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구로공단…스무살의 아빠를 만나다 [왜냐면]

한겨레 2026. 4. 27.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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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흔, 나는 남편과 '역사 지식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에 도전했다.

아버지는 그 척박했던 시절의 구로공단에서 어떤 공기를 마시며 청춘을 보냈을까? 장남이라는 무게를 안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책장 너머의 활자들이 갑자기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굴뚝 연기 가득했던 구로공단은 이제 거대한 빌딩 숲 '지(G)밸리'가 되었지만, 나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40여년 전 걸었을 그 땅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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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동은 논밭에서, 공장들이 밀집한 구로공단을 거쳐 이제 거대한 빌딩 숲 ‘지(G)밸리’로 변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오민정 | 게임회사 직원

올해 마흔, 나는 남편과 ‘역사 지식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에 도전했다. 학창 시절 그저 암기 과목일 뿐이었던 역사책을 마흔 문턱에서 다시 펼치니, 누군가가 치열하게 살아낸 거대한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다.

교재의 그 대목을 읽을 즈음, 공교롭게도 삼촌으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다. 1978년 10월, 5형제 중 장남이었던 아버지의 스무살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서울 구로공단에서 근무하다 잠시 고향에 내려가 휴식을 취하던 참이었다.

전태일 서거 후 8년이 흐른 시점. 아버지는 그 척박했던 시절의 구로공단에서 어떤 공기를 마시며 청춘을 보냈을까? 장남이라는 무게를 안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책장 너머의 활자들이 갑자기 아버지의 거친 손마디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2021년 구로에 있는 게임회사에 입사했다. 굴뚝 연기 가득했던 구로공단은 이제 거대한 빌딩 숲 ‘지(G)밸리’가 되었지만, 나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40여년 전 걸었을 그 땅으로 출근한다. 매일 지나는 회사 건물 로비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서 문득 아빠에게 묻고 싶어진다.

“아빠, 구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혹시 아빠가 땀 흘리던 그 일터였을까?”

“아빠, 나 어느새 아빠가 하늘로 떠난 그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

어린 시절, 아빠는 유독 작고 말랐던 나를 보며 늘 걱정이 많으셨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 2학년이던 2001년, 아버지는 마흔넷의 나이에 아내와 세 아이를 두고 서둘러 세상을 떠나셨다. 5형제의 장남이자 다섯 식구의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 차마 떼지 못했을 발걸음을,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가는 딸은 비로소 눈물로 짐작해 본다.

시대는 변했지만, 이곳 구로는 여전히 누군가의 열정이 치열하게 피어나는 곳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당신이 젊은 시절 고생하며 일구었던 이 터전으로 나를 이끄신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 터전 위에서 딸이 이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걸까.

이제 나의 출근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 아버지가 스무살에 마셨던 구로의 공기를 공유하며, 나는 오늘도 아버지가 곁에서 보내는 묵직한 응원을 등에 업고 씩씩하게 걸음을 옮긴다. 역사책 속에 갇혀 있던 아버지는 오늘 나의 일터에서 이렇게 다시 살아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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