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수천명 잘린 자리, AI로 채우네요”…제약사 ‘피바람’ 이유는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6. 4. 2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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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에 사활 거는 글로벌 빅파마들
AI 도입하며 대규모 인력 감축 병행
머크·노바티스 등 고강도 구조조정
빅테크와 제휴해 혁신신약 R&D 올인
[픽사베이]
글로벌 제약 시장의 인공지능 전환(AX)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빅파마들은 인공지능(AI)을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업 운영의 핵심 엔진으로 내세워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임상시험과 연구개발(R&D)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던 제약사들이 앞다퉈 AI 기술 도입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선언하면서 업계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머크는 지난 22일 ‘에이전트 기반 AI 기업 혁신’을 추진하기 구글 클라우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향후 수년간 구글 클라우드에 최대 10억달러(약 1조4775억원)를 투자하는 내용이다. 머크는 R&D와 제조, 영업·기업 운영 전반에 구글 제미나이 기반 에이전틱 AI 플랫폼을 전면 도입한다.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이 아니다. AI가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며 비즈니스 의사 결정까지 지원하는 ‘AI 에이전틱 자율형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상이다. 데이브 윌리엄스 머크 최고정보·디지털책임자(CDO)는 “회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제품 출시 시기를 앞두고 AI를 통해 비즈니스 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공격적인 AI 투자가 대규모 인력 감축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머크는 2027년 말까지 직원 수천 명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안을 실행하고 있다. 연간 30억달러(약 4조 4325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계획이다.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는 ‘AI 빅뱅’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비만 치료제 시장의 강자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도 최근 오픈AI와 전사적 AI 도입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마지아르 마이크 두스트다르 최고경영자(CEO) 체제하에 대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있는데, AI 도입과 인력 감축을 병행하며 조직의 군살을 덜어내고 있다. 올해 말까지 연간 약 80억 덴마크 크로네(약 1조8538억원)를 절감하겠다는 목표다.

프랑스 사노피 역시 ‘AI에 의해 운영되는 최초의 제약사’를 목표로 전사적 AI 이식을 추진 중이며 R&D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등 빠르게 인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스위스 로슈와 노바티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엔비디아와 손을 잡은 제약사 로슈는 작년까지 세계적으로 약 1만개의 일자리를 줄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AI 혁신을 추구 중인 노바티스 역시 전체 인력의 10%에 달하는 8000명 규모 감축을 단행했다.

인력 감축으로 확보한 현금 유동성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기 위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독자적인 AI 인프라스트럭처 확충에 재투입되는 모양새다. 과거 수천 명의 영업 인력과 행정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고정비가 투입됐다면 이제는 그 자본이 고스란히 ‘기술 권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실제 머크는 최근 1년 새 베로나, 시다라, 턴스 등 유망 바이오테크를 잇달아 인수하며 조 단위 자금을 쏟아부었다. 자체적인 연구 인력을 늘리는 대신 이미 검증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사들인 뒤 이를 구글과 협력해 구축한 에이전틱 AI 시스템에 태워 신약 개발 성공률을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다.

글로벌 공룡들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한국 대응은 여전히 인적자원 부족과 시스템 부재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AI 인프라 경쟁력에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의약품 개발에 접목할 전문 인력은 세계 13위에 그치는 등 심각한 ‘인재 불균형’을 겪고 있다.

실제 국내 의약품 산업 종사자의 절반 이상인 54.9%가 자동화 대응을 위한 직무교육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을 만큼 현장의 위기감은 고조된 상태다. 글로벌 리더들이 AI 에이전트를 실무에 배치하는 동안 국내 업계는 여전히 기초적인 인력 수급과 재교육 문제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투자가 아니라 조직 전체를 효율화해 신약 선점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라며 “우리 정부도 개별 기업의 각자도생에 맡길 것이 아니라 규제 샌드박스 적용이나 금융 지원 등 민간의 투자 리스크를 덜어줄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을 마련해 AI 전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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