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죽는다" 위기의 혼다가 증언하는 것

최진홍 기자 2026. 4. 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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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짐 싸는 혼다코리아
EV 전환 실패와 중국발 제조 혁명의 이중 충격

일본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혼다가 한국 시장에서 짐을 싼다. 한때 수입차 1만대 클럽을 최초로 열었던 브랜드가 역사의 마침표를 찍고 대전환의 제물이 되어 스스로의 운명을 마감하는 순간이다. 

전기차 전환 시기를 놓친 일본 완성차 업계의 구조적 위기, 중국 전기차(EV) 업체의 가파른 부상, 고환율이 만든 수익성 압박이 한꺼번에 쓰나미처럼 몰려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지홍 혼다코리아 대표. 사진=최은총 기자

"사요나라"
혼다코리아는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12월 말을 기점으로 한국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 사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2003년 판매법인 설립 이후 23년 만이다. 모터사이클 사업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사륜차의 깃발은 내린다.

이지홍 혼다코리아 대표이사는 "환경 변화와 환율 변동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 방향을 신중하게 검토해왔다"며 "2026년 말 한국에서 자동차 판매 사업을 종료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혼다 자동차를 사랑해 주신 고객과 딜러사들께 감사드린다"며 "판매 종료 후에도 차량 유지관리 서비스, 부품 공급, 보증 대응 등 애프터 서비스는 지속하여 고객에게 가능한 한 불편함을 드리지 않도록 책임감 있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혼다코리아는 2001년 모터사이클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고 2004년부터 자동차 사업을 펼쳤다. 

쾌속질주 그 자체다. CR-V와 어코드, 오딧세이, 파일럿 등을 앞세워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정점은 2008년이었다. 연간 1만2356대를 팔며 수입차 최초로 '1만대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은 어떨까? 격세지감의 연속이다. 당장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1951대에 그쳐 2008년 6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전년 대비로도 22% 급감했다. 올해 1분기에는 211대를 파는 데 머물렀고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0.6%로 떨어졌다. 출범 이후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은 10만8600대다.

부진의 1차 원인으로 환율이 거론된다. 실제로 이지홍 대표는 "혼다코리아의 모든 자동차는 100% 미국에서 들어온다"며 "과거와 비교해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러 강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일리있는 말이다. 26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477.5원대를 기록하는 등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에서 생산해 한국으로 들여오는 구조에서 환율 급등은 곧바로 수입 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가뜩이나 줄어드는 판매량 위에 마진까지 깎이는 구조였다.

다만 환율은 방아쇠일 뿐 본질은 따로 있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라인업 노후화와 전기차 부재, 하이브리드 부문에서 토요타에 밀린 점, 2019년 한일 갈등 당시 불매운동의 충격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한 점이 누적된 결과다. 2019년 8760대였던 판매량이 이듬해 3056대로 무너진 뒤 회복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한편 혼다의 철수는 한국 시장에서 일본차가 겪어온 잔혹사의 연장선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스바루가 진출 3년 만에 철수한 데 이어 2020년 한국닛산이 짐을 쌌다. 인피니티도 그해 함께 떠났다. 나아가 이번 혼다의 결정으로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차를 파는 일본 브랜드는 사실상 토요타와 렉서스만 남게 됐다.

다만 혼다코리아는 닛산이나 스바루 사례와 결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인 자체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모터사이클로 사업을 좁히는 구조 개편이라는 설명이다. 혼다 모터사이클은 지난 3월까지 누적 약 42만600대를 판매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 40%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는 "모터사이클은 일본과 베트남, 태국 등 세 곳에서 생산해 수입하고 있다"며 "여러 통화가 섞여 있어 환율 변동이 서로 일부 완충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자동차에 비해 환율 영향을 덜 받는다는 현실적 판단이다. 회사는 "서비스 유지 기간은 법적으로 8년"이라며 8년 이상 애프터서비스를 책임지겠다는 방침을 함께 밝혔다.
사진=혼다

본사가 흔들린다, 69년 만의 첫 적자 위기
혼다 전체의 분위기를 봐도 분위기가 우울하다.  실제로 혼다는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에 최대 6900억엔(약 6조1500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일부 매체는 영업손실만 5700억엔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57년 상장 이후 69년 만에 처음 맞는 연간 적자 가능성이다. '기술의 혼다'에 따라붙던 자존심에는 큰 흠집이다.

손실의 진원지는 전기차다. 

