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나들이] 라라의 숲으로 오세요

2026. 4. 2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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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 '닥터 지바고'를 보며 지바고와 사랑에 빠진 라라의 노래를 들으며 얼음장 같은 책상에서 라라를 위해 시를 쓰는 지바고 같은 남자를 얻고 싶었다.

서른 살 때 '닥터 지바고'를 보며 라라를 사랑한 지바고의 시는 아름다웠으나 지바고를 기다리며 시든 당근을 먹던 토냐의 부른 배는 참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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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사진평론가

사랑에는/근원의 것이 있다

천진한 것들/활기있는 것들

환한 생의 빛다발

스무 살 때 '닥터 지바고'를 보며 지바고와 사랑에 빠진 라라의 노래를 들으며 얼음장 같은 책상에서 라라를 위해 시를 쓰는 지바고 같은 남자를 얻고 싶었다. 서른 살 때 '닥터 지바고'를 보며 라라를 사랑한 지바고의 시는 아름다웠으나 지바고를 기다리며 시든 당근을 먹던 토냐의 부른 배는 참 슬펐다. 마흔 살 때 '닥터 지바고'를 보며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사랑일까 살아있음일까. 역사일까 목숨일까. 오십 무렵 '닥터 지바고'를 다시 보며 아름다운 라라와 라라를 사랑했던 지바고와 라라를 부르다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지바고와 떠나버린 지바고를 사랑했던 토냐와 무서운 역사와 사람들이 굳게 믿어 의심치 않던 신념이 어디에서 연유했을까 생각했다.

우리 동네 어귀에 새들이 깃드는 작은 숲이 있다. '라라의 숲'이다. 길목 어귀는 세 갈래로 갈라지고, 곧 5월이 되면 다시 무성한 잎들 우거지고 겨우내 잠들었던 뭇 벌레들도 어디선가 찾아들겠다. 새로운 사랑을 위하여 새들 어디론가 날아오르고 여린 나무들 서로들 비비대고, 뿌리 깊은 곳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잊어버린 물길 부지런히 찾아 나설 것이다.

사진수업 때문에 한병철 교수의 '에로스의 종말'을 꺼내 보았다. 한병철 교수는 에로스를 "유일무이한 현대인들의 나르시시즘을 깨뜨리는 도끼"라고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인간에게서 고유한 본성을 내려놓고 그에게 타인의 본성을 불어 넣게 한다. 누가 몸과 영혼이 따로 있다고 말했을까. 에로스는 아름다움 속에서 사랑이 생성되도록 영혼에 자극을 주고 충동질을 한다. 에로스에서 에너지를 얻은 영혼은 아름다운 행위를 욕망한다. 에로스는 존재의 뿌리를 흔들어 놓고,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킬 수 있는 강렬한 에너지로 작동한다. 에로스로 촉발된 사랑은 한 인간을 전혀 새롭고 신선한 세상을 만나게 한다. 삶의 밑바닥을 뒤흔드는 힘, 이성을 잃어버릴 만큼 아득한 힘, 에로스의 충동과 자극으로 가난한 연인들도 용기를 얻고, 놀랍고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으로 세상은 환한 꽃밭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의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첨단 시스템화된 사회에서 자기 동일성의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자에게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너에게서 나를 찾을 뿐이다. 넘치지 않는, 광기에 빠지지 않은 즐기는 사랑을 원한다. '고통과 열정' 대신 '심장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 흥분'을 원한다. 올더스 헉슬리가 이미 90여 년 전 예견했던 '멋진 신세계'의 사랑방식이다. 신세계의 사람들은 아이를 갖지 않는다. 우울해질 때는 부작용이 없는 소마 1g을 먹고 행복해지면 된다. 가상의 사랑을 나누고 남녀의 만남은 3개월 이상 지속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연인이란 없다. 신세계의 사랑은 신성한 에로티즘을 구경거리로 만든다. 놀랍지 않은가. 1930년에 쓴 상상의 이야기가 오늘날 현실을 말하고 있으니.

초현실주의 리더 앙드레 브루통은 에로스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힘을 보았다. "인간과 우주에 값하는 유일한 예술, 그를 별보다 더 멀리 이끌어 줄 수 있는 예술은 에로티즘이다.

에로스는 언어와 현실의 시적 혁명을 위한 매체다." 문명이 주는 쾌락과 물질적 조건에 안주하는 신세계를 저주하며 '신과 자유와 선과 병을 앓을 권리와 고통"을 원했던 야만인 세계의 존은 한 여자를 사랑할 이유를 외친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예술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자유와 선을 위해 불행해질 권리와 온갖 고민에 시달릴 권리를 원합니다." 아울러 그는 사랑 때문에 잠 못 드는 고통스러울 권리도 원했을 것이다. 5월, 사랑하기 좋은 시절이다. 이정희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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