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은 한과 빚고, 명당은 풍광을 내놨다…달달 한과&포천 아트밸리[투어테인먼트]
세계 정상 만찬에 오른 한과의 역사와 포천을 품은 지역 축제의 꿈
명장의 입맛마저 홀린 30년 내공 이동갈비의 참숯 향과 넉넉한 인심
버려진 흉물 폐석산에서 40만 명 찾는 문화예술 쉼터로 부활한 기적
10대 미각을 깨운 K-디저트, 손끝으로 전해진 명장의 철학

봄기운 가득한 지난 20일, 수원 삼일고등학교 제과제빵 실습실은 버터와 밀가루가 정성이란 화학적 변화를 거쳐 은은한 단맛 향으로 공간을 적셨다. 대추와 꿀이 오랜 시간 조화롭게 졸여지며 피어오르는 향은, 사람들의 침샘을 미치게 만들었다. 이날은 미래의 파티시에를 꿈꾸는 10대 학생들을 위해 대한민국 제26호 식품명인이자 한과 명장 1호, 김규흔 명장이 직접 ‘납시었다’.

명장은 대추씨를 빼고 곱게 다져 꿀에 장시간 졸인 뒤 잣으로 예쁘게 모양을 내는 최고급 이바지 음식 ‘조란’과 ‘호두 정과’의 조리법을 학생들에게 전수했다. 마카롱이나 조각 케이크의 강렬한 단맛에 익숙했던 10대 아이들인데도, 전통 한과의 입체적인 풍미와 정교한 수작업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니 탄성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간 어린 것들을 무시해 벌어졌던 세대차는, 제대로 가이드 못한 어른 탓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전통 과자는 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낡은 인식을 깨뜨리고, 미래 세대의 일상적인 디저트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직접 손으로 빚고 혀로 기억하게 만드는 실물 교육만이 해답임을 뭉클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투박한 농기구에 깃든 한가원의 시간과 40년의 뚝심
10대의 미각마저 사로잡은 명장의 깊은 내공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기자는 그 궤적을 좇아 명장이 2008년 사재를 털어 건립한 경기도 포천시의 한과문화박물관 ‘한가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물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세 살 입맛 여든 간다~ 한과 만들기’라는 커다란 현수막 아래로, 10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지게와 절구, 맷돌, 탈곡기 등 빛바랜 농기구들이 주름 팬 농민의 낯빛 그대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화려하고 세련된 포장 대신 흙먼지가 뒤집어 쓴 투박한 옛 도구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한과의 근본이 결국 이 땅에서 자라난 농산물과 농부의 정직한 땀방울에 있음을 직관적으로 전하기 위한 묵언의 메시지였다.
“세 살 입맛을 여든까지”, 온기로 빚어내는 전통 체험
박물관 바로 옆에 자리한 교육관 체험실은 명장의 이러한 철학이 관람객의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공간이다. 최대 120명까지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체험실 내부에는 조리용 테이블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각 테이블 위에는 위생을 고려한 투명 비닐이 깔려 있고, 조청과 기름을 은은하게 데워줄 휴대용 가스버너, 재료를 담을 소쿠리, 그리고 한가원 로고가 수놓아진 앞치마가 정갈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과와 강정 체험은 약 1시간 30분, 다식 체험은 1시간 가량 이어지며, 비용은 유과 3만 원, 강정 3만5000원, 다식 2만 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영상 시청과 박물관 견학으로 한과와 친해진 관람객들은 이곳으로 건너와 직접 반죽을 빚고 한과를 만든다. 자신만의 모양으로 정성스레 빚어낸 15~18개의 유과나 10~12개의 다식을 전통 식기에 담아 사진을 남기고 포장해 가는 일련의 과정은 ‘세 살 입맛이 여든까지 간다’는 명장의 굳건한 지론과 맞닿아 있다. 어릴 적 혀끝으로 기억하고 고사리손으로 빚어본 따뜻한 경험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전통 디저트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월계동 좁은 골목에서 세계 정상의 만찬장으로
