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셔터 누르는 사이 신호는 빨간불

김동환 기자 2026. 4. 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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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사포 인생 샷 성지, 관광객들에 골머리
1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인생샷을 위해 도로 한복판에서 영상이나 사진을 찍고 있다. 이중 일부는 보행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어도 촬영을 계속했다. 이곳은 인기 만화 '슬램덩크'배경과 닮아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다./김동환 기자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이름만 들어도 파도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이 작은 어촌 마을은 언제부턴가 소셜미디어 속 ‘부산 숨은 명소’가 되었다. 짙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놓은 붉은 등대, 바다를 보며 달리는 해변 열차, 그리고 바다가 액자처럼 펼쳐지는 횡단보도 한 컷, 이 세 가지가 청사포를 전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청사포 마을 초입,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놓인 횡단보도 앞. 이곳은 별다른 안내판도 없지만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인생 샷 성지’로 통한다. 스마트폰을 세로로 들면 횡단보도 줄무늬 너머로 수평선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마치 계산된 구도처럼 완벽한 장면이 펼쳐진다.

문제는 그 완벽한 구도가 도로 한복판에 있다는 사실이다.

1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인생샷을 위해 도로 한복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동환 기자

최근 이 횡단보도 앞에서는 이국적인 언어들이 뒤섞인 웃음소리와 함께,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도로 위에 올라서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 건너는 척 자리를 잡고, 카메라 앵글을 고르다 보면 이미 신호는 빨간불. 하지만 손은 여전히 셔터를 향해 있다.

인근 주민 A씨는 “저도 처음엔 예쁜 풍경이니까 이해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차가 경적을 울려도 안 비키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매일 그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불안하죠”라고 말했다.

1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해변열차를 배경으로 횡단보도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동환 기자

청사포는 충분히 아름답다. 굳이 도로 위에 서지 않아도, 방파제 끝에서, 열차 창문 너머로, 혹은 마을 골목 어귀에서 얼마든지 잊지 못할 장면과 마주칠 수 있다.

인생샷은 잠깐이지만, 사고는 평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하루하루는, 관광객의 추억보다 훨씬 오래 그 마을 위에서 계속된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신호를 지키고, 그다음에 셔터를 눌러도 청사포의 바다는 충분히 아름답다.

16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횡단보도에 사진 촬영을 위한 도로 진입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한국어,영어,중국어로 적혀 있다./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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