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조용한데 카톡방만 시끄러웠다"

임창균 2026. 4.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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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심장 광주·전남 박탈당한 선택권
지인 권유, 권리당원 가입 60대 경숙씨
무관심속 내 손에 후보 선출 겁나기도
득표율 비공개 분통, 민주당 뽑을 수 밖에
광주 북구에 사는 민주당 권리당원 이경숙(68·여·가명)씨가 핸드폰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경선 관련 홍보물을 보고 있다.

“언니 혹시 지금 어디 정당에 가입 안 했지? 권리당원 한달에 천원만 내면 돼. 내가 밥한끼 맛있는 거 사 줄테니까 가입해 줄랑가?”

광주 북구에 거주하는 이경숙(68·여·가명)씨는 지난해 추석이 끝나고 10월 말쯤 걸려온 전화 내용을 지금도 선명히 떠올린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최정애(64·여·가명)씨의 전화였다. 이 동네로 이사오고 알고 지낸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

정애씨도 고향 친구 부탁으로 권리당원에 가입했는데, 주변에 추천할 사람을 찾다 경숙 씨까지 흘러온 모양이었다.

경숙씨는 사실 그동안 구청장이고, 광주시장이고 자기 손으로 뽑아본 적이 없었다.

‘죄다 민주당 공천 통과하면 본선에서 당선되븐디.’

이 참에 자신의 손으로 구청장이랑 시장을 뽑아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권리당원에 가입하고 12월부턴가 갑자기 이런저런 카톡방에서 그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당원 가입을 권유한 정애씨도 그 고향 친구라는 양반도, 심지어 동네에 친한 언니도 저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뽑아달라고 홍보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니 갑자기 광주랑 전남이 통합을 한다더라. 처음에는 이게 진짜 되냐마냐 말이 나오다가 일주일인가 지나니 진짜로 통합을 한단다.

이제는 광주시장에 나오던 후보뿐만 아니라 전남지사에 나오려던 후보 지지자들도 ‘초대 통합특별시장’을 뽑아달라며 이런저런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경숙씨가 궁금한 건 통합이 지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였다. 진짜 7월에 통합이 가능한 건지, 통합되면서 우리가 겪는 불편함은 없는지 등등, 이런 궁금함에도 문자와 카톡방에는 후보에 대한 홍보물만 넘쳐났다.

각자 후보를 뽑아달라는 이유는 다양했다. 지금 시장이니까, 지사니까 잘 할 거다. 여론조사가 잘 나오니 어차피 이길거다. 국회의원 많이 해서 믿을 만 하다 등 그냥 뻔한 이유들 뿐이었다.

3월로 넘어가니 문자고 카톡방이고 더더욱 어질어질해졌다. 중순쯤 되니 예비경선을 언제 하네, 카톡으로 알람이 오면 누구를 찍어야 되네 하면서 카드뉴스 같은 것도 올라왔다. 카드 뉴스안에 설명도 똑같고 숫자도 똑같았지만 후보 사진만 저마다 달랐다.

세상은 조용한데 카톡방만 시끄러웠다. 선거는 아직 두달이 넘게 남았는데 경선 땜에 당원들만 유난스럽고, 당원 아닌 언니 동생들은 누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민주당 후보 뽑을라고 당원이 됐는데, 진짜 이렇게 당원끼리 뽑은 사람이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당선되는 게 맞는 건가.

‘심지어 나도 이 후보들이 어떤 사람이지 제대로 모르는데!’

그렇게 한달동안 예비경선과 본경선, 결선을 거쳐서 민주당 후보가 결정됐다. 하지만 후보간 득표율은 공개 되지 않았다.

경숙 씨가 아들한테 물었지만 이번에는 득표율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세상에 결과도 안 알려주는 이런 투표가 어디 있다냐.’

그런데 놀랍게도 경숙 씨는 3번의 투표에서 당선된 후보를 한번도 찍은 적이 없다.

왜 나는 그를 뽑을 생각을 못했을까. 시간이 더 있었으면 나도 당선된 후보의 면목을 더 알아보고 찍었을까. 아니면 다른 후보가 뽑혔을까.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 그리고 정신없이 쏟아진 홍보물 속에 경숙 씨는 자신의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혹시 처음에 당원 가입 권유한 동생이 다른 후보를 찍어달라 했으면 선택이 달랐을까.

권리당원이 되고 시장 후보 뽑는다고 두근거린 건 잠깐이었다. 선거는 한달넘게 남았는데 이미 이쪽 동네는 선거가 끝난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그 어디서도 당선된 후보를 뽑아달라는 카톡도 문자도 안 온다. 그런데 그런 문자가 없어도 경숙 씨는 선거날에 투표장 가서 민주당 후보를 뽑아줄 참이다.

‘누구 권유도 없이 뽑는 거니까 그건 진짜 내 의지대로 투표하는 게 맞겠지. 이 동네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6·3 지방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박탈당한 선택권’ 문제를 다룬 이 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국회가 광주·전남 행정통합의 법적 근거가 되는 특별법을 통과시킨 지난 3월 이후, 본격 시작된 민주당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경선 과정의 문제점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가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사실상 한달여 만에 마무리 된 민주당 통합시장 경선을 계기로 투표 참여까지 망설이는 유권자들의 문제 제기와 고민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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