체험관을 지나 박물관 내부로 안내하던 김범진 한가원 부관장은 전시실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투박한 쇳덩이 기계와 나무 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과거에는 나무 틀을 썼으나, 반죽을 빼내기 위해 ‘탁’ 하고 칠 때마다 바짝 마른 나무가 쪼개지며 애를 먹이기 일쑤였다. 한과의 대량 생산과 세계화라는 큰 꿈을 품었던 명장은 금형 기술을 도입해 과감히 기계화를 시도했고, 수작업 특유의 섬세한 질감과 맛을 기계로 완벽히 구현해 내기까지 무려 17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바쳐야 했다.
그 험난한 여정의 이면에는 1981년 서울 노원구 월계동 골목에서 처음 한과를 시작해, 짧은 유통기한 탓에 여름철이면 아예 장사를 접어야만 했던 뼈아픈 시절이 숨어 있다. 명장은 포기하지 않고 상추 밀폐 실험을 거듭한 끝에 쌀겨의 감마오리자놀 성분으로 천연 방부 기술을 고안해 내며 기적 같은 생존기를 써 내려갔다.
전시실 안쪽은 그렇게 빚어낸 한과가 세계를 향해 나아간 찬란한 궤적을 묵묵히 증명한다.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만찬장에 당당히 올랐던 인삼 유과와 꿀 약과의 오색찬란한 고임부터,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와 협업하여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의 감각적인 포장 기술과 전통을 결합한 전시물까지 한과의 무한한 확장성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화과자와 중국의 월병 등 전 세계 40여 개국의 디저트를 직접 수집해 둥근 진열장에 빽빽이 채워 넣은 코너에서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상대의 특성을 분석하고자 했던 명장의 치밀하고도 차가운 승부사적 기질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전통과 현대가 머무는 쉼터, 지역을 품은 축제의 청사진
한과의 뼈아픈 쇄신과 영광의 궤적을 지나면 2층의 아늑한 휴게 공간과 야외 테라스가 여행자를 토닥인다. 투명한 천장 아래 포천의 맑은 산세가 그림처럼 펼쳐진 테라스는 관람객들이 한과 판매점과 연계하여 현대적인 여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실내에는 한복 체험 코너와 전용 포토존이 마련되어 젊은 세대에게 즐거운 추억을 선사한다.
김범진 부관장은 “야외 언덕에 자연스레 동선을 잇는 데크를 설치하고, 전주 한옥마을처럼 전통 삼색 그늘막을 드리워 쉼터를 넓힐 계획”이라며, “단돈 3천 원의 입장료만으로 커피와 한과를 맛보며 온전히 쉴 수 있는 힐링의 공간으로 정비하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또한 “과거 서울 도심과 국회에서 성대하게 열었던 대규모 한과 페스티벌의 무대를 이곳 포천으로 옮겨와, ‘포천 한과 축제(가칭)’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굳건한 전통 축제로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다부진 포부도 잊지 않았다.
임영웅을 향한 팬심과 명장의 발길이 머무는 참숯향
포천 한가원에서 달콤한 서사를 눈과 입으로 즐겼다면, 길을 건너 풍겨오는 짙은 참숯 향에 발걸음을 맡길 차례다. 한가원 맞은편에 넉넉히 자리 잡은 ‘원조 명문 이동갈비’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불판을 달궈온 포천의 정겨운 노포다. 식당 입구에 당도하는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국민 가수 임영웅의 사진들이다. 현수막부터 실내를 빼곡히 채운 아기자기한 굿즈와 액자들은 마치 거대한 팬덤의 성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그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뚝심 있는 맛에 있다.
환한 웃음으로 산처럼 쌓아 올린 겉절이김치와 칼집이 선명한 이동갈비를 내어오는 주인의 손길에는 30년 세월이 다져낸 깊은 내공이 서려 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참숯의 깊은 풍미를 품은 양념갈비는 한가원의 김규흔 명장이 수시로 찾아와 지친 몸을 달래는 단골집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포천 지역 상품권 결제도 가능해,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고 알뜰하면서도 넉넉한 인심 속에서 포천 미식 여행의 든든한 마침표를 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곳이다.
흉물스러운 채석장의 아름다운 반전, 문화예술공원 아트밸리

