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주꾸미, 자연의 이치와 변화의 철학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주꾸미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8/yonhap/20260428113318642jbgx.jpg)
주꾸미는 봄철 별미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인간의 기운이 서로 만나 이루는 도(道)의 음식이다.
봄이 오면 바다는 가장 먼저 깨어난다. 육지는 꽃으로 계절을 알리지만, 바다는 작은 생명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 대표가 바로 주꾸미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기운이 막 돌기 시작할 때, 주꾸미는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상으로 나온다. 보이지 않던 생명이 드러나는 이 순간, 우리는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생명의 작용을 목격한다.
이는 마치 노자가 말한 "만물은 고요에서 나와 다시 움직인다"는 이치와 같다. 정지 속에 있던 것이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그 찰나, 그것이 바로 봄이고, 그것이 곧 도의 작용이다.
주꾸미의 영양학
양생학에서 주꾸미는 맛이 달고 짜며 성질은 평(平)하다. 그리고 간·비·신경(肝·脾·腎)으로 들어간다. '평하다'는 것은 치우침이 없다는 뜻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누구에게나 부담이 적고, 몸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힘을 가진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노자의 말처럼, 주꾸미는 중용의 음식이다. 강하지 않으나 약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다. 그래서 허한 사람에게는 보충이 되고, 과한 사람에게는 균형을 잡아준다. 음식이 영양을 넘어 조화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봄은 오행으로 보면 목(木)의 계절이며, 이는 인체의 간과 연결된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이 위로 솟구치는 시기, 사람은 쉽게 피로해지고 감정이 흔들리며 눈이 침침해진다.
이때 주꾸미는 몸에 필요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간을 보하고 눈을 밝히며,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풀어준다. 풍부한 타우린 성분은 간 기능을 돕고 피로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주꾸미 한 점은 지친 간을 깨우는 작은 약과 같다.
옛 의서에서는 주꾸미를 양혈익기(養血益氣)라 하였다. 피를 보하고 기운을 더한다는 뜻이다. 특히 산후에 기력이 떨어지고 젖이 부족할 때 주꾸미를 활용한 음식이 쓰였다는 기록은, 이 식재료가 생명을 이어주는 역할까지 했음을 보여준다.
바다는 생명을 품는 곳이다. 그 바다의 생명을 먹는다는 것은 생명의 순환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는 민간요법의 영역을 넘어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행위다.
주꾸미는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작은 생명이다. 조용히 움직이다가 위협을 받으면 먹물을 뿌리고 자취를 감춘다. 억지로 맞서 싸우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만 움직인다. 이러한 모습은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의 삶과 닮았다.
주꾸미의 생은 길지 않다. 태어나고, 번식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짧은 순환은 오히려 완전하다.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흐름 자체가 자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현대 영양학 역시 주꾸미의 가치를 뒷받침한다. 타우린이 풍부해 간 해독과 신경 안정에 도움을 주며,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하면서도 지방이 적어 현대인에게 적합한 식재료로 평가된다. 전통 의학과 현대 과학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사실은 좋은 음식이 시대를 초월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재료를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강한 양념과 불맛에 의존하는 조리법은 본래의 기운을 가리기 쉽다. 주꾸미의 본질은 담백함에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짧게 데치거나 맑은 탕으로 먹는 것이다.
주꾸미 약선탕은 그 대표적인 예다. 깨끗이 손질한 주꾸미를 끓는 물에 넣고, 마늘과 대파로 잡내를 잡은 뒤 짧게 익혀낸다. 여기에 미나리를 더하면 간의 기운을 돕고, 국물은 더욱 맑고 깊어진다. 이렇게 만든 한 그릇은 자극 없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을 부드럽게 흐르게 만든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른다"고 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어떤 자연을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봄에 주꾸미를 먹는다는 것은 계절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계절의 기운을 몸 안으로 들이는 행위다.
그래서 주꾸미는 몸을 깨우는 신호다. 겨울의 정체를 풀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시작의 음식이다. 봄날, 주꾸미 한 그릇은 자연과 하나 되는 작은 수행이며 큰 깨달음이다.
변화로 살아남는 존재, 주꾸미와 손자병법
손자병법 '구변(九變)의 장'으로 주꾸미 요리를 바라보면 또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주꾸미는 변화로 살아남는 존재다. 모래 속에 숨기도 하고, 바위틈에 몸을 낮추기도 하며, 위험이 오면 먹물을 뿌리고 사라진다. 같은 모습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변화는 생존의 기술을 넘어 존재의 본질이다. 손자는 "장수는 아홉 가지 변화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변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패하고, 변화를 아는 자만이 끝내 살아남는다. 주꾸미는 그 자체로 바닷속에서 병법을 실천하는 존재다.
![주꾸미 숙회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8/yonhap/20260428113318836pfkp.jpg)
주꾸미 회는 무형의 전략이다.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며 불필요한 것을 더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이미 완성된 힘을 지닌다. 이는 손자가 말한 "형체를 드러내지 말라"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주꾸미 숙회는 타이밍의 음식이다. 너무 익히지도, 덜 익히지도 않는 그 순간을 아는 것이 핵심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을 동시에 경계하는 균형의 지혜가 담겨 있다. 숙회 한 점에는 때를 읽는 병법이 담겨 있다.
주꾸미탕은 기운을 모은다. 흩어져 있던 힘이 국물 속에서 하나로 응축되며 몸 전체로 퍼진다. 작은 재료가 하나의 흐름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이는 손자가 "기세를 모아 한 번에 쓰라"는 전략과 같다.
찜은 중심을 지키는 조리다.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열 속에서 본질을 잃지 않는다. 중심을 지키는 것이 곧 전체를 지키는 길이다. 손자가 말하는 "중심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이치와 통하며, 양생으로 보면 비위(脾胃)를 보호하고 기운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꾸미 볶음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8/yonhap/20260428113319011bsqb.jpg)
볶음은 순간의 힘이다. 빠르고 강하게 맛을 끌어올리지만, 지나치면 균형을 잃는다. 강함은 필요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지나친 자극은 위장을 상하게 하고 기운을 흩뜨린다. 음식에서도 공격은 필요하지만, 절제가 따라야 한다.
연포탕은 조화의 완성이다. 담백한 국물과 향긋한 채소, 그리고 주꾸미의 기운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몸을 회복시킨다. 자극 없이 이끄는 힘이 담겨 있다.
![주꾸미 연포탕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8/yonhap/20260428113319188hhku.jpg)
무침은 변화 속의 균형이다. 서로 다른 성질이 만나 새로운 조화를 이루며, 상황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음식이다.
주꾸미는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숨을 때를 알고 움직일 때를 알며, 굳이 싸우지 않고도 존재를 이어간다. 이것이 바로 구변(九變), 변화의 지혜다.
![주꾸미 무침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8/yonhap/20260428113319340xpjz.jpg)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지만,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몸의 흐름은 달라진다. 자극을 따를 것인가, 균형을 따를 것인가. 이 선택이 곧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처럼 음식 섭생은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서 몸을 다스리고 삶을 바로잡는 저속노화의 방법이다. 봄날 주꾸미 한 그릇에는 자연의 순환, 변화의 지혜, 그리고 균형의 철학이 담겨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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