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잘되면 미쳐 죽고, 안 되면 행복해 죽고"… 황동만이 선택한 비호감 생존법

2026. 4. 2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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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정신과 의사의 코멘터리]
<28>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황동만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주인공 황동만(구교환).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정신과 의사인 내게는 심장이 뛰는 제목이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너무도 잘 요약해 놓았기에, 이를 어떻게 그려 낼지에 대한 기대감이 날 TV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 글을 쓰는 시점까지 방영된 초반 2화를 보고 난 후의 내 머릿속은 주인공 황동만(구교환)으로 가득 차 있다. 이토록 강렬하게 비호감인 주인공이 기존 드라마 역사에 또 있었을까?

대학교 영화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8인회 중에 유일하게 데뷔를 못 한 그는 20년째 영화감독에 도전하고 있다. 학원 선생님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리는 그의 모습이 멋지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꾸준히 피해를 입고 있다. 이른 새벽 동네 뒷산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목 놓아 크게 외치며 동네 주민들의 잠을 설치게 만든다. 선배가 연출한 영화 개봉 축하연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과 악설만 퍼붓는다. 당연한 것처럼 항상 얻어 먹는 자리에서도, 단체 카톡방에서도 언제나 자기 말만 쉴 새 없이 한다. 타인들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다. 밀린 관리비를 내라는 집주인의 독촉을 헤드폰으로 막은 채 방에서 영화만 보고 있다. 월세를 담당하는 친형은 용접공 일을 하면서도 대관령에 무를 뽑으러 가고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8인회 모임의 주축이자 아지트 사장인 고혜진(강말금)이 출입문에 '황동만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고 있다.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밥 먹고 하는 짓이 딱 두 가지밖에 없어요. 남 잘되는 거에 미쳐 죽고, 남 안 되는 거에 행복해 죽고.” 이런 지인의 독설이 지나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결국 20년 지기들이 모이는 가게에 ‘황동만 출입금지’가 붙게 된다. 안 그래도 가진 것 없는 상황에 대인관계의 전부인 오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까지 당하게 된 그가 안쓰럽지만, 동시에 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생각과 감정이 든다. 그들은 대체 왜 황동만으로부터 이런 피해를 받아야 하는가? 아무리 봐도 황동만은 참 별로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 부족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다. 하지만 비난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렇다. 이럴 땐 대체 그의 마음속 어떤 심리가 이런 모습들을 만들어내는 건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망가짐은 수치심을 가리려는 처절한 사투

“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때는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취한 상태로 길을 달리며 반복하는 그의 외침 속에 답이 들어 있다. 진료실에서 꽤나 자주 만나게 되는 심리로, 당사자들은 무의식 속 숨어 있는 이런 심리에 자신의 삶이 조종당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 정도의 차이이지 매우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이 심리가 존재하며, 나 역시 그렇다. 이름하여 ‘내현적 자기애’가 우리나라에 매우 흔하며,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자기애성 성격’이라고 하면 겉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과시하고 타인을 무시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극 중의 잘나가는 영화사 최필름의 대표가 전형적인 예시인데, 이를 외현적 자기애라고 한다. 그와 달리 내현적 자기애는 겉으로는 과하게 겸손하거나 수줍어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내면에는 우월감과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는 자기애적 성향이 숨겨진 유형이다. 외현적이든 내현적이든 과도한 자기애를 띤 사람들의 속마음에는 수치심과 열등감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드러날까 두려워 적극적인 공격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외현적 자기애이고, 타인의 시선과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회피하고 위축된 자세를 보이는 것이 내현적 자기애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동만이 면접을 앞두고 긴장감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물론 황동만은 겸손하거나 수줍지 않고 어찌 보면 최 대표와 비슷한 모습도 띠고 있기에 ‘그냥 같은 나르시시스트인데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의 차이 아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마도 황동만의 성격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테다. 그런데 20년의 세월 동안 점점 커져 가는 친구들과의 격차 속에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열등감이 쌓였다. 너무도 희미해지는, 그래서 이러다 아예 사라질 것 같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새벽마다 이름을 외치며 혼자 대화한다. 점점 더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의 무의식은 내현적 자기애를 방패로 선택했다. 잘나서 특별해질 수 없으니 망가져서 특별해지기로 말이다. 그의 주변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황동만의 특별하게 망가진 모습들은 모두 다 수치심을 가리기 위한 처절한 사투의 결과물이다. 일반적인 내현적 자기애자가 수줍은 가짜 겸손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황동만은 그 가면조차 유지할 여력이 없을 만큼 자존감이 바닥난 상태에서 적대감과 공격성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도 친구들에게 느끼는 수치심과 열등감이 가려지지 않으니 그들의 작품과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세상 자체를 깎아내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저놈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세상이 썩어서 실력 없는 놈이 잘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타인의 성취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실패를 자신의 무능이 아닌 세상의 부조리로 치환한다. 이런 방식의 희생자 혹은 비운의 천재 코스프레가 내현적 자기애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승리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보통의 나르시시스트들과 다르게, 자신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빛을 끄는 것에서 영향력을 확인하려는 황동만의 시도는 일종의 성공을 거둔다. 8인회의 멤버인 박경세(오정세) 감독이 같이 진흙탕에 구르게 됐으니까.


