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남친 사시공부 도와주다 나만 합격해버렸다,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02번째 레터는 29일 개봉하는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입니다. 주인공 남자의 성(姓)도 사토, 여자의 성도 사토라서 영화 제목이 ‘사토상과 사토상’입니다. 남친 사토가 사법시험 고시생인데 자꾸 떨어져요. 여친 사토가 보다 못해 남친의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며 공부를 시작하는데, 남친은 또 떨어지고 여친은 단번에 합격. 제 생각엔 이때 이미 둘의 결말은 정해졌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다르더군요. 영화라선 그런지. 보다가 몇 번이나 스크린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말리고 싶어져서요. “안 돼~! 그건 아냐! 사랑으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구!” 답답하고 안타까우면서도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 여러분이라면 어떠셨을지. 결말은 빼고 말씀드릴 테니 각자 선택해보세요.

흔히 남녀 주인공이 중심인 영화는 둘의 사랑을 응원하면서 보게 됩니다.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이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여튼) 둘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하면서요. 영화 ‘사토상과 사토상’은 반대였습니다. 이대로는 아니야, 헤어져, 그나마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어. 그러면서도 동시에 알고 있습니다. 둘이 헤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화면에서 더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지켜봐줘야될 거 같으니까요.
‘사토상과 사토상’의 주인공은 사토 타모츠(남학생)와 사토 사치(여학생)입니다. 22살 대학생 때 만났어요. 커피 시음하는 동아리에서 알게 됐는데, 둘의 성격이 참 다르다는 걸 단순한 대사에서 바로 보여줍니다. 남자가 갈라파고스산 유기농 하이로스트 원두를 고를 때 여자는 오늘의 할인 상품을 고릅니다. 남자는 원두 향을 위해 사흘 뒤까지 갈지 않고 기다리지만 여자는 벌써 후다닥 갈아버렸습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둘 다 똑같이 착하고 성실해요. 20대 초반 푸르른 청춘은 서로가 마냥 좋습니다. 둘이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 떠올리게 되실 거에요.
한 가지 알고 보시면 좋은 게, 화면 오른쪽 위에 큰 숫자를 보여주거든요. 이건 감독이 일부러 만들어둔 장치인데, 두 사람의 나이입니다. 영화 시작하면 스크린에 숫자 37이 딱 떠서 저게 뭔가 하실 수 있어요. 37살 시점에서 시작해서 처음 만났던 22살로 갔다가 영화 마지막에 다시 37살로 옵니다. 관객은 그렇게 두 사람의 15년을 함께 하게 됩니다.

숫자 37이 뜨는 영화 도입부 37살 지점에서 여주인공은 변호사입니다. 이혼 소송 의뢰인의 푸념을 함께 들은 동료 변호사가 말합니다. “부부 사이가 대체 뭐기에 저런 걸까요. 결혼은 왜 하는 걸까요.” 아마도 이 영화 전체의 질문이기도 할 이 의문은 여주인공도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그녀는 22살에 만난 남주인공과 결혼해 아이도 있습니다. 법률가가 되겠다며 사시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낙방하는 남주인공을 도와주겠다며 같이 공부하다 남주인공은 떨어지고 여주인공은 붙었습니다. 그것도 첫 도전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남주인공의 심정이 되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꼭 붙고 싶은 시험인데 자꾸 떨어집니다. 동거 중인 여친(이때는 결혼 전)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여친이 “혼자 공부하면 힘들지”라며 같이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여친은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공부하며 스터디 파트너가 돼줬습니다. 합격 발표날, 나는 또 떨어졌는데, 여친은 단번에 붙었습니다. 떨어진 것도 무참한데, 어슬렁 공부하던 여친은 바로 붙다니. 여친에게 축하한다는 말도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자, 남자는 이 잔인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이후 벌어지는 둘의 삶은 얼핏 다큐멘터리 보는 것도 같아요. 인생, 쉽지 않지만, 이런 상황은 더 쉽지 않겠지요. 너무 영화적인 설정이라고 하실 수 있는데, 실제로 법학과 졸업한 감독 아마노 치히로의 자전적 이야기가 깔려있다고 합니다. 여자는 변호사가 되어 법정을 오가고, 남자는 사시 공부를 계속하며 살림을 합니다. 여자는 변호하는 모습으로, 남자는 파 써는 모습으로 나와요. 감독의 경험이 들어가서 그런지, 관계의 미세한 균열이 사소한 대화에서도 정말 잘 드러나요. 이를테면 이런 대사입니다. 욕실에 들어갔다 나온 여자가 “화장지 없어”라고 말합니다. 남자가 쏘아붙입니다. “화장지 없네가 아니라 없어라고 말했어. 책임 추궁 뉘앙스잖아.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나보고 사오라는 거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냥 지나갈 법한 한마디에도 이런 반응이 나옵니다. 남자도 원하는 게 아니겠지만, 자신도 보기 싫은 자신의 밑바닥이 튀어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다 자기가 더더 싫어지게 되고. 악순환입니다.

