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공장에 '과속방지턱'을 설치했다 [언박싱 연구실]
DNA 플랩 구조 이용한 제어 기술 세계 최초 개발
단백질 없이 서열 설계만으로 RNA 생성 제어

이 기술은 아주 정교한 '유전자 스위치' 역할을 한다. 기존에는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기 위해 복잡한 단백질이나 화학 약품을 써야 했지만, 이제는 DNA 설계도에 짧은 조각 하나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조절이 가능하다.
덕분에 아주 적은 양의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고성능 진단 키트'나, 특정 질병 유전자가 나타났을 때만 치료 약물을 만들어내는 '똑똑한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비록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기까지는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생명 현상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제어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팀은 RNA를 만드는 공장인 '효소'의 길목에 '플랩(Flap)'이라는 방해물을 설치했다. 이는 매끄러운 고속도로 위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과속방지턱'과 같다.
연구팀은 이 방해물의 '성분'에 따라 억제 효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 중 시토신(C)을 단 3개만 이어 붙여도 RNA 공장의 가동률이 절반 이하(50% 이상 억제)로 뚝 떨어졌다. 반면 다른 종류의 염기를 썼을 때는 효소가 방해물을 쉽게 무시하고 지나갔다. 특정 염기 서열을 아주 정밀하게 배치해야만 유전자 공장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과속방지턱' 원리를 응용해 상황에 맞게 작동하는 두 가지 제어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D-FIT' 방식은 특정 효소가 청소기처럼 방해물을 잘라내면, 멈춰있던 RNA 공장이 즉시 다시 가동(100% 회복)되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M-FIT' 방식은 일종의 '범인 검거용 자물쇠'다. 평소에는 가동을 멈추고 있다가, 오직 목표로 하는 바이러스 유전자가 나타나 자물쇠를 풀어줘야만 RNA 생성이 시작된다.
이번 연구는 복잡한 장치 없이 DNA 설계만으로 생명 현상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제 학술지 'Angewandte Chemie'의 표지를 장식한 이 기술은 미래의 맞춤형 바이오 의료 기술을 지탱할 든든한 뿌리가 될 것이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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