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달걀 노른자? 베트남에서 꼭 마셔야 할 음료 [신예희의 나홀로 한입여행]
한 잔으로 스며드는 현지의 맛

여행의 진짜 시작은 언제일까. 항공권을 결제하는 순간? 공항버스에 타는 순간? 출국장을 나서는 순간? 나로 말하자면, 역시 이틀째 날 아침이라고 말하겠다.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은 아무래도 잔뜩 긴장한 채다. 주로 혼자 여행하는 데다 머무는 기간도 꽤 긴 편이라 걱정이 많다.
당장 이 무거운 짐을 메거나 끌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무사히 이동해야 하고, 체크인까지 잘 마쳐야 한다. 부디 내 숙소가 사진에서처럼 괜찮기를 바라면서. 방에 들어와서도 곧바로 쉬기는커녕 있어야 할 게 다 있는지 확인한 후 짐을 하나씩 푼다. 그런 다음에야 겨우 씻고 누워보지만, 긴장이 덜 풀렸는지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천장을 바라보며 실감한다. ‘와, 내가 진짜 왔네.’ 퉁퉁 부은 얼굴로 휴대폰과 지갑을 움켜쥐고 일단 밖으로 나갈 차례다. 생수도 두어 병쯤 사다 놔야 하고, 뭐라도 좀 먹어야지. 하지만 여전히 좀 소심하다. 이 동네, 어떤 곳일까, 사람들은 호의적일까? 난 여길 좋아하게 될까?

그럴 땐 일단 뭐든 한잔 마신다. 카페인 충전을 할 시간이다. 낯선 곳에선 식당보단 카페에 들어가는 게 왠지 마음 편하다. 마침, 베트남은 맛있는 커피 메뉴가 많은 나라다. 이왕이면 실내보단 야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자. 생경한 건물과 가로수에, 뜻 모를 간판과 표지판에, 지나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사람들 모습에 눈과 귀가 익숙해질 때까지.
뭐부터 시작할까? 호찌민에서라면 역시 박씨우(bạc xỉu)겠다. 박은 백(白), 즉 흰색이고 씨우는 조금이란 뜻이다. 일명 화이트 커피. 컵에 연유를 붓고, 거품 낸 흰 우유를 채운 다음 맨 위에 진한 커피를 조금 부어 만든다. 베트남과 프랑스, 중국 문화가 혼합된 독특한 메뉴다.
베트남에 커피가 들어온 건 프랑스 식민 지배 시기인 1800년대 중반인데, 시간이 흘러 1950년대에 호찌민에 자리 잡은 중국 이민자들이 기존의 쓰디쓴 유럽식 커피에 우유와 연유를 듬뿍 넣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덥고 지치는 날, 차가운 박씨우를 빨대로 쭉 빨아들이면 온몸에 단맛과 고소한 맛이 문자 그대로 쫙 스며든다. 캬, 이거지! 맛의 핵심은 연유다. 우유만 가지고는 절대 채울 수 없는 특유의 진한 풍미가 있다. 더 끈적하고 더 부드러운, 기분 좋게 살찌는 맛. 분명 누구나 좋아할 맛이다.

독특한 재료를 넣은 커피에도 도전해 보자. 카페쭝(cà phê trứng), 일명 에그 커피다. 달걀노른자를 열심히 휘저어 만든 거품을 진한 커피 위에 올렸다. 박씨우가 호찌민 출신이라면, 카페쭝은 하노이가 원조다. 1940년대 후반,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우유 공급이 부족해지자 하노이의 한 카페 주인이 임기응변을 발휘해 즉석에서 개발한 메뉴인데, 의외로 맛이 좋아 금세 인기를 얻었단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날달걀이라니. 그래서인지 여행자를 위한 체험 상품 중에선 카페쭝을 만드는 수업이 꽤 많다. 그래, 직접 해보면 알겠지. 도전!
우선 베트남식 커피 드리퍼인 카페핀(Cà phê phin)으로 진한 커피를 내린다. 그 사이 신선한 달걀노른자에 설탕을 넣고 거품기로 휘젓는데, 맨손으로 하면 너무 오래 걸리니 되도록 전동 거품기를 쓰는 게 좋다. 이때 보드카나 위스키 등의 도수 높은 술을 한두 방울 정도 섞으면 자칫 날 수도 있는 비린내를 잡을 수 있다. 5분가량 거품을 내면 어느새 노른자가 아주 예쁜 크림으로 변한다. 연한 노란색의 쫀쫀하고 부드러운 크림이다.

