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0만원씩 나눠 꽂힌 돈···받은 의원들 “몰랐다” 발 빼면 그만

불법 정치자금인데…주면 ‘유죄’ 받으면 ‘무죄’
통일교 의혹 합수본 출범 후에도
돈 받은 정치인 65명 조사는 0건
불법 자금 인지 여부 입증 어려워
수사기관, 정치권 조사엔 소극적
정치인 처벌 사례 ‘청목회 사건’뿐
그마저도 벌금형·선고유예 그쳐
“소액 후원 안에 튀는 데이터 존재
선관위, 사전 모니터링 강화해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진행 중인 통일교의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의혹 수사가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통일교는 여야 국회의원 수십명에게 정치자금을 개인이 기부하는 것처럼 쪼개서 후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통일교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경찰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정교유착’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그 뒤 1주일 만인 올해 1월6일 합수본이 출범했다.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된 것에 비해 뚜렷한 성과는 없다. 특히 돈을 줬다는 사람에 비해 받았다는 사람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다. 27일 합수본 등에 따르면 통일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엔 통일교 자금을 개인들 명의로 기부받은 여야 정치인 65명이 적혀 있지만, 이들에 대한 조사는 합수본 출범 넉 달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없었다. 통일교 관련 단체인 천주평화연합의 송광석 전 회장도 이 단체 자금 1300만원을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기부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말 기소됐다. 송 전 회장 공소장엔 나경원·윤상현·정동영 의원 등 여야 전현직 국회의원 11명이 통일교 자금을 받은 것으로 적시됐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정치인들이 “사전에 불법임을 알고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소하지 않았다.
합수본 수사에 앞서 지난해 민중기 특별검사팀도 통일교가 2022년 3~4월 국민의힘 시도당협위원장 17명에게 1억4400만원을 쪼개기 후원한 혐의로 통일교의 한학자 총재, 정원주 전 총재 비서실장,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은 단 한 명도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송 전 회장 기소 때와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로도 정치권은 오랜 기간 ‘금권정치’라는 오명을 달고 살았다.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4년 논란 끝에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등이 대폭 개정됐다. 이후 20년이 넘었음에도 위법한 쪼개기 후원은 근절도, 처벌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통일교 사건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공통적으로 “개인 후원이라고 생각했다. 법인·단체 자금인지 알지 못했다” “기부하는 분들이 많아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다”고 해명한다. 수사기관은 “기부받은 정치인이 법인·단체 자금인지 알고 받았는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받은 쪽이 “몰랐다”고 주장하면 쉽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다. 쪼개기 후원 사건들에 반복해 등장하는 정치인도 여럿이다.
쪼개기 후원은 정치자금법 등을 대폭 개정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기도 하다. 2002년 16대 대선 때 거대 양당이 대기업으로부터 각각 수백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일명 ‘차떼기’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2년 뒤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등이 개정됐다. 시민 개개인의 자발적인 소액 후원을 활성화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취지였다.
‘법인·단체 자금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가 이때 개정된 정치자금법의 핵심 내용이다. 정치자금법 31조는 국내외 법인·단체 명의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뿐 아니라 개인이 법인·단체 관련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행위 또한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준 쪽이나 받은 쪽 모두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법 개정 후 법인·단체의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드는 창구가 막히자 자금을 개인이 기부하는 것처럼 소액으로 나눠 정치권에 제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쪼개기 후원 문제의 시작이다.
2010년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사건으로 쪼개기 후원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청목회는 2008~2009년 청원경찰 처우 개선을 위한 법 개정안 통과를 목적으로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단체 자금 3억830만원을 개인이 기부하는 것처럼 나눠 후원했다. 청목회가 로비를 위해 접촉한 국회의원은 140명에 달했고, 이 가운데 38명에게 정치자금을 쪼개기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강기정·권경석·유정현·이명수·조진형·최규식 전 의원 등 6명만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도 의원들은 “기부금이 청목회 자금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후원금 관리 내역과 보좌진 진술 등을 근거로 의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이 기부금 대부분을 반환했다는 이유 등으로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판결하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반면 청목회 간부 3명은 2013년 대법원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그나마 주요 쪼개기 후원으로 정치인이 처벌된 것은 청목회 사건이 유일하다. 2018년 또 대규모 쪼개기 후원 사건이 터졌다. 2014~2017년 KT가 회사 자금 4억3800만원을 임직원 등 개인 명의로 쪼개 여야 정치인 99명에게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 판결문엔 권성동·권영세·박대출·박지원·박홍근·우원식·윤호중·이인영·이학영·조정식·진선미·한정애 의원, 김재경·변재일·신상진·이군현·이명수·이인제·이종걸·우상호·원유철·정갑윤·홍영표 전 의원 등이 KT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KT 자금임을 사전에 인지하고 기부를 받았는지를 입증하지 못하면서 99명 중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돈을 준 KT 전현직 임원 14명만 처벌받았다.
법조계에선 ‘소액 후원’의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이 한 정치인에게 연간 500만원 미만을 후원하는 경우 명단 공개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소액 후원에 대한 감시가 쉽지 않다. 청목회·KT·통일교 사건 모두 단체 자금을 개인당 최소 10만원씩으로 쪼개 소액 후원하는 방식이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소액 후원이더라도 죽 나열해보면 튀는 데이터가 있을 수 있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해 의심스러운 기부금 흐름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의 수사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쪼개기 후원 의혹 수사에선 정치인이 불법 자금이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게 핵심인데, 입증이 어렵고 조사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기부를 받은 정치인 쪽을 조사하는 데 수사기관이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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