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00원 시대…외환위기와는 다른데, 더 어렵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6. 4. 2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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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흑자에도 원화 약세…구조화된 고환율 국면 
신현송 신임 총재 취임, 정책 여력은 마땅치 않아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4년 임기를 마치고 4월20일 퇴임한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재임 기간 내내 원-달러 환율 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고민이 심했던 탓인지 환율 급등을 젊은 개인투자자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고, 통화량 증가가 환율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다소 신경질적인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환율 수준이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외환위기 수준 같은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 총재는 환율 수준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으며, 지금의 상황을 과거 외환위기와 직접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시지표를 고려하면 지금 상황이 외환위기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과거와 다르게 달러 유동성은 양호하고, 외화 자금 조달에도 문제가 없다. 수출은 호조를 이어가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는 4000억 달러가 넘는다. 국가 부도 위험을 평가하는 일종의 가산금리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일본이나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은 1조 달러를 넘어 2014년 순대외자산이 처음 플러스로 전환됐을 당시의 127억 달러와 비교하면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심지어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지표를 보더라도 전형적인 위기 상황은 아니다.

코스피가 사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4월23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대비 5.0원 오른 1481.0원을 기록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으면서 원-달러 환율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경상수지 흑자인데도 힘 못 쓰는 원화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달러 유출이 줄지 않는다는 점은 시장이 지금의 환율을 높다고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1230억 달러로 역대 최대였다. 사상 최대 흑자를 내는 나라가 고환율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과거 환율이 1450원 수준에 근접했던 시기는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4년 비상계엄 사태까지 단 세 차례뿐이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원화는 글로벌 '최약체' 통화로 전락했다. 지난해 연평균 환율 1422.16원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1398.39원)보다도 높은 역대 최고치였다.

물론 고환율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환율 상승은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미국의 관세 효과를 상쇄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역 의존도 75%, 에너지 수입 의존도 94%의 극단적인 대외 노출 구조를 가진 나라다. 지난 3월 원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69.38을 기록해 전월 대비 16.1% 뛰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월의 17.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수입물가는 지난해 7월 이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산원가 부담 증가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정책 대응의 여지도 별로 없다. 공공요금 관리와 가격 통제를 통해 정부가 물가 상승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물가를 움직이는 요인이 국내가 아닌 외부에 있다는 한계 때문에 정책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제어가 어렵다.

환율 급등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환율 상승은 1997년이나 2008년처럼 외화 차입 누적과 만기 불일치, 또는 외국인 자금 유출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우선 꼽히는 것은 해외투자 열풍이다. 미국에 비해 한국의 위험 대비 기대수익률이 낮다면 자금이 미국으로 흘러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수익을 찾아 해외의 주식이나 대체 자산에 투자하는 기관과 개인의 선택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원화 약세는 구조적 자금 유출 현상이다. '최약체'가 된 원화 자산에 대한 회피 심리가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기도 하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수출로 확보한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투자를 위해서든, 아니면 그저 달러를 보유하기 위해서든 수출기업의 환전 감소는 무역수지 흑자가 늘고 있는데도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결국 지금의 환율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 하락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개인과 연기금, 기업의 해외투자가 급증하면서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보다 빠져나가는 달러가 훨씬 더 늘어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증권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투자한 액수가 외국에서 한국에 투자한 액수에 비해 2000억 달러 이상 많고, 직접투자에서는 잔액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투자한 액수가 외국에서 한국에 투자한 액수에 비해 4000억 달러 이상 많다고 한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구조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미국 행정부의 압력으로 대미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한미 협상 결과에 따라 앞으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 직접 투자해야 할 금액은 10년간 2000억 달러다. 정부는 연간 200억 달러의 자금을 외화자산 운용수익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도 아니고 달러 유출이라는 사실 자체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내 달러 공급 감소와 상시적 유출 압력으로 작용해 환율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장 문제는 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한미 기준금리 역전 상태가 과도하게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리 역전은 무려 40개월 가까이 이어지며 최장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섣불리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 높은 가계부채 수준 탓에 기준금리를 올리면 서민 경제와 부동산 시장이 붕괴할 위험이 크다.

환율의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사실 환율은 경제학자들이 설명하기 힘들어하는 변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고환율 현상의 배경이 구조적이라면 원화 약세 흐름이 근본적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통화 정책의 신중하고 유연한 운영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 총재의 말처럼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하방 압력이 동시에 높아진 상태에서는 정책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신중하기는 쉬워도 유연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환율 상황이 정말 문제인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의 폭을 심하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인한 내수 침체와 고용 감소를 유동성 증가로 해결해 왔다. 과도한 금융 확장은 실물과 금융 간 괴리를 확대해 경제에 거품을 만들고 고환율을 초래한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과 독립적인 통화 정책, 환율 안정이라는 세 가지 정책 목표를 동시에 모두 달성하는 일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부작용을 생각하면 외환시장 직접 개입은 어렵고, 과도한 변동성을 완화하는 수급 관리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것이다.

더불어 원화의 국제화 추진도 장기적인 대안으로 가능하겠다. 외환시장의 24시간 개방이나 역외 원화 결제 시스템 구축은 위험 부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길게 보면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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