이제 재료들을 조립할 차례다. 커피잔 바닥에 연유를 조금 붓고, 진한 커피를 잔의 1/3가량 부은 다음 이 크림을 듬뿍 올린다. 맨 위에 시나몬 파우더를 톡톡 뿌려주면 카페쭝 완성. 아참, 마시기 전에 스푼으로 두어 번 위아래로 휘저어 연유와 커피, 크림을 가볍게 섞어주자. 그럼 모든 레이어의 풍미가 입안으로 한 번에 밀려 들어올 것이다. 달콤하고 부드럽고 진한 커피 크림을 마신다기보다 먹는다는 느낌이랄까. 그야말로 디저트 대용 커피다.

커피보단 차를 좋아한다면 상큼하고 달콤한 짜딱(trà tắc)이 딱이다. 짜는 차, 딱은 깔라만시(calamansi)를 의미한다. 깔라만시는 베트남 식당이나 노점, 카페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그마한 감귤류 열매로, 신맛이 워낙 강해 이런저런 음식에 양념처럼 두루 쓰인다. 쌀국수 국물에도 잘 어울리고, 튀김 등을 찍어 먹는 소스에도 꾹 짜 넣으면 참 맛있다.

짜딱은 아주 진하게 우린 녹차(홍차도 좋다)에 설탕을 넉넉히 넣어 잘 녹이고, 즉석에서 짠 깔라만시즙을 듬뿍 넣은 다음 얼음을 가득 채운 음료다. 종일 여행하느라 지쳤을 때 짜딱을 꿀꺽 마시면 눈이 번쩍 뜨인다. 단지 새콤달콤하고 시원해서뿐 아니라, 카페인도 제법 듬뿍 들어있어서다.

앞서 소개한 음료가 하나같이 너무 달 것 같다면 짜다(trà đá)는 어떨까? 직역하면 얼음을 넣은 차, 즉 아이스 녹차다. 녹차만 우려내는 게 아니라, 레몬그라스와 판단 잎, 생강, 재스민차, 연꽃차, 레몬즙 등을 적당히 섞어 맛을 낸다. 뭘 얼마만큼 섞느냐는 전적으로 가게 주인 마음에 달려있다. 짜다를 주문하면 미리 우려둔 진한 찻물을 유리컵에 따른 후 찬물을 섞고 얼음을 넣어준다. 쓰고, 떫고, 향기롭고, 살짝 달큰하다. 얼음이 반 이상 녹을 때까지도 맛이 여전히 강한 걸 보니 무척 진하게 우려내는 모양이다.

전국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음료인데, 특히 하노이엔 유난히 짜다 노점이 많다. 일부러 찾아 나설 필요 없을 정도로 정말 많다. 엉덩이만 겨우 걸칠 만한 작은 의자를 길가에 여러 개 늘어놓고 장사하니 내키면 그냥 앉으면 되고, 필요하다면 빈 의자를 하나 당겨다가 탁자로 쓰면 된다. 노점에선 짜다만 파는 게 아니라 짜딱과 커피, 생수, 캔 음료도 파니 맘에 드는 걸로 골라보자.

의자 주변엔 으레 길쭉한 대나무 몽둥이 같은 게 두어 개쯤 보일 텐데, 노점에서 공짜로 서비스하는 투옥 라오(thuốc lào)라는 물담배 파이프다. 대략 70센티미터 길이의 대나무 한쪽 끝을 막고 물을 담은 후 주둥이 부분에 담뱃잎을 꾹꾹 눌러 담아 불을 붙인다. 그런 다음 대나무 통 윗부분에 입을 바짝 대고 빨아들이면 담배 연기가 물을 통과해 입안으로 들어간다. 베트남과 라오스, 태국 등에서 수백 년 전부터 즐겨온 방식이다.
![[좌] 투옥 라오 파이프 [우] 담뱃잎에 불을 붙이는 모습 / 사진. ⓒ신예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28/ked/20260428105745704cnvv.jpg)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멈추고 짜다를 주문해 의자에 앉아 홀짝거리고, 투옥 라오를 피우고, 둘씩 짝지어 장기도 둔다. 그 옆에서 해바라기씨를 오물오물 까먹다 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에어컨도 없고 의자도 엉덩이에 배기지만, 짜다 노점만의 정취가 있다.

다 마시고 나면 마트에 가 보자. 커피와 차 판매대에도 들러야 한다. 베트남엔 워낙 다양한 인스턴트 음료 파우더가 있어 고르는 재미가 있다. 그래봤자 여기서 마신 그 맛이 나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그리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요런 걸 다 구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기어이 이것저것 골라 담아 집으로 가져갈 것이다.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고, 함께 나누고 싶어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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