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여성 사학자

이제부터 퀴즈. 당신이 이 이야기들을 모아서 책으로 쓴다면 각각 어떤 제목을 달아줄 것인가. 다음 선택지 중 고르면 된다. 1. 여자, 기억하다. 2. 여자, 기억되다. 3. 여자, 바람피다(맞춤법에 따르면 '피우다’지만 각운을 맞춰 '피다’로 표기). 4. 여자, 저주하다. 5. 여자, 수절하다. 6. 여자, 의절하다. 7. 여자, 복수하다. 8. 여자, 식모 살다. 9. 여자, 회사 가다.
7명의 여성 사학자가 쓴 '역사 속 여자, OO하다’ 시리즈(전 4권·푸른역사)는 제목이 곧 기획 의도인 책이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대전대 장지연 교수는 "여성이란 늘 억압되고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그런 제도 또는 구조를 불굴의 의지로 뚫고 나가는 탁월한 존재로 그려지는 해묵은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옛날 여성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OO하는 존재’로서 여성을 조명했다"고 설명한다.
"평생 수절? 고려시대엔 흔치 않았죠"
4월 10일 저녁, 서울 종로에 있는 북 카페 '오티움’에서 '역사 속 여자, OO하다’ 북 토크 행사가 열렸다. 북 토크 사회를 맡은 오티움의 주인 정혜승 씨가 첫 질문을 했고,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를 쓴 장지연 교수가 대답했다."절부(節婦)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따라 죽거나 강간처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자살하는 여자를 열녀라 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평생 수절하는 사람을 절부라고 합니다."
"고려 때에도 절부를 칭송했나요?"
"조선시대 열녀처럼 대대적으로 칭송한 것은 아니지만 임금이 즉위하거나 나라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절부에게 표창을 했어요. 사실 고려시대에는 절부가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 교수가 쓴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는 '절부’가 아니라 '기억과 기록’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삼별초의 난이 시작되던 1270년 여섯 살 조씨가 아버지와 함께 강화도를 탈출하는 긴박한 순간으로 시작해 고려시대 수차례 전란을 겪으며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시아버지를 차례로 잃고 스물일곱 살에는 남편마저 전쟁터에서 죽는다. 전쟁 생존자인 조씨는 자수성가하여 과거에 급제한 손녀사위까지 거느리며 일흔 줄에 접어든 나이에도 건강하게 살았다. 이때 고려시대 문관 이곡은 친구의 처 외조모 조씨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절부 조씨전’을 썼다. 그러나 장 교수는 남성들이 남긴 기록 속에서 '그녀들의 기억’을 읽어내고, 남성의 시각에서 기록하지 않은(‘절부 조씨전’을 쓰면서 끝내 이름 석 자를 밝히지 않았다) 것까지 읽어낸다. 이 부분은 책의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생략한다.


상대할 남자를 엄선한 기생 가련
"남인의 종이 될지언정 노론의 첩이 되진 않겠다."생전 '함흥 삼절(三節)’로 불리기도 한 조선시대 기생 가련은 뛰어난 가창과 가무 실력뿐 아니라 정치적 식견까지 갖춰 당파를 떠나 뭇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윤민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 연구원은 조선시대 여성의 정치의식을 포착하는 작업을 하다 기생 가련과 마주했다.
"가련은 뛰어난 미인에 성격은 소탈하고, 기개가 있고, 노래 잘하고 거문고 연주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술까지 잘 마시는 기생이었습니다. 특히 제갈량의 '출사표’를 잘 불렀고, 임종 때 '출사표’를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하죠. 가련의 이름이 한양까지 회자되자 벼슬아치들은 함흥을 지날 때마다 가련에게 시를 써주었고, 이렇게 받은 시들이 상자에 가득 쌓이자 모아서 '가련첩’을 엮었다고 합니다. 가련은 뛰어난 자신을 상대할 남자는 범부일 수 없다며 남자를 엄선합니다. 외모는 당연하고, 시와 가무는 물론 바둑도 잘 둬야 하고 술도 잘 마셔야 하고 그렇게 고르고 골라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함께 하룻밤을 보낸 가련이 통곡합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딱 한 가지 부족했던 거죠. 고자였어요."
좌중의 폭소가 터지자 윤 연구원은 자칫 책을 읽고 이 대목만 기억할까 봐 이 일화는 인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가련이 갈망했던 것은 '기억되는 일’이었습니다. 가련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되기를 열망한 천민 여성이 어떻게 양반 남성의 글을 도구 삼아 자신을 세상에 기억시켰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주가 악공과 통정하니 남편을 벌하다!
고려 왕실의 구조와 권력관계에 대해 연구해온 황향주 서울대 국사학과 BK 조교수가 꺼낸 화제는 12세기 성적 스캔들이었다. 고려 의종의 둘째 딸 안정궁주가 천한 신분의 악공 가영과 통정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작 바람을 피운 궁주(공주) 대신 남편 왕박(함녕에 봉작된 백작)이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죄로 작위를 박탈당한다. 황 교수는 '고려사’에 기록된 공주의 간통 사건을 통해 고려 왕실의 근친혼과 여성들이 혈통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말한다."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 권력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려 하는가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왕실의 근친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조선 후기 이종휘의 문집 '수산집’에 보면 '(고려) 왕씨가 용의 자손이라 겨드랑이에 비늘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태조는 그 피가 다른 가문으로 전해지는 것을 싫어하여 자기 왕자와 왕녀를 서로 혼인시켰다’는 소문이 있다고 전합니다."
이아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연구소 연구위원은 1935년 10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주인아씨(25세 이언년)와 행랑어멈(38세 김씨)이 싸우다 고소까지 간 사건’을 실마리로 식모의 삶을 따라잡았다.
"1930년대 여성의 직업 중 가장 많은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1위는 무직이고 다음이 농업, 그리고 비농업직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식모였습니다. 공장 노동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식모가 있었어요. 고학력 남성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당시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이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은 식모뿐이었죠. 이들은 식모, 어멈, 안잠자기(안잠재기), 드난살이, 오모니, 오마니, 가사 사용인, 호내 사용인, 하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사실상 식모살이를 했습니다."
1990년대 여자들이 본격적으로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자 또 다른 직장 생활 잔혹사가 이어진다. 권혁은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주목한 것은 직장 내 성희롱. 1993년 10월 18일 여성 조교가 A 교수와 서울대, 서울대를 운영하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성희롱에 대한 최초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었다. 최종 판결까지 6년이 걸렸다. 이 사건을 통해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개념 정의가 이루어졌고 1999년 2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직장 내 성희롱’ 개념 명문화에 도달했다.
앞서 낸 퀴즈의 정답 차례다. 첫 번째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의 제목은 '여자, 기억하다’이고, 마지막 이야기 우리 시대 커리어 우먼의 제목은 '여자, 회사 가다’이니 순서대로 짝지으면 된다. 이제 마지막 퀴즈. 각각의 글들이 실린 책 제목을 맞추는 것이다. 1권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2권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3권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4권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여성사 #욕망 #기록 #여성동아
사진 김현미 사진제공 푸른역사
김현미 기자
Copyright © 여성동아.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