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톡커] 신용위기 공매도로 돈벌이 나선 월가 ‘잔머리’
美생명보험사 총자산 35%가 사모대출 묶여
헤지펀드들 공매도 투자...손실→이익 역이용
블루아울 펀드 지분은 저가 공개매수 표적행
‘하락 베팅’ 파생상품도...퇴직연금까지 로비
당국 전방위 조사...‘시스템 위기론’은 아직

최근 사모대출 부실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이를 역으로 이용해 돈을 벌려는 시도가 월가에 활발해지고 있다. 시장의 적당한 공포를 수익의 기회로 삼는 거래가 속출하는 것이다. 투자 대상 기업 파산, 인공지능(AI)의 소프트웨어(SW) 업종 대체 가능성 등 위기 신호는 잇따르지만 아직은 이 문제가 월가 전체의 금융 시스템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 더 힘을 받는 분위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때처럼 한 분야의 문제가 다른 금융 부문까지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은 계속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보험 전문 평가 기관인 AM베스트 자료를 인용한 데 따르면 미국 생명·연금보험사의 사모대출 보유액은 지난 1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생명보험사 대차대조표의 약 35%가 사모대출에 묶여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헤지펀드들이 이를 공매도의 기회로 포착했다고 짚었다. 오텍스에 따르면 거래중개인들은 지난 1년 동안 미국 10대 생명보험사의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공매도 베팅액을 약 30억 달러 추가해 총액을 약 53억 달러까지 끌어올렸다. 10대 생명보험사 주식 가운데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의 비율(대차 잔고)은 130% 이상 증가했다.
로이터통신이 이달 15일 기준으로 1년치를 계산한 결과 글로벌 보험사에 대한 공매도 베팅 가치는 이 기간 60% 이상 증가해 3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오텍스에 따르면 세부적으로 프린서플파이낸셜그룹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베팅 상태)이 지난 1년 동안 80% 이상 급증해 지난달 4%를 돌파했다. 브라이트하우스파이낸셜에 대한 공매도 베팅은 지난달 9일 가용 주식의 13%를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푸르덴셜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도 해당 기간 1.96%에서 3.27%로 상승했다.
실제 생명보험사가 포함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보험산업지수는 올 들어 이날까지 약 5% 하락해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S&P500지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도 15개 미국 생명보험사의 합산 주당순이익(EPS)이 올해 7%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바클레이스는 “15개 미국 생명보험사가 경기 침체나 사모대출 손실을 포함한 상당히 심각한 결과를 주가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는 다소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덩치를 끝없이 불리던 사모대출 시장은 지난해 9~10월 자동차 부품 대기업 퍼스트브랜즈와 비우량 자동차담보대출 업체 트라이컬러·프리마렌드가 잇따라 파산 신청을 한 뒤부터 새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어 올 1월 12일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워크’가 출시된 뒤부터는 주요 투자 대상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줄줄이 AI 모델에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를 받으며 대규모 환매 사태를 맞았다.
현재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 전체 규모는 3조 달러(약 4450조 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미국 금융연구국(OFR)은 이 가운데 은행·비은행권의 사모대출 위험노출액 규모를 총 4100억∼5400억 달러(약 608조~801조 원)로 지난달 추산했다. 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1분기 미국 사모대출 펀드 투자자들이 운용사에 환매를 요청한 금액을 총 208억 달러(약 30조 7000억 원)로 계산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월 사모대출 부도율이 5.8%로 치솟아 집계를 시작한 2024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KKR·안타레스캐피털·뉴마운틴캐피털 등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사모대출 투자 대상인 치과 경영 서비스 기업 어포더블케어의 경영 악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75년에 설립된 어포더블케어는 현재 14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사모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판에 몰렸다. 사모펀드인 하베스트파트너스는 금리가 낮고 기업 주가는 높았던 2021년 사모대출로 이 회사를 인수했다.
사모대출 운용사들은 어포더블케어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자 이를 현금 대신 채권으로 받는 현물 상환(PIK) 방식으로 전환했다. 회계 장부상으로는 이자를 갚은 것처럼 기재되지만 실제로는 빚이 누적되는 방식이다. 사모펀드들은 대출의 가치도 제각각으로 책정했다. 블랙스톤은 지난해 말 어포더블케어 대출의 평가 가치를 액면가의 80%로 측정했지만, KKR은 93%, 뉴마운틴은 10%로 봤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사모대출 펀드는 소프트웨어 업종과 함께 헬스케어 분야에도 대규모 자금을 빌려줬다. 사모펀드 운용사가 소규모 경영체였던 개인 병원이나 의료기기·서비스 업체를 여러 곳 인수할 때 다른 운용사가 사모 대출로 지원하는 구조다.
