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였던 공장이 영화 배경이 됐다···김효은 감독 ‘새벽의 Tango’

영화 <새벽의 Tango>는 어스름한 새벽, 힘없이 캐리어를 끄는 지원(이연)의 모습을 멀리서 비추며 시작한다. 공원에서 홀로 춤 연습을 하던 누군가와 부딪히지만, 지원에게는 놀라거나 실랑이할 힘이 없어 보인다. 그는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가는 중이다. “친구한테 배신당하고 집 보증금까지 써서 지낼 데가 없거든요. 여긴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믿었던 이에게 사기를 당한 그는 면접관 앞에서도 삶에 지쳐버린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영화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극에 달한 지원이 공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담는다. 새벽에 춤을 추던 룸메이트 주희(권소현)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따스하다. “땅고(탱고) 파트너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못 들은 척하던 지원은 어느새 그와 발을 맞추게 된다. 하지만 공장에서 벌어진 사고와 이상한 소문, 사람들을 이간질하는 한별(박한솔) 등으로 인해 관계는 새 국면에 접어든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며 주목받은 <새벽의 Tango>가 지난 22일 극장 개봉했다. 봉준호·장준환·김태용 감독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출신 김효은 감독(42)의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들의 첫 장편이 자주 그러하듯 <새벽의 Tango>에는 본인의 경험이 녹아 있다.
“저는 한때 주희처럼 사람을 좋아했었어요. 밀어내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는 지원이처럼 변해가던 시기도 있었죠. 살다 보니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네요.” 지난 2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김 감독이 말했다.

김 감독은 직업적 커리어의 절반 이상을 출판사에서 보냈다. 사람에 질려 도망치고 싶던 20대 때 몇 차례 일을 쉬고 극 중 지원처럼 숙식이 가능한 공장을 찾은 적이 있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곳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어요. 서로 얘기하는 게 진짜인지를 모르잖아요.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기구한 사람도 있고, 의심되는 순간도 있지만 그래서 또 어떤 말을 해도 괜찮더라고요.” 이해할 수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한별 등 인물들은 공장에서 김 감독이 만난 여러 인물을 조합해 썼다.
특히 재현하고 싶었던 건 새벽 출근길의 공기다. “3교대로 오전 4시에 출근을 했다”는 그는 “공장을 가는 지름길이었던 공원을 지날 때의 공기가 잊히지 않더라”고 했다. 공원은 영화에서 지원과 주희가 처음 스치는 장소이자 함께 ‘땅고’(탱고)를 연습하는 공간이 됐다. 주희는 보통 탱고라고 부르는 춤의 이름을 스페인어 발음을 살려 땅고라고 발음하곤 한다. <새벽의 Tango>라는 한영 혼합의 이름에는 관객들도 원하는대로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화제의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에서 재벌 성희주(아이유)의 비서 도혜정 역을 맡은 배우 이연의 버석한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연은 김 감독의 단편 <거북이가 죽었다>(2021)에도 출연했다. “단편 이후 긴 작품을 함께하고 싶었는데, 새벽의 공원을 무심히 걷는 이연 배우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얼굴로부터 지원 캐릭터가 시작됐습니다.”
김 감독은 자기 자신을 “느린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감독이 된 경로도 일직선이 아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따뜻한 영화가 아닌데도 위로가 되는 게 신기했다”는 그는 출판사 출신답게 “그 작품처럼 위로를 주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생각”이 먼저였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출판사를 관두고 한 상업영화의 조명팀 막내로 일했다. 영화 현장을 알아야 뭐라도 쓰겠다는 생각에 한 도전이었으나, 현장에서 시나리오가 감독에 의해 바뀌는 것을 보고는 “내 이야기를 하려면 연출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한국예술원 등 교육기관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단편을 찍었다. 다시 생계를 위해 출판계로 돌아가야 할까, 고민되던 차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합격했다. 그 덕에 <새벽의 Tango>가 나올 수 있었다.

“하다 보니 하게 되었는데, 할 말은 계속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나는 이런 걸(영화를) 해야 하는구나. 다른 일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김 감독은 관심이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옮겨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전 뭐든 뒤늦게 깨닫는 편이거든요. 이걸 나중에 겪을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혹은 빨리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합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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