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네 집 쓰레기도 분리수거…노비 같았다" 영세 업체 노동자의 눈물

송주용 2026. 4. 2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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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덫, 2등 노동자 리포트
②탈출구 없는 지옥도
영세 사업장, 직장 괴롭힘 금지 조항 미적용
갑질 당해도, 욕설 들어도 신고 어려워
노동계 "법 적용 확대해도 보완 가능"
편집자주
직원 수가 채 5명이 안 되는 일터(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여전히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2등 시민'이라고 자조한다.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당장 무엇을 바꿔야 할지 살펴봤다.
차 안에 앉아 생각하는 가상의 남성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우진(가명)씨에겐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가족과 저녁을 함께 보낼 생각에 기분좋게 업무를 마무리하던 때 팀장이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내가 개인적인 술 약속이 있어서 운전을 못하거든요. 내 차 좀 우리 집 지하주차장에 가져다 놔줘요."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우진씨가 머뭇거리는 순간 이미 차 키는 손에 쥐어져 있었고 팀장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팀장의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릴 때까지만 해도 우진씨는 앞으로 겪게 될 황당한 괴롭힘들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괴롭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법이 마땅히 없어 벗어나기 어려운 갑질의 시간이 열릴 것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노동자 4.66명이라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불가"

그래픽=이지원 기자

그가 2024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다녔던 회사는 기업의 외국인 임원들이 한국에 발령받았을 때 정착을 지원하는 곳이었다. 글로벌 대기업의 최고위 경영자를 지원하는 게 주 업무다.

해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우진씨는 이 일에 흥미와 자신감을 느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동료는 총 6명이었다. 구인 공고가 나왔을 때도 상시 근로자 숫자가 6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적성을 살릴 수 있고 미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기대는 입사 초반부터 깨졌다. 회사 대표와 각별한 관계라는 팀장이 문제였다. 우진씨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을 앞에 두고 소리를 지르거나 발을 굴렀다"며 "욕설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자신의 차를 자택 지하주차장까지 가져다 놓으라고 지시한 건 입사한 지 고작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해 2월에는 팀장의 개인 휴가를 위한 계획표까지 직접 짜야 했다. 유럽에서 열린 회사 행사 직후 팀장이 개인 휴가를 계획했는데 여행지의 맛집·관광지 조사부터 호텔 예약, 차량 대여까지 우진씨를 비롯한 직원들이 대신해야 했다. 우진씨는 "현지 교통 법규와 주차장 사용법, 톨게이트 이용 규정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팀장에게 건넸다"고 전했다.

직원들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갈수록 교묘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사무실에 보관하던 개인 짐을 자신의 집으로 옮겨 달라고 했고, 외부 미팅을 갈 때면 본인 집 앞까지 차를 끌고 와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우진씨는 "팀장이 이사를 가는 날에는 직원을 집으로 불러 남은 공과금 정산까지 시키기도 했다"며 "이런 직장 내 갑질은 회사 대표의 묵인 아래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갑질을 견디다 못한 우진씨는 결국 회사를 나왔다. 그러고는 팀장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진정은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다닌 회사가 상시 근로자가 5명이 안 되는 영세 사업장이라는 이유에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은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우진씨는 당황했다. 입사 당시 6명이었던 회사가 직원들의 잇단 퇴사로 5인 미만 사업장이 되자 법 보호 사각지대로 밀려난 것이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통보문을 보면 노동청은 "재직기간 근로자 수는 3~5명을 중심으로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했다"며 "사업장의 전체 평균 인원은 4.66명"이라고 판단했다.

우진씨는 황당했다. '사람이 한 명이면 한 명이지 0.66명은 또 뭔가. 사람을 0.66명으로 쪼갤 수 있다는 건가'. 처음 입사할 때 5인 이상이었던 회사에서 직원들이 퇴사해 인원이 줄어든 것까지 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우진씨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다니는 노동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사업장 규모를 판단하는 방식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법도 모두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왜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조항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았을까. 영세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사업주가 후속 조치나 경제적 제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오히려 영세 사업장에서 더 지독한 괴롭힘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됐다.

그래픽=이지원 기자

쌍욕 들어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불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형상화한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5인 미만 사업장의 벽에 막혀 직장에서 당한 괴롭힘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현실은 우진씨만의 일이 아니다. 박은진(가명·44)씨는 2019년 경기도의 한 대형서점에 입사해 5년 8개월을 일했다. 주말에 손님이 몰리는 서점업 특성상 토요일, 일요일을 반드시 포함해 주 5일을 출근하다보니 주말 가족행사나 여행이라도 가려면 동료와 치열한 눈치 싸움을 해야 했고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유급연차휴가도 보장받지 못했다. 그래도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대화하는 일이 좋아 꼬박 6년 가까이 서점에 출근했다.

문제는 서점 점장의 남편이 업무에 관여하면서 시작됐다. 점장 남편은 은진씨와 마찰이 생기자 직원들과 손님들이 다 보는 앞에서 "에이 XX" "X 같네"라는 욕설을 퍼부었다. 순간 은진씨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이후로도 점장 남편은 은진씨의 근무태도를 트집 잡거나 무전기를 소지하고 다니게 하며 업무를 감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은진씨는 서점을 떠났다. 그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런 모욕을 처음 당했다. 서점을 그만두고도 1년 넘는 시간 동안 우울증을 겪으며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 평택의 한 사무용품 대리점에서 일했던 박준서(가명·36)씨는 재직기간을 "사장의 노비처럼 일했던 시간"으로 기억했다. 준서씨가 일한 회사는 1층이 영업점이고 위층에는 사장 가족의 주거 공간이었다. 사장 가족은 개인적으로 배출한 쓰레기를 매일 가지고 내려와 회사 쓰레기와 섞어 버렸다. 아침을 먹고 남은 찌꺼기, 음식을 배달시킨 포장 용기, 물건을 담았던 스티로폼 등 쓰레기 종류도 다양했다.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를 매번 분리수거하고 내다버리는 건 준서씨 일이었다. 그는 "영세한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도 엄연한 사람인데 그렇게 대우받지 못한 것 같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과 일하는 제한된 공간에서 탈출구 없는 고통을 경험한 셈이다.


우울증 겪어도 제대로 치료 못받아

그래픽=이지원 기자

5인 미만 사업장의 심각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는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경험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중 '괴롭힘이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53.1%였다. 전체 노동자 평균(43.4%)보다 10%포인트 높은 수치다. 반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기 쉽다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80.5%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직장인 평균(68.8%)보다 높았다.

괴롭힘 피해로 정신적 고통을 받아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려운 현실도 드러났다. 설문에 참여한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 노동자 중 '진료나 상담을 받았다'는 5인 미만 노동자는 0%였다. 대기업(16.7%), 공공기관(15.6%)과 큰 차이를 보였는데 경제적 이유로 병원을 찾기 어려워 혼자서 고통을 감당하는 노동자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은진씨는 "서점에서 나온 뒤 우울증이 너무 심해 병원을 찾았지만 한 번에 8만~9만 원씩 하는 상담비를 조달하기 어려워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권 보호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작은 사업장으로 갈수록 정도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이를 막을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실적 대안도 나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직장 내 괴롭힘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자고 하면 영세 업장에서 반발이 있다"며 "세 명이 일하는 조그만 식당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를 어떻게 분리하냐는 주장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은 옆 사무실로 분리하면 되지만 작은 사업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일정이 끝날 때까지 일정 기간 휴가를 보내는 등 여러 각도에서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평택=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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