잡음이 끊이지 않자 미국 금융 규제당국이 사모대출 시장 전방위 조사에 착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최근 몇 달 동안 대형 사모대출 펀드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여러 건의 집행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SEC는 초기 단계인 이번 조사에서 운용사들이 보유 대출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투자자에게 공시한 정책을 준수하는지,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가 간 이해충돌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SEC는 특히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블루아울캐피털에 대해서만 6개월째 광범위한 검사를 펼치고 있다. 블루아울이 올 1분기에 대형 펀드 두 곳에서 약 54억 달러의 환매 요청을 받는 등 시장 불신의 중심에 서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폴 앳킨스 SEC 의장은 21일 연설에서 “민간 사모대출이 직면한 새로운 압력을 주시하고 있고 일반 투자자들이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 분야에서는 불투명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은행들을 상대로 위험 노출액(익스포저) 관련 대출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도 최근 사모신용 시장의 위험 요인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SEC는 지난 20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함께 일반적인 사모펀드는 보고 규제를 완화하되, 사모대출 펀드는 별도로 항목을 신설해 감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월가에서는 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을 위기 신호를 잠재우려는 선제적 성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앞서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 2008~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은행 건전성과 파생상품 익스포저 등을 전수 점검한 바 있다. 업계에 정부의 감시 의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위기 이전에 관련 데이터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에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위기가 고조되는 듯하자 이제는 공매도 베팅처럼 이를 역이용하려는 시도도 월가에 잇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2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헤지펀드 사바캐피털의 창립자인 보아즈 와인스타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블루아울의 사모대출 펀드 ‘블루아울캐피털코프 II’ 투자자들에게 순자산가치(NAV)의 65~80% 수준에서 지분을 매입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펀드는 지난 2월 블루아울이 분기별 환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품이다. 블루아울은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팔지 말라고 촉구했고 사바캐피털과 콕스캐피털이 진행한 지난주 공개매수는 결국 전체 주식의 1% 미만만 응하는 데 그쳤다. 사바캐피털은 그럼에도 클리프워터의 단기 폐쇄형(인터벌) 펀드와 블루아울의 ‘블루아울크레디트인컴코프(OCIC)’ 등 다른 사모대출 펀드에 대한 새로운 입찰도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JP모건 등 미국의 주요 대형은행들은 금융사들의 신용 위험에 연동된 신용부도스와프(CDS)지수 ‘CDX 파이낸셜’을 13일 출시하기도 했다. 사모대출 위험 노출액을 헤지(위험 분산)하는 수요를 담기 위해서다. CDX 파이낸셜 지수는 편입 기업들의 신용 위험이 확대되거나 시장 심리가 부정적으로 변하면 가치가 상승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이 지수에는 블랙스톤·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아레스매니지먼트 등 주요 사모신용 운용사 관련 기업들도 포함돼 전체 구성 종목의 약 12%를 차지한다. 보험사, 지역은행, 신용카드 회사 등도 지수에 편입된다.

사모대출 시장의 위기를 역이용하는 사례는 거꾸로 보면 위험의 정도가 아직 크지 않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위기이기에 이를 반대로 활용한 돈벌이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 월가 주요 인사들은 사모대출 위기가 아직 금융 체계 전반에 전이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WSJ는 23일 규제 당국의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이런 조처가 그렇다고 시스템 차원의 위기를 알리는 긴급 경고 단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짚었다.
지난해 이른바 ‘바퀴벌레론’을 띄웠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 역시 14일 실적 발표회에서 “시스템적인 문제는 아니다”라며 “통증이 있을 수는 있지만 특별히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바클레이스는 20일 별도 보고서를 내고 “보험사 대다수의 문제는 급격한 신용 위기가 아니라 투명성 부족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27일 “사바캐피털과 콕스캐피털의 저조한 공개매수 매입 실적은 사모대출 시장의 불안감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며 “투자자들이 현재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현금화하기보다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는 쪽을 택했다”고 짚었다.
사모대출이 전체 민간 자본시장의 아주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에 아직은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외 충격이다. 현재는 미국과 이란 간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가 잇따르고 경기 침체, 물가 상승, AI의 급속한 발전에 대한 걱정이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경제는 결국 심리에 의존하기에 사모대출로 위축되는 자본 투자가 어디까지 확산할지는 계속 주시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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