포천의 맛으로 기분 좋게 배를 채운 뒤 닿은 곳은 2026년 4월의 맑은 하늘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 포천 아트밸리다. 입구에 들어서면 단단한 화강암으로 투박하게 다듬어진 표지석과 친근한 동물 캐릭터 조형물들이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은 과거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등 주요 건축물을 짓는 데 쓰였던 포천석의 핵심 산지였으나, 질 좋은 화강암이 고갈된 후 차갑게 버려졌던 폐채석장이었다. 그러나 2009년 10월, 생명이 깃든 포천 아트밸리로 재탄생하며 현재는 연간 40만 명 이상이 찾는 웅장한 문화예술공원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가파른 420m의 진입로를 편안하게 오르기 위해 귀여운 모노레일에 탑승하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봄날의 연초록 잎사귀들과 거친 화강암 절벽의 극적인 대비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마주하는 아트밸리의 심장 ‘천주호’는 수심 20m에 달하는 장엄한 자태를 고요히 뽐낸다. 채석을 위해 깊게 파였던 웅덩이에 샘물과 빗물이 자연스레 흘러들어 형성된 이 호수는, 바닥에 가라앉은 화강토가 햇빛을 반사하며 신비로운 청록빛 수면을 만들어낸다. 그 수면 위로 45m 높이의 거대한 수직 직벽이 거울처럼 비치며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1급수에만 산다는 가재와 도롱뇽이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인간이 훼손한 깊은 상처를 스스로 보듬어 낸 자연의 위대한 치유력을 묵묵히 증명한다.

천주호의 절경을 마음에 담고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기면, 포천석 특유의 밝고 단단한 질감을 살려 정성스레 깎아낸 수십 점의 작품이 전시된 조각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삭막했던 폐석산이 섬세한 예술의 산실로 진화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호수와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교묘하게 자리 잡은 산마루 수상 공연장은 거대한 암벽을 캔버스 삼아 미디어파사드 영상과 웅장한 자연 음향 효과를 선사하며, 밤하늘을 수놓는 덩굴 터널과 화강암 벽면의 ‘천사의 날개’ 포토존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지친 일상을 벗어날 새로운 희망의 쉼표를 건넨다.
우주를 품은 천문과학관, 5월의 하늘을 여는 키즈데이

아트밸리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조각공원 정상 부근에 우뚝 선 천문과학관을 비롯해, 포천문화관광재단이 운영하는 포천 아트밸리 일대에서는 다가오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 모두가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체험형 문화행사 ‘아트밸리 키즈데이’를 풍성하게 개최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자연의 웅장함과 예술의 섬세함이 결합된 아트밸리만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실물 교육 프로그램들로 가득 채워진다. 아이들의 눈망울을 반짝이게 할 태양 관측과 태양안경 만들기, 천문과학관 보물찾기, 모바일 방탈출 게임 등 과학과 놀이가 만난 이벤트를 비롯해 로켓 소원 쓰기, 공 던지기, 자유로운 낙서 놀이터 등이 쉴 틈 없이 아이들을 반긴다.

행사 당일 천문과학관에서는 우주의 신비를 담은 천체투영실 상영을 매시 정각과 30분으로 알차게 확대 편성하여 관람객을 맞이한다. 또한 산마루 수상 공연장에서는 뮤지컬과 신비로운 마술쇼가 결합된 ‘뮤랑극단’의 퍼포먼스를 필두로 마홀나눔음악회, 경쾌한 밸리댄스 등 봄날의 생동감을 더할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진다. 체험 및 이벤트 프로그램은 모두 무료로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으며, 입장료와 모노레일 이용료만 별도로 준비하면 된다. 상처 입고 버려졌던 공간에서 포천을 대표하는 생태 관광 거점으로 눈부시게 부활한 아트밸리는, 파괴와 복원의 묵직한 서사를 품은 채 5월의 아이들에게 과학과 예술을 동시에 안겨주는 살아있는 힐링의 교보재로 다정하게 진화하고 있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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