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개 LED가 만든 광기···뮤지컬 ‘데스노트’ 압도적 무대

세상에 정의는 없다고 믿는 천재 고교생 라이토는 어느 날 길에서 검은 공책 하나를 줍게 된다. ‘이름이 적힌 자는 죽는다’라는 믿기 힘든 문구가 적힌 이 공책은 바로 ‘데스노트’. 노트의 효력을 확인한 라이토는 정의 실현을 앞세워 범죄자들을 처단하기 시작하고, 베일에 싸인 명탐정 엘이 그의 정체를 추적하며 두 사람 간 숨 막히는 두뇌 게임이 펼쳐진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2015년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후 꾸준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다. 초연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고, 2022년 오디컴퍼니의 리뉴얼 프로덕션을 거친 후 4년 만에 누적 관객 50만명을 돌파하며 최단기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사신과 인간 세계,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는 만화적 설정은 그대로지만 뮤지컬로 만나는 작품은 서스펜스와 범죄 스릴러의 매력을 한층 강화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인물 간 대립, 여기에 감각적인 무대 미술이 어우러지며 긴장과 몰입을 끌어올린다.


막이 열리자마자 시선을 사로잡는 건 초고화질 레이저 조명이 만들어 내는 무대 위 공간들이다. 텅 빈 무대를 뒤덮은 거대한 스크린이 기하학적인 선들로 요동치기 시작하면 관객들은 순식간에 정의를 명분 삼은 광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1380장의 고해상도 LED 패널이 사용됐는데, 대형 구조물이나 물리적 세트 대신 조명과 영상으로 시각 효과를 극대화한 덕분에 배경 전환이 빠르고 매끄럽다. 마치 2차원 만화 속 세계에 시공간을 덧입힌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라이토와 엘이 테니스 대결을 펼치며 부르는 넘버 ‘놈의 마음속으로’는 극의 백미로 꼽힌다. LED 조명으로 구현된 테니스 코트가 강렬한 음악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구도를 전환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공중에서 드론을 타고 경기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착시를 경험하게 된다.
시각 효과는 엘과 라이토의 감정과 대립을 나타내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무대 벽면을 가득 채운 시계 초침, 애니메이션 프레임이 살아 움직이는 듯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빠른 장면 전환은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속도를 더한다.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도 관전 포인트다. 지난 시즌 치밀한 캐릭터 해석과 무대 장악력을 보여줬던 고은성과 김준수가 지난달부터 작품에 합류했다. 라이토 역의 고은성은 평범한 고교생이 스스로 신이 되기를 자처하며 괴물이 되어가는 이중적인 면모를, 엘 역의 김준수는 특유의 신경질적인 호흡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캐릭터의 천재성을 구현했다. 사신 류크 역의 임정모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디션을 거쳐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임정모는 만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로 괴팍한 사신 류크를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법은 곧 정의일까. 작품은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관객은 라이토의 선택에 쾌감을 느끼다가도 법을 초월해 휘두른 힘이 초래하는 결과를 지켜보며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된다. 신이 되려 한 인간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다소 허무한 엔딩은 그렇기에 더욱 쉽게 가라앉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흥행에 힘입어 2주 연장된 스페셜 공연에는 라이토 역에 고은성·규현·김민석·임규형이, 엘 역에 김성철·김준수·산들·탕준상이 무대에 오른다. 5월25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링크아트센터.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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