제가 레터 앞부분에 제 생각을 말씀드렸어요. 이건 아니다, 이대로 오래 갈 수 없다고요. 꼭 연인이 아니라 막역한 친구였어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걸 쉽게 가진 상대방, 자신은 그걸 가지게 될 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를 바라보며 생기는 좌절과 질투는 관계를 멍들게 합니다. 지치게 하고 바닥을 보게 하고. 그건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을까요. 상대방을 볼 때마다 자신의 실패가 되풀이 떠올려지는 관계. 상대방을 미워할 수 없는데도 미워지고, 그래서 내가 더 싫어지고. 내가 나를 싫어지게 만드는 사람과 과연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그래서 저는 사토상과 사토상이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라서 그런지, 둘의 결단은 제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결혼. 남자가 “나 아직 이 상태인데”라며 머뭇거리지만 여자가 “괜찮아”라며 결혼하게 됩니다. 이때 여자가 임신한 상태이기도 했고요.
결혼한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직접 보시고 확인을. 예상대로 흘러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감독의 실제 경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저건 너무 영화같다 싶은 부분은 없어요. 선택이란 게, 아닌 줄 알면서도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렸겠지요.

영화 마지막까지 골똘히 집중하게 되는 데에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어요. 여주인공 사토 사치 역의 배우가 눈에 익으실 거에요.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청각 장애 권투선수로 인상 깊었던 키시이 유키노입니다. 그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참 잘했고요. 남주인공 사토 타모츠 배우는 어디서 봤더라 싶었는데 영화 ‘에고이스트’에서 스즈키 료헤이의 연인으로 나왔던 미야자와 히오입니다. (잠시 딴 얘기입니다만, ‘에고이스트’ 안 보셨으면 강추합니다. 평생을 안고 갈 사랑의 흔적이란 게 뭔지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에요) 두 사토상의 선택과 여러분의 선택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네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선닷컴 ‘그 영화 어때’ 구독 링크 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네이버 ‘그 영화 어때’ 구독 링크 https://naver.me/FZ82SAP3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결식·야식·간식·폭식… 당뇨에 치명적인 4가지 식습관
- 병뚜껑만 따도 위법… 공포의 ‘open container law’
- 목·어깨 통증 잡는 핵심… ‘날개뼈 리듬’ 회복 운동
- 4차원 총천연색 독수리 출현… “이거 AI 영상 아니었어?”
- 청산가리로 친아버지와 동생까지… 1980년대 ‘여성 연쇄살인마’ 김선자
- 본드에서 필로폰까지… 30년 마약 중독자의 고백
- [굿모닝 멤버십] ‘건강음료’를 건네던 친절한 주부의 두 얼굴
- 주식투자에서 수익을 올렸을 때 더 조심해야 하는 이유
- 잠실 대규모 재건축 레이스…강남 중심이 이동한다
- 유가 뛰는데, 주가 더 뛰어… 반도체·AI가 깬 ‘증시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