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어느 부고에 부쳐

최유안 소설가 2026. 4. 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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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미투 운동을 했던 김현진씨의 죽음은 내게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가해자는 죄에 따라 계산된 벌을 받았다. 미투 전후 김현진씨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지난한 싸움을 벌였을 것이다. 나는 김현진씨와 김현진씨 사건의 가해자인 시인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없지만, 그 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싸움이란 가해자나 법률적 다툼만 말하는 건 아니다. 가장 힘든 건 자기 자신과의 싸움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사건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하니까.

나는 문단 내 미투 운동의 바람이 잦아들 즈음 등단했다. 바람은 거셌다. 미투와 코로나로 출판계에서는 연말 행사가 거의 중단된 시점이었다. 문학계에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지났다.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얼마 전 성폭력·성희롱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받으면서 다시금 떠올린 것들이 있다. 가령, ‘작품 안에서 2명 이상의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가’라든지, ‘글 안에서 인물이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하는가’와 같은 내용이다. 사실 성차별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씁쓸한 일이다. 그렇게 수치화하고 쉬이 개선할 수 있는 거라면 좋겠지만, 문단 내에서 성범죄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연자는 알베르 카뮈의 말로 강연을 마쳤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지났다. 놀랍지만 그 뒤에도 계속해서 사건이 튀어나왔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계속 벌어지는 걸까. 가해자 입장에도 서보려 했다. 여러 가지 복잡한 관계가 얽혀 있을 것이 짐작됐다.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일을 벌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에게는 공감과 협력이라는 기제가 있다. 타인을 공감하며 아픔과 슬픔을 느낀다. 인간의 뇌는 그것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공감과 협력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도 없다. 지식이 높으면 공감력이 더 우수하다는 글을 읽었다. 다시 말해, 인간은 깊은 사고력을 갖추었기에 공감을 더 잘할 수 있다.

문학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종이에 글을 채운다. 감각에 섬세한 사람들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 어리석음이 안타깝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의 과정을 떠올려보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범죄를 목격한 이들이 진실을 함께 알리면서 확대됐다. 다시 말해 미투 운동은 권력관계에 의한 피해와 집단 구조를 고발하는 고발장이면서, 피해자와 그들에 공감하는 이들 중심으로 연대가 일어난 운동이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린 김현진씨 같은 이가 있었으므로 그 후에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이 용기를 내고 그에 연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직 자신의 사연을 공개하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도 용기를 줄 것이다. 많은 사회 운동이 이런 양상으로 발전해왔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여성 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 흑인 인권 신장을 부르짖었던 흑인 민권 운동, 백정들의 신분 해방 운동이었던 형평사 운동 등도 그러했다. 연대는 사회를 변화하게 한다.

공감과 협력에서 비롯한 연대는 공동체를 중요하게 만드는 기제다.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의 권리를 돌아보는 일은 공동체의 핵심이다. 정부와 정책만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사회 약자들을 두루 살피고, 서로에게 온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인간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앞으로도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미투와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그 지난한 싸움에 누군가의 희생이 덜 생겼으면 좋겠다. 김현진씨의 명복을 빈다.

최유안 소설가

최유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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