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과 나무, 시트러스와 플로럴 향까지, 봄에서 초여름 남자의 향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즌, 그루밍에 남다른 센스를 지닌 남성들은 경쾌한 코롱(Cologne)이나 그에 가까운 프레시한 향기를 선택한다. 2026년의 봄과 초여름, 남자의 향기 품격을 완성할 해답은 바로 가벼움의 미학이다.
특히 이번 시즌 향기 트렌드는 상쾌함에 녹색 자연을 더한다. 흙내음과 젖은 나무의 향, 그리고 은은한 스모키함이 조화된 베티버(Vetiver)의 재해석, 생생한 허브, 그리고 성별의 경계를 허문 관능적인 플로럴까지, 2026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남자의 존재감을 향기로 돋보이게 할 세련된 향을 시향해본다.

올 봄의 돋보이는 향은 베티버다. 크리드(Creed)의 ‘와일드 베티버(Wild Vetiver)’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파리의 상징적인 하우스 크리드가 내놓은 이 신작은 베티버를 나무 향과 함께 베르가못과 핑크 페퍼 향을 시작으로 이슬 맺힌 야생 정원의 문을 여는 듯한 향으로 이어진다. 뒤이어 터져 나오는 제라늄과 장미향의 조화는 베티버 특유의 흙내음 위에 우아함을 더한다. 잘 재단된 린넨 수트를 입고 숲속을 거니는 남자를 연상시키는 향이다.

시트러스 계열에서는 톰 포드의 ‘타오르미나 오렌지(Taormina Orange)’가 돋보인다. 시칠리아의 태양 아래 펼쳐진 오렌지 나무 전체를 병 속에 압축해 넣은 듯한 이 향수는, 과육의 달콤함과 함께 잎사귀의 쌉싸름과 나무껍질의 거친 질감까지 담아냈다. 초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시작될 무렵의 지중해 해안가로 순간 이동시키는 듯한 향이다.

파리의 세련된 밤을 상징하던 딥티크의 ‘오르페온(Orphéon)’은 2025년 오드 퍼퓸(EDP)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 오드 뚜왈렛(EDT) 버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기존 오르페온이 연기 자욱한 재즈 클럽의 심야를 노래했다면, 새로운 오드 뚜왈렛은 해가 지기 직전, 황금빛 햇살이 비치는 테라스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재즈 선율 같다. 유즈와 그린 만다린의 상큼함이 가미되어 한층 가벼워졌고 특유의 시더우드와 머스크의 잔향은 여전히 지적이고 매혹적이다. 낮에는 오피스 향수로, 저녁에는 가벼운 데이트 향수로 손색없는 향기다.

2026년 남성 향수 시장의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플로럴’이다. 이제 꽃향기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프레데릭 말(Frédéric Malle)의 ‘콩트르 주르(Contre-Jour)’는 지중해의 태양을 머금은 이모르텔 꽃을 중심으로, 꿀처럼 진득하면서도 스파이시한 향기를 내뿜는다. 여기에 가미된 장미향은 우아하면서도 반항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꽃향기를 기피하던 남자라도 이 향수의 크리미한 샌달우드와 만나면 그 세련된 깊이감에 매료될 것이다.

피렌체의 오래된 정원 속 거대한 오크 나무를 테마로 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퀘르시아(Quercia)’는 라벤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야생의 풀밭에서 갓 뜯어낸 듯한 라벤더 특유의 생동감이 살아있다. 투명한 용기 속 초록빛만으로도 리프레시를 느끼게 한다.

이솝의 ‘비레르(Viere)’는 무화과를 중심으로 허브 향이 가미되어 있으며, 베르가못의 상큼한 시트러스 향으로 시작해 차분한 녹차와 쁘띠그레인의 조화로 이어진다. 무화과의 은은한 달달함은 우디하고 아로마틱한 베이스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다. 독특한듯 편안한 향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주말 향수다.

말린앤고츠(Marlin+Goetz)의 ‘카나비즈’ 오드 퍼퓸은 신선한 초록빛에 은은한 스파이시함과 섬세한 플로럴 시트러스 향이 더해져 있다. 베르가못과 페퍼 향으로 시작해, 은방울꽃과 목련의 부드러운 꽃향이 어우러진다.

이렇게 봄과 초여름의 남자 향수는 좀 더 투명하고, 자연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향기를 지니고 있다. 태양이 더 뜨거워지기 전, 향기로 기억하게 할 가볍지만 존재감이 큰 향수를 선택해보자. 베티버의 야생성을 선택하든, 시칠리아 오렌지 나무의 상큼함을 선택하든, 편견을 깬 우아한 플로럴 향을 선택하든, 중요한 것은 그 향기가 남자의 일상과 잘 조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에 집중하는 사무실에서 야외 파티와 주말 데이트까지, 활기찬 향기와 함께할 때 남자들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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