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떠나고 터진 전쟁…막힌 국경 열릴 날 언제일까요

김지훈 기자 2026. 4. 28. 07: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자에서 온 편지 7
할리마 하탑
세월호, 제주 4·3, 제주 해녀항일운동 등을 작품으로 그려온 김홍모 작가가 할리마 하탑의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 김홍모

제 남편 오마르(40)가 가자지구를 떠난 건 2023년 4월, 전쟁이 터지기 6개월 전이었습니다. 남편은 대학에서 수학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도 월급 받는 번듯한 일을 구하지 못하고, 개인 과외 같은 일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12년 동안이나요. 가자지구에선 심각한 경제난으로 일자리는 적은데, 실업자들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저 할리마 하탑(38)은 팔레스타인여성위원회연합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맞벌이를 했지만, 저희는 좀 더 많은 수입이 필요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아이를 얻기 위해선 체외수정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 그동안 세 차례 체외수정 시술을 받았지만, 바라던 아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 시술은 가자지구에서는 특히 비용 부담이 커, 더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가자지구 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여러 시도 끝에 그는 쿠웨이트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자리를 구했습니다. 정기적인 수입도 생기지만, 국외에 있는 병원에서 시술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와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습니다. 쿠웨이트에선 외국인 노동자가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선 거주증을 발급받고, 주거가 확실해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수개월만 기다리면 저도 비자를 발급받아, 남편 곁으로 떠날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러던 중 2023년 10월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제 마음은 급해졌습니다. 가자지구 남쪽 라파흐 국경검문소가 언제 닫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닌 외국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이곳이 막히면 외국으로 나갈 길이 사라집니다. 전 일단 이집트에 있는 제 자매의 집으로 출국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로 가기 위해선 5천달러(약 750만원)라는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형편에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액수였지만, 곧 돈을 모으려는 노력마저 의미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이집트에서 난민 유입을 우려하며 라파흐 검문소를 막았고, 다음해 5월 이스라엘이 검문소를 점령하면서 검문소 폐쇄를 고착화했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쿠웨이트에서 비자를 발급해줬지만, 저는 가자지구에 갇혀 나갈 수 없었습니다. 비자가 만료돼 다시 신청하고, 다시 나온 비자도 만료되는 일이 반복되며 저의 절망은 깊어졌습니다.

전쟁 중에 남편 없이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편의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 옆에 텐트를 치고 혼자 지냅니다. 이스라엘군의 반복되는 공습경보에 텐트를 열번도 넘게 옮겨 다니던 날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공습 속에 지새운 밤, 폭우가 쏟아지던 겨울날에는 남편의 부재가 더 사무쳤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은 가자에서 삶을 더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하루는 캠프에 공습이 가해져 12명이 죽었습니다. 사망자 대부분이 제 심리상담 시간에 참여하는 여성과 아이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비명을 지르며 무너졌습니다. 다른 날에는 길을 가다 공습을 당한 남성 5명의 흩어진 신체와 마지막 숨을 내쉬며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고 까무러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휴전이 된 이후에도 열리지 않던 라파흐 국경은 인질 교환이 완료된 지난 2월에야 일부 개방됐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환자 50명과 그 가족 100명까지 모두 150명이 나가고, 그만큼만 들어올 수 있도록 제한된다는 소식에 제 마음은 다시 무너져내렸습니다. 2만2천명의 환자가 출국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단순히 계산해봐도 이들이 모두 나가기까지는 440일이 넘게 걸립니다. 그 뒤에야 저 같은 일반인들에게 기회가 돌아온다면, 저는 대체 언제 남편 곁으로 갈 수 있는 걸까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저의 귀를 솔깃하게 한 제안에 끌리기도 했습니다. ‘마즈드’란 단체에 2500달러(약 370만원)를 내면 이스라엘 라몬공항으로 데려가 다른 나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 기관이 개입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제안이란 생각에 마음을 접었습니다.

하루 한번 남편과 30분가량 통화를 하며, 뭔가 좋은 소식이 없는지 이야기를 나누지만, 매번 실망과 한숨 속에 통화를 마칩니다. 그나마 저를 위로하는 건 저의 일입니다. 전쟁과 피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과 여성들의 마음을 돌보다 보면, 저의 삶의 어려움은 잠시 잊을 수 있습니다. 제가 돕는 사람들을 통해 저의 상처를 치유받는 경험을 하며,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이 곧 나를 구하는 길임을 깨닫기도 합니다.

오늘도 눈을 감고 상상합니다. 쿠웨이트 공항에 내려, 꽃을 들고 마중 나온 남편과 껴안고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저의 모습을요. 그와 더불어 새로 얻은 아기를 함께 안고 사랑과 행복, 웃음으로 가득한 삶을 다시 시작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요. 이젠 평범하지 않게 된 저희 부부의 평범한 꿈을 언제 이룰 수 있을까요?

할리마 하탑. 할리마 하탑 제공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유일하게 국외로 통하는 라파흐 국경검문소는 전쟁 내내 첨예하게 맞붙은 총성 없는 ‘전장’이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와 휴전 협정을 맺고도 이스라엘은 인질 주검이 모두 반환되는 지난 2월에야 검문소를 제한적으로 열었다. 지난 2월28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은 라파흐 검문소를 폐쇄했다가 3월19일에 화물 운송을 제외한 채로 재개방했다. 한겨레는 사단법인 아디(ADI)와 팔레스타인여성위원회연합(UPWC)의 도움을 받아 검문소 폐쇄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터뷰를 편지 형식으로 싣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