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석유국가 vs 전기국가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2026. 4. 2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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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석유 경쟁력 집착하는 동안
중국은 전기 국가로 발돋움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中의 전기 기술 압도적 지배력
수퍼 파워간 그레이트 게임
21C 기술 헤게모니는 어디로
24일 오전 베이징 모터쇼 BYD 부스에 팡청바오 신형 세단 판청S가 전시돼 있다. /베이징=이은영 특파원

지금 베이징에서 모터쇼가 열리고 있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중국 비야디(BYD) 전기차가 영하 33.6도 유리 냉동고 안에서 12분 만에 충전을 완료했다. 필자도 전기차를 쓰고 있지만, 그 조건이라면 12분이 아니라 120분을 줘도 완충은 안 될 것 같다. 2024년 세계 전기차 판매량 1750만대 가운데 65%(1130만대)가 중국제였다. 전기차만 그런가. 중국은 태양광과 배터리 생산의 80~90%를 장악하고 있다.

반면 미국 트럼프 정부는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에 주던 보조금을 없애거나 줄였다. 풍력 발전에 대해선 거의 탄압 수준이다. 전기차, 태양광·풍력, 배터리를 ‘기후 기술’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과 보수의 기후 혐오는 거의 본능적이다. 기후 이슈에는 도덕성(지구를 살리자), 국제성(각국이 힘을 합쳐야), 평등성(부국 또는 부자에게 더 큰 책임)의 세 관점이 녹아있다. 트럼프와 미국 보수는 이걸 PC(정치적 올바름), 국제주의, 좌파 사회주의로 보고 배척한다. 기술은 기술일 뿐인데, 기술을 이념과 혼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몇 년 더 가면 중국의 전기 기술 헤게모니는 뒤집기 어렵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에 ‘유용한 바보’가 되고 있다.

미국은 석유 생산 1위, 가스 수출 1위 국가다. 석유 국가로서 100년 이상 축적해온 거대 인프라에 집착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체포와 이란 전쟁엔 그런 배경이 있다. 그러나 21세기는 전기의 시대로 가고 있다.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등의 전기 기술은 석유·가스 기반 기술에 비해 물리적, 경제적, 지정학적 우월성을 갖는다. 거기에 환경적 우위까지 보태 ‘3+1’의 우월성을 갖는다. 우선 전기 기술은 석유 기술보다 물리적 효율이 높다. 예를 들어 전기차는 휘발유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2배 이상이다. 석유·가스 연소는 화학 반응으로 쏟아내는 열 에너지의 무작위적인 방사라서 낭비적이다. 반면 전기는 전자가 움직이는 질서 있고 통제된 에너지 흐름을 통해 마찰 없는 모터를 돌린다. 폐열 낭비를 최소화하는 열역학적 이점을 갖는다.

전기 기술은 연소 기술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우월하다. 석유·가스는 점점 더 깊이 파야 얻을 수 있고 깊게 팔수록 비싸진다. 태양광과 배터리셀은 모듈 방식이어서 규격 부품의 반복 조립으로 만들어진다. 쉽게 확장 가능하고 대규모 생산에 따른 규모 효과와 학습 커브 작동으로 갈수록 코스트가 떨어진다. 전기 기술엔 전고체 배터리,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등 추가 혁신의 잠재력도 있다. 전기 기술은 또 호르무즈 해협 같은 질식 병목(choke point)이 없다는 지정학적 우월성도 갖는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발 묶인 선박들 항공촬영 영상. 4월 20일 이란 프레스 X계정에 올라온 영상. /이란군/Iran Press X

전기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 태양광은 휘발유차, 석탄·가스 발전에 비해 조용하고, 깨끗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부수적 환경 이점도 있다. 전기 기술의 보충적 에너지원인 원자력도 친환경이다. 중국이 지구를 살리려고 전기차, 태양광, 원자력을 한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전기 기술을 활용해 ‘환경 악당’에서 ‘클린테크 공급자’로 이미지 이동 중이다.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등은 전기 기반 묶음 기술의 성격을 갖는다. 과거 자동차 회사는 TV나 냉장고는 만들지 못했다. 지금은 배터리와 모터 기술을 가지면 전기차, 드론, 로봇에서 동시에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껍질만 벗겨내면 적용 기술은 다 같기 때문이다. BYD는 원래 배터리로 출발했는데 세계 1등 전기차 기업으로 섰다.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는 샤오미도 전기차로 진출했다. 드론 기업 DJI는 로봇도 만들고 있고, 청소기 업체 드리미는 최근 전기차 수퍼카 분야로 데뷔했다.

중국 기업들은 전기 기술 클러스터를 구축하면서 기술 효율성을 극대화할 생태계를 갖춰놨다. 필요한 광물 공급망도 장악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AI에 승부를 걸고 있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는 99.999%(파이브 나인즈)의 전력 공급 신뢰성을 요구한다. 그걸 구현하려면 배터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은 전기차를 외면하면서 배터리 산업을 위축시켰다. 중국제 배터리를 쓸 수밖에 없다. 현대전 승패를 결정 짓는 드론의 생산 대수를 보면 중국이 연 800만대인데, 미국은 10만~20만대 수준이다.

세계가 중국제 태양광·배터리·모터를 쓰고, 중국산 희토류를 수입하고, 중국 표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중국 기술에 종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중국 같은 권위주의적, 집단주의적, 자국 중심적 패권 국가의 압박에 노출된다는 것은 심각한 위험 요소다. 그렇다고 전기 기술을 배척하는 건 산업적 미래와 국가 안보를 포기하는 선택이다. 미국과 한국 등 민주주의 진영이 중국과 겨룰 수 있는 전기 기술력을 키워 극복해야 하는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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