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들은 뒤, 제주로 갔다”… 마지막이 아니라 곁에 남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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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서두르는 일이 멈췄습니다.
그 요청이 닿은 곳이 제주관광공사였습니다.
그 말은 더 보태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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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를 꺾고 바다를 걸었다… 남은 건 ‘어디’가 아닌, ‘누구와 있었는가’

끝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서두르는 일이 멈췄습니다.
대신 방향을 바꿨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있느냐.
담관암 4기 판정을 받은 이용숙 씨(60). 딸 박수아 씨(39)는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이었습니다.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제주를, 마지막 여행이 아니라 같이 머무는 자리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 요청이 닿은 곳이 제주관광공사였습니다.

■ “같이 있고 싶어요.”
사연은 국민신문고에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제주에 가보지 못하셨어요. 마지막으로 가족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설명은 필요 없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가 아니라, 누구와 있어야 하는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제주관광공사는 사연을 검토한 뒤,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같이 지내는 방식
제주관광공사는 서귀포 남원읍 신흥2리 동백마을 체류 공간 ‘동백언우재’를 내어줬습니다.
이용숙 씨 가족 다섯 명은 3월 29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제주에 머물렀습니다.
일정을 채우는 대신, 하루를 같이 보냈습니다.
아침을 같이 맞고, 저녁을 같이 넘겼습니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동이 아니라 머무는 방식으로도 여행은 이어질 수 있다”며 “이런 시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 허리를 숙였다가, 잠시 멈췄다
이들이 제주에서 한 일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관광지를 돌고, 마을 주민들과 고사리를 꺾고, 바다 모래사장을 걸었습니다.
그 가운데 이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허리를 숙였다가 다시 몸을 펴는 데, 잠시 멈춰야 했던 때. 누군가는 먼저 가려 하지 않았고, 옆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여행은 달라졌습니다.
누가 어디를 더 보는지가 아니라,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느냐가 먼저가 됐습니다.

■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곳
이용숙 씨는 제주에서 보낸 날들을 “가족과 함께하며 나누지 못했던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서로에 대한 유대도 더 깊어졌다”며 “조용한 곳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어 감사했다”고 돌아봤습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와 있었는지가 남았습니다.

■ 카름스테이가 보여준 것
이들이 머문 동백마을은 2023년 유엔 세계관광기구가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운영되는 ‘카름스테이’는 마을에 머물며 주민의 삶을 함께 경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들어가 함께 지내는 형태입니다.
이 씨 가족의 한 달은 그 취지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드러났습니다.

■ “엄마 오래오래 사랑해”
‘마지막’을 생각하고 시작된 여행은, 그렇게 남지 않았습니다.
고사리를 꺾고 바다를 걸으며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렇게 함께 있었습니다.
남은 건 길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엄마 오래오래 사랑해.”
그 말은 더 보태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이 한 달을 무엇이라 부를지 쉽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였습니다.
그때, 그들은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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