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정책에 발목잡히나… 수소연료전지 ‘비상’
“수천억원을 투자해 공장까지 지었는데 이제 와서 국내 시장이 닫힐 수도 있다니 당황스럽습니다. 당장 올해 계획했던 증설 투자부터 재검토해야할 상황입니다.”(국내 수소연료전지 업계 관계자)
이제 막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가려던 국내 수소연료전지 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가 탄소 중립을 이유로 기존 국내 수소발전 시장을 대폭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AI 시대를 맞아 전 세계가 수소연료전지를 ‘꿈의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기업들은 내부 성장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드는 무공해 소규모 발전소다.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몸값이 뛰었다. 데이터센터 옆에 설치해 수소만 공급하면 24시간 내내 막대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블룸에너지 같은 기업은 이미 기가와트(GW)급 수주를 따내며 주가가 폭등 중이다.

◇AI 전력 수요 폭증에 글로벌 시장 급팽창…한국은 ‘출발선’ 흔들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 두산퓨얼셀은 약 1조원을 투자하며 국내 연료전지 시장을 이끌어왔고, 미국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SK에코플랜트는 블룸에너지와 손잡고 지난해 4520만달러어치 수출에 이어 올해 약 1억4900만달러 규모 신규 수주도 예상된다. HD하이드로젠은 유럽 기업을 잇달아 인수·투자해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국내에 공장을 구축했다. 이들 주요 기업 투자액만 합산해도 1조5277억원,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2조원을 넘는다. 협력업체 생태계도 상당한 규모로 형성됐다. 약 50개 협력사가 350종 이상의 부품을 개발해 양산에 들어갔다.
그런데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르면 다음달 초 일반수소 발전 물량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반수소가 탄소 감축 효과가 제한적이라 청정수소 중심으로 시장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발전용 수소는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청정수소(그린수소·블루수소)와 천연가스(LNG)에서 추출하는 일반수소(그레이수소)로 나뉜다. 청정수소가 이상적이지만 아직 생산·공급 기반이 거의 갖춰지지 않았다. 정부는 과도기 조치로 2023년부터 일반수소 발전 시장을 운영하며 매년 입찰을 통해 약 1300GW 규모 물량을 공급해왔다.
◇국내 시장 막히면 협력 中企도 타격
업계는 “순서가 잘못됐다”고 반발한다. 전체 수소발전 물량 중 청정수소 비중은 아직 1%에도 못 미친다. 공급망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시장부터 줄이면 산업 자체가 성장 동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기존 수소공급망에 맞춰 투자를 해온 기업들로선 충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국내 실적이 해외 수출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 HD하이드로젠 관계자는 “국내 운영 실적이 있어야 해외 입찰이 가능한데 그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당장 대기업발 일감을 잃을까 걱정이다. 연료전지 분리판을 생산하는 J&L테크 관계자는 “정부 입찰 물량을 기준으로 생산 계획을 맞춰왔는데 물량이 줄면 바로 타격”이라며 “설비 자체가 특정 모델에 맞춘 전용 설비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2~3년 내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설비 발주가 본격화될 것으로 본다. 이 시기를 놓치면 글로벌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진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이제 막 수출 산업화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성장성을 위해서라도 일반수소 발전 시장이 일정 기간 더 필요하다”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도 “청정수소 기반이 아직 없는 상태에서 기존 시장부터 줄이면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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