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상자산 보관·관리, 민간수탁 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 [크립토360]
정부 보유 디지털자산 780억
공공수탁 기준 민간법인에 참고
거래·보관 기능 분리 핵심 쟁점
담보대출 등 금융서비스 확장해야

[헤럴드경제=경예은 기자] “정부가 발표한 공공분야 디지털자산 보유·관리체계 개선방안은 민간 수탁시장으로 가는 물꼬를 터주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 법인의 투자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았지만 상장사 입장에서는 표준운영절차(SOP)로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성일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공공분야 디지털자산 관리 가이드라인을 이같이 평가했다. 공공부문 수탁의 사실상 첫 표준이 제시된 만큼 민간 법인 수탁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진단이다.
조 대표는 30년간 한국예탁결제원에 몸담은 인물로 증권파이낸싱 본부장, 미래핵심 사업 전담 조직 ‘Next KSD’ 본부장을 지냈다. 토큰증권(STO) 플랫폼 개발을 총괄하는 과정에서 디지털자산 업계와 인연이 닿아 지난해 6월 KDAC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전통 금융 인프라를 설계해 온 경험이 디지털자산 수탁시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는 “국내 자본시장은 50년 넘게 발전하며 선진화됐으나 디지털자산 수탁 인프라는 형성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다”며 “결국 수탁 시장은 자본시장과 상호연계 하며 서로 닮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대표는 올 한해 KDAC의 우선 목표로 공공수탁을 꼽았다. 정부와 수사기관,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디지털자산 보관·관리 수요가 구체화하고 있는 만큼 해당 영역에서 먼저 입지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국세청은 압류 디지털자산 전문 커스터디 운영체계 마련을 위한 용역 사업을 발주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중앙정부가 보유한 디지털자산은 지난 6일 기준 약 780억원 규모로 대부분 수사·징세 과정에서 확보한 자산이다. 이 가운데 국세청 보유분은 약 521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조 대표는 “공공부문에서 보관기관의 내부통제와 키 관리, 사고 대응 기준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민간 법인시장에서도 사실상 참고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문 수탁사 입장에서는 유의미한 변화”라고 전했다.
앞서 그는 지난 3월 국회 ‘디지털자산 법인시장 개방과 신뢰 인프라 구축 과제 학술 컨퍼런스’에 참석해 거래소 수탁과 전문 커스터디 업체를 비교한 바 있다. 거래소에 자산을 보관하면 매매 주문을 즉시 낼 수 있어 거래 효율성이 높지만 이 경우 고객 자산을 내부 장부와 옴니버스 계좌로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거래소가 파산하거나 대규모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법인 자산이 온전히 분리돼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리스크가 남는다.
반대로 전문 수탁기관에 자산을 맡기면 수탁기관은 고객별 지갑 주소를 분리해 자산을 관리하고 콜드월렛 기반 보관과 키 관리 등을 통해 자산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실제 매매를 위해서는 자산을 거래소로 다시 이전해야 해 불편이 크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이 ‘오프 익스체인지’(Off-exchange)다. 자산은 전문 수탁기관에 그대로 두되 거래소와 수탁기관을 시스템으로 연결해 주문만 거래소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거래 결과는 양쪽 기관이 사후 정산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코인베이스 프라임, 바이낸스 미러 등이 유사한 구조의 서비스로 꼽힌다.
KDAC도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조 대표는 “현재는 오프 익스체인지 비즈니스 모델링을 검토하는 단계”라며 “일부 거래소와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거래와 보관 기능 분리가 앞으로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봤다. 그는 “미국의 경우 독립형 커스터디와 수직계열화 모델이 함께 존재하지만 이해상충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국내 자본시장이 거래 기능과 예탁 기능을 나누어 발전해 온 만큼 국내 디지털자산도 장기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디지털자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꿨다는 분석도 내놨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미 국채 등 기초자산을 통해 ‘손에 잡히는 자산’으로 인식된다는 설명이다. 조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자산 인식 제고에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시장의 제도권 편입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수탁사의 안정성과 내부통제 역량도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KDAC은 시장 변화에 발맞춰 관련 체계를 꾸준히 강화해왔다. 지난 2023년 삼덕회계법인으로부터 업계 최초로 내부통제 인증(SOC)을 받은 데 이어 글로벌 회계법인 KPMG 인증도 획득했다. 조 대표는 “사내 규정뿐 아니라 업무 현장까지 살피는 만큼 수탁사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콜드월렛 보관 체계도 고도화하고 있다. 현재 KDAC은 별도 금고에 콜드월렛을 보관하고 있으며 출입증과 생체인증 등을 통해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 향후 사옥 이전에 맞춰 은행권 수준의 내화벽과 항온·항습 설비를 갖춘 보관 환경도 구축할 계획이다.
보험 역시 수탁사 신뢰도를 가늠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현행 제도상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운영하지 않는 가상자산사업자는 해킹·전산장애 등에 대비해 보험·공제에 가입하거나 준비금을 적립해야 하며, 최소 기준은 5억원이다. KDAC은 법정 기준을 넘어 총 2000만달러(약 300억원) 상당의 보험에 가입했다.
다만 수탁사를 위한 보험 시장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점은 부담이다. 국내 보험사만으로는 대규모 수탁 위험을 인수하기 어려워 해외 보험사나 재보험사를 연계하는 구조가 일반적이고 보험료율도 높은 편이다. 조 대표는 “국내는 보험료율이 1~2% 수준으로 일반 보험에 비해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가상자산사업 신고수리가 완료된 사업자는 총 27곳이다. 이 가운데 전업 수탁사는 8곳으로, 이들의 수탁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조 대표는 수탁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법인 시장 개방과 함께 디지털자산의 활용도를 높이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봤다. 단순 보관을 넘어 고객 자산을 담보대출이나 대차거래 등 금융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어야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시장이 성장한 배경에는 증권을 단순히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리파이낸싱 가능한 구조가 있었다”며 “디지털자산 제도도 투자자 보호와 시장 활성화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불어 “수탁사들도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라며 “내부통제, 보안, 재무구조를 탄탄히 하고 업무 영역을 확대해 수익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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