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수 힘들게 늘려놨는데..."유럽서 늑대 18마리 연쇄 독살”

정도영 기자 2026. 4. 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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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국립공원에서 일주일 만에 늑대 18마리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개체수 증가로 농가가 피해를 입는 일이 늘어나자 불법적인 독살도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해당 조치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의가 치열한 가운데, '야생동물 보호를 위한 비용과 위험을 지역사회가 떠안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탈리아 국립공원 일주일 만에 늑대 18마리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 WWF Italy)

일주일 만에 18마리 사망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아브루초·라치오·몰리세 국립공원에서 지난 4월 중순부터 일주일 사이 늑대 18마리가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처음에는 공원 내 두 곳에서 각각 5마리씩 10마리가 확인됐고, 이후 수색 범위를 넓히는 과정에서 공원 내 다른 구역들에서 8마리 사체가 추가로 나왔다. 국립공원 당국이 공식 확인한 폐사 개체는 총 18마리다.

첫 발견지 중 한 곳 현장에서는 독이 든 미끼가 확인됐다. 공원 당국은 늑대 외에 여러 종(여우, 말똥가리 등)이 같은 구역에서 동시에 폐사한 점을 근거로 다른 지역의 사인도 독살로 보고 있다. 현재 정확한 원인을 가리기 위한 부검이 진행 중이다. 

관할 검찰은 '동물 부당 살해' 혐의로 수사를 개시했다. 담당 검찰은 현지 언론에 "늑대와 곰은 이 지역의 상징"이라며 "이들의 죽음을 가볍게 다루지 않겠다. 살인 사건에 준하는 방식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자연기금(WWF) 이탈리아 지부는 이번 사건을 "지난 10년간 가장 심각한 자연범죄"로 규정했으며 "기소 시 민사 원고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공원장 루치아노 사마로네는 첫 발견지 중 한 곳에서 한 무리 전체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개체 몇 마리를 잃은 게 아니다. 생태계 차원의 타격"이라며 "독살은 가장 비겁한 방법으로 늑대뿐 아니라 여우, 개, 다른 야생동물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인다"고 지적했다. 이 공원에는 갈색곰의 아종으로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마르시칸 곰도 서식한다. 현지 국립공원과 검찰은 추가 피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암브루초 국립공원의 늑대 (사진 Matteo Tommasi/Parco Nazionale d'Abruzzo Lazio e Molise)

개체수 증가로 농가와 갈등 빈번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늑대 개체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EU 전역에 약 2만 마리가 서식하는데 그 중 3500여 마리가 이탈리아에 있다. 1970년대만 해도 이탈리아 전역에 늑대는 약 100마리에 불과했고 사실상 멸종 위기였다. 정부가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포획을 금지한 이후 개체수가 꾸준히 늘어 북부 스위스 국경지역인 알프스에서 반도 남쪽 끝자락 칼라브리아까지 서식지를 넓혔다.

개체수가 늘면서 농촌 지역의 가축 피해도 증가했다. 늑대 서식지와 가축 방목지가 겹치는 면적이 넓어진 탓이다. 정부가 피해 농가에 지급하는 보상액은 연간 200만~300만 유로(약 34~51억 원)에 달한다. 이탈리아 환경보호연구원(ISPRA) 야생동물 담당 피에로 제노베시는 "농축산업계 일부 극단적 세력이 이번 같은 불법행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EU 차원의 정책 변화도 배경에 있다. EU는 2025년 늑대의 보호등급을 '엄격 보호'에서 '보호'로 낮췄다. 늑대 개체수 증가에 따른 농민들의 압력이 주된 이유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이를 강하게 지지했다. 그는 2022년 자신이 키우던 조랑말이 늑대에게 물려 죽은 일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등급 하향으로 늑대 관리권한은 각 지역으로 넘어갔고 조건부 포획의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WWF는 "이 결정이 불법 포획에 대한 심리적 허용선을 낮췄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 직전에도 중부 토스카나에서 늑대 2마리가 살해·훼손된 채 발견됐다. WWF는 두 사건을 잇따라 언급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범죄적 흐름"이라고 규정했다.

아브루초 국립공원은 인간-늑대 공존 측면에서 이탈리아 내 모범 지역으로 꼽혀 왔기에 이번 사건의 충격이 더 크다는 반응이다. 공원 측은 가축 피해 발생 시 시장가격 기준으로 신속하게 보상하고 공원 인접 구역 피해까지 보전해 왔다. ISPRA의 제노베시는 "그런 지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더 큰 허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번성 위한 비용 부담, 지역공동체가 떠안아"
야생동물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는 가축보호견 (사진 Marius Berchi/WWF)

야생동물 보호와 개체수 증가로 가축 등 재산피해가 늘어나면서 포획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는 한편 불법 포획으로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는 비단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야생동물 서식지와 생활반경이 겹치는 곳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갈등이다. 

네팔 치트완 국립공원 일대에서는 인도코뿔소가 1970년대 초 약 100마리에서 현재 700마리 가까이 늘었다. 코뿔소는 공원 경계를 넘어 인근 농경지와 마을까지 들어오고, 주민과 마주치는 빈도가 늘면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코뿔소 공격으로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밭에 들어와 작물을 먹고 있는 코뿔소를 쫓아내려다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사망한 농부의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여전히 코뿔소가 출몰하는 숲 인근에서 거주하며 일한다고 한다. 보호종이기 때문에 포획할 수도 없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갈등의 비용이 불균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이다. WWF와 유엔환경계획(UNEP)의 공동 보고서는 "야생동물 번성의 혜택은 전 세계가 누리지만 그 비용은 야생동물 인근에 사는 지역공동체에 집중된다"고 지적한다. 피해 농가 입장에서는 가축 한 마리를 잃으면 연간 소득의 상당 부분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이러한 '보복성 포획'이 종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되며 이전까지의 보전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수십 년에 걸친 보전 노력의 결과로 늑대와 곰 같은 대형 육식동물이 유럽 전역에서 개체수를 회복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갈등 때문에 그 성과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최상위 포식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소장은 "늑대가 농가에 주는 일부 피해만을 따질 게 아니라, 최상위 포식자가 없을 경우 그 하위 동물 수가 과하게 많아져 발생하는 피해도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축이나 초식동물이 많아져 발생하는 홍수나 토양의 피해도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