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과학이야기] 나노미터 세계를 보고, 알고, 재다

잠자리나 파리의 눈은 왜 그토록 넓은 시야를 가질까? 수백 개의 낱눈이 반구형으로 촘촘히 모여 이뤄진 곤충의 겹눈 구조는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그 정교한 구조를 나노미터 수준까지 선명하게 들여다보며 정확히 밝혔고, 이러한 구조는 광각 카메라와 의료용 내시경 렌즈 개발에 응용되고 있다. 또 치과에서 사용하는 금속 임플란트가 오랜 사용 끝에 부러졌을 때, 그 파단면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반복적으로 힘을 받아 생긴 피로 균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처럼 주사전자현미경은 자연의 신비를 밝히고 우리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까지 생활 속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람의 눈은 약 0.1 mm보다 작은 것은 구별하기 힘들다. 광학현미경으로 더 작은 세계를 볼 수 있지만, 빛의 파장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가시광선을 사용하는 한 약 200 nm(나노미터) 이하는 아무리 렌즈를 좋게 만들어도 흐릿해진다. 이를 넘어서는 해답이 바로 주사전자현미경이다. 주사전자현미경은 빛 대신 전자를 사용한다. 30 kV(킬로볼트)로 가속된 전자의 파장은 약 0.007 nm로, 가시광선(400 nm)보다 5만 배 이상 짧다. 파장 길이만으로 비교하면 100 m 운동장을 5 cm 눈금자와 1 μm(마이크로미터) 눈금자로 재는 차이쯤 된다. 덕분에 주사전자현미경은 나노미터 세계까지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 대학과 연구소에서는 물론 반도체와 이차전지 같은 국가 주력 첨단 산업에서도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스마트폰 속 반도체 칩에는 수백 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차 있고, 그 회로 패턴 크기는 수 나노미터에 불과하다. 전기차 배터리 역시 충·방전 과정에서 전극 소재가 나노미터 수준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해야 성능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주사전자현미경은 이 모든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눈'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존 장비에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표면의 생김새를 보는 데는 탁월하지만, 소재의 특성이나 성능 향상에 필요한 물성 정보는 얻기 어려웠다. 눈으로 볼 수는 있어도 그 성질은 알 수 없는 셈이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연구그룹은 주사전자현미경에 원통형 렌즈 분광기를 결합해 '반사전자에너지손실분광(REELS)' 분석이 가능한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전자가 시료에 부딪혀 튕겨 나올 때, 특히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의 미세한 에너지 손실을 분석하면 기존 방법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소재의 전자 구조와 밴드갭, 플라즈몬 특성 같은 물성 정보까지 알아낼 수 있다. 이 방식을 쓰면 시료 가공 없이 나노미터 크기 형상을 보는 동시에 물성까지 파악할 수 있다. 마치 음식을 먹을 때 눈으로 먼저 보고 이어 맛을 느끼듯이, 시각과 미각이 하나의 장비 안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또한 전자빔 전류의 안정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량화하는 핵심 기술도 함께 개발해, 반도체 패턴 선폭과 이차전지 전극의 박막 두께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측정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시장의 저울도, 병원의 혈압계도 그 수치가 믿음직하려면 국가가 정한 표준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 나노미터 세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밀한 장비라도 그 측정값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준과 이어져야 비로소 산업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 KRISS가 개발 중인 계측용 주사전자현미경(Metrological SEM)은 바로 이 역할을 맡는다. 이 장비로 측정한 나노 패턴의 크기는 국가 길이 측정표준에 소급성을 가지며, 반도체와 이차전지 기업들이 자사 장비를 교정하고 세계 무대에서 측정 결과를 인정받는 데 기준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정확하게 재고, 그 기준을 산업 현장에 나누는 일. 그 도전이 오늘도 KRISS 실험실에서 이어지고 있다. 박인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미래선도연구장비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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