혼다는 지난달 북미 시장용으로 준비하던 전기 SUV '혼다 0(Zero)'와 세단, 아큐라 RSX 등 핵심 전기차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이 과정에서 8200억~1조1200억엔의 추가 비용과 1100억~1500억엔의 투자 손실이 반영될 예정이다. 관련 구조조정 비용은 장기적으로 최대 2조5000억엔(약 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소니와 함께 만든 합작사 소니·혼다모빌리티의 전기차 '아필라' 개발도 중단 수순을 밟고 있다.

자율주행 일정도 후퇴했다.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혼다는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주행 기술 '내비게이트 온 오토파일럿(NOA)' 적용 시기를 2027년에서 2028년으로 1년 미뤘다. 당초 NOA를 처음 탑재할 예정이던 북미 전기차 개발이 중단되면서 일정이 함께 밀린 것이다. 테슬라가 이미 양산차에 NOA에 상응하는 기능을 적용하고 비야디(BYD) 등 중국 업체들도 표준 기술로 채택한 상황과 비교된다.

판매 현장의 균열은 중국에서 가장 선명하다. 당장 혼다의 중국 생산량은 2020년 정점 대비 약 60% 감소해 지난해 68만대로 떨어졌다.

판매량은 5년 연속 하락하며 64만대 수준이다. 중국 광둥성 황푸 공장은 6월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고 동펑자동차와의 합작 공장 운영 종료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황푸 공장 한 곳만 멈춰도 혼다 전체 가솔린 생산능력의 약 20%가 사라진다.

미베 도시히로(三部敏宏) 혼다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은 위기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베 사장은 최근 중국 상하이 부품 공장 시찰 후 "우리는 이들과 싸워 이길 가망이 없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매에서 물류, 조립까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 '다크 팩토리'가 일상화된 중국 제조 현장의 충격이 컸다는 후문이다.

혼다만의 문제도 아니다. 25일(현지시간) 야후 파이낸스 등 외신에 따르면 토요타의 사토 코지(佐藤恒治) 사장은 최근 업계 모임에서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전사적 생산성 혁신을 주문했다. 포드의 짐 팔리 CEO도 3년 전부터 "중국이 게임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경고하며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전 세계에서 생산된 신규 전기차 10대 중 7대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BYD는 테슬라를 추월하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올 1월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대폭 낮추기로 한 결정은 북미 시장조차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힌다.

심지어 동남아 시장에서도 일본차의 텃밭이 흔들리고 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혼다의 지난해 판매량은 17% 감소한 21만대에 그쳤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 국가들의 연료 안보 불안이 커지면서 가솔린차에서 전기차로의 이동이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빈센트 선 모닝스타 수석 애널리스트는 "혼다는 품질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자동차 시장 특성상 차별화된 수익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며 "관세 부담, 중국 판매 감소, 전기차 경쟁 확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수익성 압박이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같은 일본차여도 토요타의 결은 다르다. 하이브리드 인기에 올라타며 한국 시장에서 반등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가파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의 대응은 토요타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미베 혼다 CEO가 지난달 "일본 자동차 산업 자체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고 언급한 배경이다. 일본 완성차 7개사가 장기적으로 통합 또는 대규모 재편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사진=혼다코리아

선택과 집중 카드 "인도와 북미"
혼다는 위기 돌파의 축으로 인도와 북미를 잡았다. 인도 라자스탄주 타푸카라 공장을 전기차 생산 거점으로 키우고 약 1200억루피(약 2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도 검토 중이다. 일부 물량은 일본 등 주요 시장으로 수출한다. 2026~2027년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전기 SUV '0 알파'를 준비하고 2030년까지 인도 시장에 SUV와 전동화 모델을 포함해 10종 이상의 신차를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북미에서는 전략의 무게중심을 다시 하이브리드로 옮긴다. 글로벌 판매의 47%를 의존하는 시장인 만큼 단기 수익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카이하라 노리야 혼다 부사장은 "기존 전기차 중심의 자원 배분 방식을 재검토하고, 2020년대 후반까지 새로운 하이브리드 모델을 최대한 빠르게 출시해 단기 수익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와 동시에 한국과 같이 수익성이 떨어지는 시장은 정리하는 방침이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지홍 대표가 밝힌 "경영 자원을 보다 중점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표현이 정확한 좌표다. 한국 시장은 전기차 라인업도, 하이브리드 경쟁력도, 환율 방어막도 모두 부족한 곳이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혼다의 한국 철수가 국내 완성차와 부품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다. 특히 내연기관 설비의 연착륙 대책과 함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 중국 전기차에 맞설 가격·기능 경쟁력 확보에 늦을 경우 언제든 혼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차는 과거 가성비와 내구성의 대명사였으나, 이제는 독일차의 프리미엄 이미지와 국산차의 압도적 편의 사양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며 "혼다의 이번 철수는 단순한 한 기업의 포기가 아니라 일본차가 한국 시장에서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