각하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과거의 이야기로만 남아 있을까. 지난 4월 21일,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한 사건이 큰 화제를 일으켰다.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간 한 여성이 안면 인식 시스템에 의해 신분 도용 의심 대상으로 분류된 것이다.

이유는 의외였다. AI 시스템이 그녀를 이미 등록된 다른 사람과 같은 인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이름도, 주소도 달랐다. 그런데 눈 사이 거리, 코의 형태, 턱선 등 얼굴의 주요 특징이 거의 일치했다. 당사자조차 "거울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여성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출생증명서 등 추가 서류를 제출하며 몇 달 동안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행정 오류가 아니라, 자신과 거의 같은 얼굴을 가진 타인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결국 오인이라는 결론이 났고, 면허증은 뒤늦게 발급됐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후 SNS를 통해 "나와 똑같이 생긴 그 사람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밝히며, 자신의 '도플갱어'를 찾고 싶어 했다. 과거에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던 '또 다른 나'가, 지금은 직접 확인하고 싶은 존재로 바뀌고 있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속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19세기 문학에서 도플갱어는 파멸의 신호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윌리엄 윌슨》에서 주인공이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죽이지만, 결국 그것이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함께 무너진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이중인격》에서도 또 다른 '나'는 주인공의 삶을 잠식하며 현실을 무너뜨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공포영화에서도 이 소재가 등장했다. 영화 어스(Us, 2019)에서는 지하에서 살아온 '테더드(Tethered)'라는 존재가 지상으로 올라와, 자신과 동일한 외모를 가진 인간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서 도플갱어를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닮은 사람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나의 자리를 위협받는 경험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 사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자신과 거의 똑같은 얼굴을 확인한 뒤, 생활방식이나 취향까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직업을 선택했거나,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마저 겹치는 것을 발견한 사례도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유전자 배열이 유사하게 나타나 도플갱어로 보이는 사례도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안면 인식 기술이 더해지면서, 사람의 눈을 넘어 기계까지 동일 인물로 판단하는 수준의 '닮은 얼굴'이 현실에서 확인된 것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다시 엘리자베스 1세의 마지막 기록으로 돌아간다. 말년에 이르러 여왕은 장시간 침묵하거나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신체적 쇠약과 함께 인지 기능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언급되는 대목이다.

그 흐름 속에서 전해지는 한 장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이 장면을 기이한 이야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 자기 인식을 유지하던 뇌 기능에 변화가 생기면서,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나'라는 감각이 흔들렸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하나의 존재로 느낀다. 그러나 그 감각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엘리자베스 1세가 마지막에 마주했을지도 모를 그 장면은, 한 인간이 생의 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자기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질문을 지금 스스로에게 던져 보라.
"나는, 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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