'내현적 자기애' 부추기는 한국 사회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남의 불행에 행복해하는 동만과 그런 그와 똑같은 인간이고 싶지 않아 발버둥치는 경세가 김치찌개집에 마주 앉아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앞서 말한 것처럼 내현적 자기애는 우리나라에 흔한 심리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부덕으로, 겸손함을 미덕으로 보는 집단주의 문화가 첫 번째 원인이다. 어느 정도의 자기애는 그저 당연한 것인데, 우월해지고 싶은 당연한 욕구가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내면으로 숨어들어 내현적 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두 번째로는 타인과의 비교 문화다. 어릴 때부터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줄 세우는 환경 속에서 강제로 등급이 매겨지며 우리 모두 자기애적 손상을 받으며 자라난다. 여기에서 오는 우월감과 열등감, 남들만큼 해내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열등감을 감추려 과대한 자기가 만들어진다. 비교당할 때마다 사회가 바라는 겸손한 겉모습이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속에서는 ‘나는 인정받아야만 하는 존재야’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사실 우리 사회가 앞뒤 안 맞는 더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극심한 입시 및 취업 경쟁 속에서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라는 압박도 주면서, 동시에 ‘모난 돌은 정 맞는다’라는 압박도 준다. 평등해야만 한다는 압박과 누구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열망, 뒤처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내현적 자기애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을 만들어내는 원인인 것이다. 나를 정의하는 기준이 나의 내면적 가치가 아니라 남보다 나은 조건에 있다 보니, 주변인의 성공은 곧 나의 가치 하락으로 직결된다. 대놓고 경쟁하거나 비난하지 못하는 문화적 압박 속에 억압된 공격성이 복통이라는 신체화 증상이나 은근한 비꼼으로 분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자 배가 아픈 수준을 넘어 ‘땅을 뺏거나 망가뜨려야 내 속이 풀리는’ 공격적 양상으로 진화한 황동만처럼, ‘대혐오시대’가 열린 우리 사회도 그렇다. 타인의 성취를 축하하기보다 결핍을 찾아내 끌어내리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파괴함으로써 평등해지려는 심리적 동귀어진(同歸於盡·싸움의 상대와 함께 파멸의 길로 들어감)의 늪에 빠지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2회에서 반찬을 선물받고 환희에 찬 동만이 새처럼 날아오르는 장면.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그렇기에 이렇게 비호감인 황동만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마음을 어느 정도씩 지니고 있을 우리에게 거울치료를 해 주기 위해서. 내현적 자기애는 자신의 문제를 너무도 특별한 비극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불행을 통해서라도 특별해지려는 안타까운 무의식적 시도이지만, 이 마음을 극복하고 ‘평범한 불행’으로 바라볼 때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삶이 고통을 안고 괜찮은 척 살아간다는 것을, 바로 그 가능성이 자기 자신에게도 열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작은 변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난 내 무가치함의 끝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릴 거야. 나의 빛나는 스토리를 기대해라”고 외친 황동만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갈지 기대된다. 특별한 망가짐을 포기하고 평범해질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그 모습이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내현적 자기애를 극복하는 단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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