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담합해도 집행유예”…처벌 불감증에 빠진 기업들

“야 구속되면 실형 살아야 되는 거 아니야?”
”실형 산 사람은 없고, 다 집행유예로 빠져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검찰이 전분당 가격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긴 기업 직원들 사이 통화 내용의 일부다. 가볍게 주고받은 말처럼 들리지만, 담합 범죄를 바라보는 기업 내부의 인식을 보여준다. 적발돼도 회사는 과징금을 내고, 책임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는 믿음이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담합은 범죄가 아니라 손익 계산의 대상이 된다.
검찰은 CJ제일제당과 대상, 사조CPK 등 전분당 업체 3곳이 2017년부터 2025년까지 8년간 10조원이 넘는 규모의 담합을 벌였다고 보고 있다. 가격 인상 시기와 수준을 맞추고 시장을 나눠 가진 전형적 카르텔이라는 것이다. 전분당은 음료와 과자, 빵, 소스 등 각종 식품 원료로 쓰인다. 이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 마주하는 수많은 제품 가격도 함께 오른다.
담합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가격은 오르고 선택권은 줄어든다. 성실하게 경쟁한 기업은 손해를 보고, 담합에 가담한 기업만 이익을 챙긴다. 시장경제 질서를 흔드는 행위다. 검찰은 이들 기업의 담합으로 주요 식품 원료 가격이 많게는 70% 넘게 오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담합은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걸려도 치를 대가가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원은 최근 3조원대 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구속 기소된 CJ제일제당 전 식품한국총괄(대표급)과 삼양사 전 대표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과거 담합 전력이 있는 기업들이 또다시 유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쟁위원회는 이미 20년 전 ‘카르텔에 가담한 개인에 대한 제재’ 보고서를 통해 기업 과징금만으로는 담합 억지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외에선 담합 범죄에 책임이 있는 기업 임원에게 실형을 선고한다. 미국은 2011년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된 일본 자동차 부품 업체 야자키 임원 4명에게 최장 2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영국에서도 가격 담합에 가담한 기업 관계자들에게 실형이 내려졌다. 담합을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개인의 범죄로 본다는 뜻이다.
우리도 제도를 손볼 때가 됐다. 자진신고한 기업에 기소를 면제해주는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담합으로 얻은 부당이득에 걸맞은 과징금, 소비자가 피해를 돌려받을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 그리고 담합을 주도한 책임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형사 처벌이 함께 가야 한다.
조 단위 담합을 저지르고도 “실형 산 사람은 없다”는 말이 기업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현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법이 시장을 지키지 못하면 가격은 경쟁이 아니라 담합으로 정해진다. 담합해도 집행유예라는 인식부터 깨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처벌 불감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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