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종전 협상에 ‘전쟁 수혜국’ 러시아 등판…푸틴 “중동 평화 위해 노력하겠다”
러, 이란과 정보 공유하지 않고 전쟁 관망
협상 중재하며 우크라이나 종전 판 짤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을 만나 중동의 조속한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가 향후 자국에 유리한 방식의 러·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을 염두에 두고 미·이란 평화협상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노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라그치 장관을 만나 “중동에 평화가 조속히 정착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며 “이란 국민이 독립과 주권을 위해 얼마나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시련의 시기를 잘 넘겨 평화의 시기가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란 외교부는 아라그치 장관이 푸틴 대통령과 “전쟁과 침략”에 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아라그치 장관은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과의 종전 협상이 더딘 이유로 수시로 입장을 바꾸고 위협적인 언사를 사용하고 약속을 반복적으로 어기는 미국의 ‘파괴적 습관’을 들었다. 그러면서 이란이 전쟁을 끝내기 위한 외교적 해법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같은 날 키르기스스탄에서 레자 탈라이니크 이란 국방부 차관과 회담을 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벨로우소프 장관은 성명을 내고 “러시아는 오직 외교적 수단을 통한 분쟁 해결만을 지지한다”며 “이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하고, 상황 해결을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아라그치 장관은 지난 주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미국과의 평화 협상이 무산되자 중재국 오만과 파키스탄을 거쳐 러시아로 향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러시아 방문에 앞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핵 문제 논의를 분리하는 방안을 핵심으로 하는 단계적 휴전안을 미국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싱크탱크 던의 오미드 메마리안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상 전반에서 이란과의 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왔다”며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한 이란의 마지막 카드일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알자지라는 “이란은 외교적 해결과 군사적 대결 시나리오를 모두 갖고 있으며 러시아는 두 시나리오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이란의 우방국이다. 이란이 지난달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유가가 치솟자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 제재 완화로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미·이란 전쟁에서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미국과 러·우 전쟁 종전 협상을 해야 하며 이스라엘, 중동 우방국들과의 관계 역시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이란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를 안심시키며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려 노력해 왔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중재에 뛰어든다면 이란이 원하는 ‘안전 보장’과 ‘핵 합의 문제’에 중재안을 마련하면서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에서 미국에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이 종전 조건으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과 농축한 우라늄 해외 반출을 요구하자 크렘린궁은 이란의 농축 우라늄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2018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란핵합의(JCPOA)에서도 이란 우라늄 반출국 역할을 맡았다.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는 중동 전문가 니키타 스마긴은 “러시아는 중동 분쟁 국면에서 유가 상승으로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영향력 측면에서는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며 “(미국, 다른 중동국가들과의 관계도 고려해)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을 신중하게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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