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 실린 ‘여성’ 보러 간다”…국립중앙도서관, 근대 잡지 80종 전시

이유진 기자 2026. 4. 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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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1일까지 ‘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특별전
27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모던 매거진-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관계자가 시인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가 수록된 잡지 \'\'여성\'\'의 1938년 3월호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처음 발표된 곳은 잡지 ‘여성’ 1938년 3권 3호였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또한 1948년 10월 문예지 ‘학풍’에 실렸다. 근대 초 한국의 잡지는 백석 같은 ‘힙스터’의 사상과 예술을 담는 ‘뉴미디어’였다.

‘여성\' 3권 3호. 이 잡지에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처음 발표됐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국립중앙도서관(관장 김희섭)은 사단법인 한국잡지협회(회장 백동민)와 공동으로 28일부터 6월21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특별전을 연다. 이 행사는 1896년 첫 발행된 독립협회의 기관지이자 한국 최초의 잡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가 창간 130돌이 되는 해를 맞아, 근대 잡지와 문화를 살펴보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3·1 운동 직후 일제가 ‘문화정치’로 통치술을 변경하여 조선인 잡지 발행을 허용한 뒤 천도교 청년회의 월간종합지 ‘개벽’ 창간호(1920)가 나왔다. 그러나 이 잡지는 창간과 동시에 일제 당국에 압수됐고 발매 금지를 당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제의 붉은 검열 자국이 선명히 남은 ‘개벽’ 창간호와 함께 창간 1주년 기념호를 전시한다. 근대미술의 거장 김환기가 표지와 삽화를 그린 문예동인지 ‘삼사문학’, 백석이 편집에 참여한 ‘여성’을 비롯한 근대 잡지 80종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에서 여는 ‘조선의 힙스터 아카이브\' 포스터.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전시는 총 3부로 나뉘는데, 1부 ‘잡지의 탄생, 민족의 탄생’에서는 한국에서 발간된 최초의 근대 잡지 ‘대조선독립협회회보’(1896)를 포함해,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만든 ‘친목회회보’(1896), ‘학지광’(1914)도 선보인다. 친목회 회보의 경우 대조선독립협회회보에 몇달 앞서 발간되었으나 일본 자금에 의해 만들어져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므로 한국 최초의 잡지로 인정되진 않는다. 일본으로 간 유학생들이 조선어 잡지를 펴낸 이유는 검열을 피해 우회적으로 민족 담론을 유포하고 정치적 발언을 시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밖에도 최남선이 설립한 최초의 민간 출판사 ‘신문관’에서 근대 국민의 씨앗이 될 청소년의 계몽을 위해 펴낸 ‘소년’(1908), 1922년 창간된 뒤 사회주의 사상으로 발매가 금지되고 필화 사건까지 모질게 겪은 사회주의 잡지 ‘신생활’도 전시된다.

2부 ‘모던과 낭만의 시대’에서는 1920년대 근대적 본격 대중문화를 이끌었던 ‘모던 걸’, ‘모던 보이’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문예 동인지 ‘창조’(1919), ‘폐허’(1920), ‘백조’(1922)와 함께 근대 여성의 해방을 꿈꿨던 잡지 ‘신여성’(1923), 그리고 방정환이 천도교 기반으로 만든 최초의 본격 아동 잡지 ‘어린이’(1923) 등이 관람객을 만난다. 잡지 ‘어린이’가 한글을 사용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소개하는 등 어린이를 권리를 가진 인격체로서 존중하려는 내용을 담았다면, ‘소년’은 애국과 계몽을 위한 근대적 주체 만들기 담론이 주를 다뤘다.

대조선독립협회회보 2호(1896. 12). 130년 전 창간된 독립협회의 기관지이자 한국 최초의 잡지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개벽 창간호. 1920년 6월 발행된 이 잡지에 빨간 색으로 그려진 메모는 낙서가 아니라 일제의 검열 자국이다. 국립중앙도서고나 소장본 ‘개벽\' 창간호는 ‘호외’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개벽 창간 1주년 기념호. 호랑이 표지가 유명하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3부 ‘대중잡지 전성시대’에서는 어려운 이론이나 무거운 사상보다 흥미와 재미를 강조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잡지들을 선보인다. 본격 대중오락잡지로서 인기를 끈 ‘별건곤’(1926), 상업성과 정보성을 결합한 ‘삼천리’, 동아일보사가 만든 월간지 ‘신동아’(1931), 조선일보사가 만든 ‘조광’(1935) 등도 볼 수 있다. 근대 초 한국의 잡지는 사상과 뜻이 맞는 동인지 형태가 다수였으나 1930년대엔 대중성이 강화되었고, 작가들이 선택한 전위 예술 실험의 장으로 변모했다. 특히 김환기의 권두화가 수록된 민족문학 문예지 ‘문장’ 창간호(1939)와 일제에 의해 강제폐간된 폐간호(1941) 또한 눈길을 끈다. 김민영 학예연구사는 “친일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폐간호’를 명시한 최초의 잡지”라고 평가했다.

또 이와 함께 1918년 나혜석이 자전적 색채를 담은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한 ‘여자계’와 1926년 사회주의적 계급 의식을 바탕으로 창간한 아동잡지 ‘별나라’ 등의 잡지도 선보인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나만의 잡지 표지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넣은 잡지 표지를 만들고 사진을 뽑아갈 수 있다.

27일 오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연 개막행사에서 김희섭 관장은 “문학 청년들의 치열한 사유와 신여성들의 뜨거운 갈망이 낳은 기록물들은 오늘날 인공지능이 학습해야 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자 가장 인간적인 지성”이라며 “조선의 ‘힙스터’들이 던진 질문들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 4권9호.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삼사문학 5호. 김환기가 표지그림을 그렸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삼사문학 5호. 김환기가 그린 삽화를 담았다. 본문의 서체도 아름답다.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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