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20년’ 은퇴한 남재영 목사] “우린 수많은 노동으로 살아지는 존재”

비정규 노동자들과 20년 넘게 길거리에서 함께한 목사가 은퇴했다. 개신교계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운동을 이끌었던 남재영 목사다.
2년 전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출교됐다가 돌아온 남 목사는 지난 8일 은퇴식에서 등을 돌려 앉았다. 그를 '찬하'(경사스러운 일을 축하하는 의식)하는 순서에서였다. 찬하사를 읽는 이가 과거 그를 출교시키는 데 앞장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 목사는 퀴어축제에서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2024년 감리교 남부연회에서 출교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출교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평생 사회 선교에 힘써온 점, 징계 절차가 불공정했던 점, 은퇴를 앞둔 점 등을 지적하며 출교 효력을 정지했다. 출교 무효를 다투는 본안소송은 진행 중이다.
그는 38년 목회 인생 중 20년 넘게 비정규 노동자들과 연대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아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며 19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이후 개정 노조법이 통과됐고, 시행 한 달 뒤에 은퇴했다. 은퇴 후 기독교 언론사 대표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그를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만났다.
출교당한 뒤 돌아온 목사 '부당함'에 등 돌리다
- 은퇴한 지 3주가 돼 간다. 달라진 점과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언론사 대표가 됐다. 에큐메니안 사장이자 대표기자다. 창간 22년 만에 정규직 기자를 채용했다. 비정규직 철폐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노동조건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안식월에 전국을 다니며 십시일반 모금해 물적 토대를 마련했다. 달라지지 않은 건 여전히 분노하는 마음이다. 사랑의 언어를 말해도 끝이 없는데 (교회와 정치권이) 혐오와 차별의 언어로 폭력을 휘두르는 현실에 계속 분노하고 있다."
- 얼마 전 은퇴식에서 몸만 뒤돌아 앉은 모습이 이목을 끌었다. 어떤 의미였나.
"아직 본안소송이 진행 중이라 조용히 참여하려고 했다. 남부연회는 나를 잘라냈지만 나는 다시 돌아온 것이지 않나. 그런데 순서지를 보니 찬하사를 맡은 이가 출교의 빌미를 만든 당사자였다. 의자를 돌릴지, 아예 내려갈지 계속 고민하다 순서가 되자 조용히 몸만 돌렸다. 교회의 부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한국 교회가 이 지경인데 이대로 은퇴하는 것에 죄책감이 크다. 나름 많이 노력했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후배들에게 이런 교회를 물려줘 미안하다."
- '성소수자 축복식' 이후 이어진 출교 사건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화도 나고 속상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출교는 오히려 시원했다. 비정상적인 곳에서 벗어나 맑은 물로 나왔다는 후련함이었다. 같은 상황이면 백번이라도 똑같이 했을 거고, 그래야 한다. 성소수자도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교회를 두려워하는 이들을 환대하고, 안정감을 느끼도록 하는 일이 신앙인의 역할이다. 본인도 이유를 모르는데 어떻게 죄라고 할 수 있겠나. 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도록 교회가 함께해야 한다."
노조법 개정으로 '작은 문' 열렸지만
진입 못하는 노동자 여전
- 개정 노조법 입법 운동에 적극 참여했는데, 시행 이후 상황은 어떻게 보는지.
"시행령이 아쉽다. 교섭 대상이 누구인지는 현장의 하청노동자가 가장 잘 안다. 노동자가 법을 토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권리를 주장하도록 그냥 뒀어야 한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로) 가르마 타줄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던 벽이었는데 개정 노조법으로 문이 생겼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보니,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교묘한 구조 속에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산업현장의 평화도 가능하다. 평화는 노동자 입을 틀어막는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다."

울타리 밖, 노동자에게 몸 굽히는 교회
-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고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있나.
"나도 실업자였다. 남부연회에서 신문 만들다가 외환위기 때 폐간돼 실업자가 됐다. 집에서 TV를 보다가 노숙인이 된 실업자들을 보고 무작정 대전역으로 갔다. 노동자를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40일 가까이 함께 노숙하며 기록을 남겼고, 이후 대전시와 교회 지원으로 노숙인 복지시설 '벧엘의집'을 처음 세웠다. 그때 실직하지 않았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 언제부터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하게 됐나.
"신학생 시절 '새로운 교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 교회가 빈들공동체교회였고, 20년 뒤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지향은 '울타리 밖 목회'였다. 당시 비정규 노동자들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되던 시기였는데, 길거리에 나가 함께 예배하고 기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년 '사순절' 기간에 텐트 치고 열흘씩 굶으며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동양시멘트, 파인텍, 세월호 모두 그랬다. 노동자들과 함께한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건 아니다. 찾아가서 연대하고 응원하는 수준이다. 교회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고, 대부분 회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현장에 찾아가 노동자를 향해 몸을 굽히는 일이 울타리 밖 목회다."
"나는 '살아지는' 존재
세상에 '남'은 없다"
- 오랫동안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신앙 때문이다.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어느 날 그 이웃이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이 밥은 누가 만들었고 이 옷은 누가 만들었는지 하나씩 떠올렸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노동으로 '살아지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럼 세상에 남은 없다. 청소노동자와 버스기사, 농민 모두 나를 살아가게 하는 존재다. 존중할 수밖에 없다."
- 뒤에 올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 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데, 혐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맞서야 한다. 늘 회피해서는 안 된다. 선배로서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크지만 후배들이 잘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 앞으로 계획은.
"에큐메니안 운영에 전념하며 '새로운 교회'를 찾고 '작은 자들'에 주목하려고 한다. 노동인권을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를 품는 교회 현장을 발굴하고 알리는 일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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