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동료, 이름을 불러주세요”

신동섭 기자 2026. 4. 2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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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비인격적 대우
산업현장 곳곳서 갈등 유발
“일보다 무시가 더 힘들어”
정부와 노동권익재단 4곳
이름 불러주기 캠페인 진행
울산 시작으로 전국 순회
▲ 27일 울산 자동차부품기술연구소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이름 불러주기 캠페인 in 울산' 행사에서 김두겸 울산시장과 이주노동자 대표 등이 대형 안전모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울산시청 제공

울산의 한 도장업체에서 근무하는 파네사 샤일리라마 마흐푸드(가명, 인도네시아)는 매일 회사로 출근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던 그가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경제적 자립이었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차가웠다.

회사에서 그는 파네사라는 이름 대신 "야" "이 XX야" 등으로 불린다. 파네사씨는 "일이 힘든 게 아니라, 무시하는 발언이 참기 힘들다"며 "우리도 이름이 있는데 왜 이름 대신 욕이나 멸칭으로 부르는지 모르겠다.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고 토로했다.

파네사씨의 사례는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아픔을 대변한다. 현장에서는 이들의 이름 대신 욕설이나 멸칭, 혹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국적이나 번호로 부르는 비인격적 대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현장 관리자들 역시 나름의 고충을 이야기한다. 영어식 발음기호로 부르기 어려운 이름이나 20자 이상의 긴 이름을 가진 노동자들이 많아 이름을 온전히 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장의 갈등이 곪아가는 가운데, 현장의 고질적인 호칭 갈등을 해소하고 인격적 존중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전국 단위의 캠페인이 울산에서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7일 오후 울산테크노파크 자동차부품기술연구소 3층 컨퍼런스홀에서는 70여명의 한국인 사업주나 동료들이 마주선 이주노동자들에게 "반림씨, 한국에서 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프씨 반갑습니다" 등의 인사말과 함께 각자의 한국어 이름이 새겨진 안전모를 씌워주고 포옹하는 정겨운 장면이 연출됐다.

이 행사는 고용노동부가 공공상생연대기금(이사장 노광표), 금융산업공익재단(이사장 주완),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사장 이창곤), 전태일재단(이사장 박승흡) 등 4개 노동권익재단과 함께 진행한 '이주노동자 이름 불러주기' 전국 첫 릴레이 캠페인이다. 캠페인은 단순히 호칭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재 사망률이 내국인의 3.5배에 달하며 사망자 10명 중 6명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소속이라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안전 현실을 개선하려는 목적도 담고 있다.

행사에서는 한국노총울산시지역본부와 업종별 연맹과 대기업노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현대자동차, 울산상공회의소 등 울산 대표 노사 단체가 이주노동자와 노동약자를 위한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자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노동약자지원사업단 온(ON) 관계자는 "이주노동자에게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구조적 차별의 표현"이라며 "이름을 불러주는 작은 실천이 산업현장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인이 해외 진출 시 부르기 쉬운 영어 이름을 짓듯, 국내 현장에서도 상호 소통을 통해 별칭이나 한국식 이름을 함께 짓는 식으로 실질적인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고용노동부와 노동권익재단은 울산에서의 첫걸음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노동존중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