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아직도 AI 프롬프트에 목매고 있는가

김현우 기자 2026. 4. 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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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스팟(HotSpot)'
깻잎 한 장에 멈춘 로봇
언어를 지능으로 착각해
국회 규제는 부검 보고서
공포심 버리고 흐름 타야
"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AI를 둘러싼 혼란은인간의 '해석 과잉'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화려한 텍스트를 지능으로 착각하는 맹신이나 억지로 통제하려는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감정적 동요와 과도한 의미 부여를 멈추고, AI의 진짜 구조와 거대한 흐름을 냉정하게 읽어 파도에 올라타는 지혜가 필요하다. /챗GPT 제작 이미지

서빙 로봇이 테이블로 다가오다 통로 한가운데서 얼어붙었다. 앞선 손님이 떨어뜨린 깻잎 한 장을 거대한 장애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길을 막은 로봇에 이목이 집중됐다.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닌다는 옆 테이블 직장인은 "와, 저 얇은 깻잎 두께와 질감을 라이다 센서가 완벽하게 잡아냈어! 알고리즘의 승리야!"라며 환호했다. 확률과 통계 결과물에 경도돼 휴대폰으로 영상 찍기 바빴다. 반면 식당 구석에 앉아있던 중년 손님은 "당장 저 기계 전원 안 빼! 앞으로 식당에서 로봇은 시속 1㎞ 이하로만 움직이게 법을 만들어야 해!"라며 호통을 쳤다. 코딩 학원에 다닌다는 중학생 아들은 로봇 터치스크린을 치며 "앞으로 녹색 장애물은 무시하고 직진해"라는 명령어를 입력하느라 땀을 뺐다. 이 로봇은 다음 날 바닥에 깔린 초록색 발매트를 피하느라 제자리만 맴돌았다.

인공지능(AI)를 둘러싼 난리 법석은 에너지 분배 싸움에 불과하다. 깻잎에 감탄하던 직장인 같은 낙관론 진영은 확률과 통계를 인류 구원 서사인 양 포장한다. 생성형 AI가 뱉어내는 매끄러운 결과물만 소비할 뿐이다. 기저에서 돌아가는 소프트맥스 함수 이후 결정 구조는 보지 못한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데이터가 어떤 방향으로 수렴하는지 묻지 않는다. 트랜서핑 관점에서 이들은 잉여 포텐셜을 극단적으로 키우는 집단이다. 가능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수록 우주 균형력은 반드시 뒤통수를 친다. 시장에선 거품이 터지고 기술에선 치명적인 병목이 드러난다.

호통치던 중년 손님 같은 규제·윤리 신봉자들은 또 다른 극단이다. 이들은 AI를 통제 가능한 기계 장치로 여긴다. 규칙을 채우면 얌전해질 거라 믿지만 착각이다. 실제 시스템은 이미 인간 인지 속도와 스케일을 벗어났다. 수십억개 파라미터가 실시간 연산되는 마당에 국회 가이드라인은 부검 보고서다. 이들 역시 통제하려는 집착에 과도한 중요도를 부여한다. 억누르려 할수록 오히려 반대 방향 현실선만 굵어질 뿐이다.

언어를 지능으로 오해하는 코미디

비극은 이 두 흐름이 충돌하며 펜듈럼 진폭을 키운다는 데 있다. 낙관론이 춤출수록 규제 칼날은 시퍼레진다. 규제가 옥죌수록 기술 신화는 더욱 과장된다. 정작 한가운데서 작동하는 진짜 구조에 대한 서늘한 분석은 증발하고 감정과 핏대만 남는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착시는 언어를 지능으로 오해하는 현상이다. 텍스트가 청산유수라고 해서 AI가 이면 철학까지 이해했다고 믿는 건 앵무새가 "사랑해"라고 말했다고 감동해 혼인신고하러 달려가는 꼴이다. 핵심은 선택 확률을 만들어내는 내부 상태인 로짓 공간에서의 피 튀기는 경쟁이다. 어떤 단어가 튀어나올지는 수많은 가중치가 충돌한 결과값이다. 이 깊이를 보지 못하면 평생 AI 껍데기만 핥는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목숨 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프롬프트만 잘 쓰면 AI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믿음은 기계를 외부에서 쳐서 고치려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결과의 99%는 이미 형성된 거대한 파라미터 공간 안에서 결정된다. 프롬프트는 기껏해야 자동차 사이드미러 각도를 맞추는 수준의 미세 조정이다. 외부의 억지스러운 의지로 현실을 비틀려는 시도이며 예측 불가능한 반작용을 부른다.

흐름의 구조를 읽고 올라타라

국가나 정부 단위로 올라가면 코미디는 스릴러로 바뀐다. 국가 AI 전략·데이터 주권 등 휘황찬란한 간판을 달고 있지만 속내를 까보면 예산과 권력을 뜯어먹기 위한 기생형 펜듈럼에 불과하다. 기술 본질 따윈 안중에도 없다. 불안을 조장해 세금을 끌어오고 조직을 늘리는 명분 장사일 뿐이다.

"AI가 내 일자리를 뺏고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 서사도 마찬가지다. 실제 기술 흐름은 인간 대체가 아니라 인간 의사결정이 시스템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흡수에 가깝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 공포는 사람을 옭아매는 가장 강력한 덫이다. 두려움에 떠는 순간 당신은 정확히 공포가 지배하는 최악의 현실선에 끌려가 고착된다.

각자 보고 싶은 대로 현실을 왜곡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통제하려는 오만도 버리고 잡아먹힐까 두려워하지도 마라. AI는 이미 특정 방향을 향해 도도하게 흘러간다. 거대한 물결은 인간 감정이나 얄팍한 이념 따위로 방향을 틀지 않는다. 펜듈럼 진동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에너지를 빨릴 것인가 한 발짝 물러서서 흐름 구조를 읽고 파도에 유유히 올라탈 것인가. 로짓 공간 확률은 이미 당신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라이다 센서=레이저를 쏴 사물과의 거리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소프트맥스=AI가 정답일 확률을 0과 1 사이 값으로 변환하는 함수다.
☞로짓 공간=AI가 텍스트를 생성할 때 확률값들이 경쟁하는 가상 공간이다.
☞파라미터=AI 모델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연산 매개변수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