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향고래 출산, 이모들이 지킨다] 암컷이 이끄는 향고래 사회, 혈연관계 아닌 암컷들도 양육 도와

멸종 위기에 처한 향고래(향유고래) 출산 장면이 처음으로 포착됐다. 귀한 아기인 만큼 태어나자마자 암컷 10마리가 물 밖으로 밀어 올려 익사를 막고 포식자로부터 보호했다. 고래들이 공동 양육을 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온 것이다.
‘고래 번역 이니셔티브(CETI)’ 연구진은 “북대서양 카리브해의 도미니카공화국 앞바다에서 향고래의 출산 과정과 동료들이 갓 태어난 새끼를 보살피는 모습을 처음으로 촬영했다”고 3월 27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밝혔다.
CETI는 인공지능(AI)으로 고래 소리를 해독하는 국제 연구 프로젝트다. 지적 외계인 탐색 프로젝트인 SETI의 이름을 모방했다. 이번 연구는 데이비드 그루버 뉴욕시립대 교수와 다니엘라 러스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소장이 이끌었다.

다른 가족 암컷들도 출산 도와
연구진은 2023년 7월 평소 따로 지내던 두 가족의 암컷 11마리가 수면 근처에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론을 띄워 보니 고래들은 한 마리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한순간 수면에 피가 번졌다. 처음에는 무리 가운데 있던 암컷이 동료에게 공격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물 밖으로 작은 꼬리가 튀어나왔다. 향고래 출산 장면을 처음으로 촬영한 순간이었다. 향고래 출산은 34분 동안 진행됐다. 연구진은 출산과 그 직후 공동 양육 과정까지 확인했다. CETI 연구진은 드론이 찍은 영상에서 고래마다 다르게 표시하고 이동 방향과 역할을 AI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고래들이 갓 태어난 새끼를 수면으로 밀어 올려 첫숨을 쉴 수 있도록 돕고, 다른 포식자로부터 보호하는 행동을 파악했다.
새끼가 태어나자마자 암컷 고래들이 주위로 모여들어 교대로 새끼를 수면 위로 떠받쳐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왔다. 새끼는 꼬리지느러미가 완전히 펼쳐지기까지 몇 시간 동안은 부력을 얻지 못한다. 암컷들은 그사이 새끼가 가라앉아 익사하지 않도록 도왔다. 새끼가 태어나고 18분 뒤 들쇠고래가 나타나자, 향고래 암컷들은 방어 행동도 보였다.
연구진은 영장류가 아닌 동물에게서 동료가 낳은 새끼를 돌보는 행동을 관찰된 것은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공동 교신 저자인 셰인 게로 캐나다 칼턴대 겸임 교수는 “향고래 사회는 암컷이 이끌며, 지식이 세대를 이어 암컷 사이에 공유된다”며 “할머니가 손자를 낳는 딸을 돕고, 혈연관계가 아닌 암컷들도 돕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고 말했다.

AI로 고래 소리에 담긴 뜻 해독 중
향고래는 몸길이가 15m이고 몸무게가 50t에 이르는 대형 고래다. 범고래나 돌고래처럼 이빨로 먹이를 무는 이빨고래류 중 가장 크다. 덩치가 그렇게 큰 고래지만 인간에겐 무력했다. 18세기만 해도 전 세계에 110만 마리 이상이 살았지만, 상업적 포경이 확산하면서 1880년 29%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급 향수에 쓰는 용연향(龍涎香)과 고래기름을 얻으려고 남획한 결과다. 용연향은 향고래 장내 분비물이 뭉쳐져 배출된 것으로, 최고급 향수의 향 고정제로 사용됐다.
과학자들은 출산 과정에서 집단행동과 의사소통을 이해하면 멸종 위기 종인 향고래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미 CETI 연구진은 향고래 소리를 해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앞서 2024년 러스 교수 연구진은 카리브해에 사는 향고래 소리를 녹음하고 AI로 분석해 기본음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알파벳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러스 교수 연구진은 향고래 소리를 해독하는 원래 연구를 위해 수중 음성 녹음 장비도 설치했다. 이날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분만이 시작될 때나 다른 고래가 새끼를 위협할 때 향고래들의 발성 양식이 눈에 띄게 변했다. 출산 과정이 끝나자, 향고래들의 발성은 평소 발성으로 돌아왔다.
인간처럼 위급한 순간에 나누는 대화와 평상시 대화는 달랐던 셈이다.
물론 저자들도 인정하듯이, 향고래의 출산 과정을 관찰한 것이 처음이므로 이번 결과를 일반화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전에는 고래같이 바다에 사는 동물은 접근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드론이나 수중 마이크, AI 같은 첨단 기술이 도입되면서 연구가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래 박치기도 드론으로 첫 포착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향고래의 박치기가 바다에서 처음 포착된 것도 첨단 기술 덕분이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의 알렉 버렘 박사 연구진은 “2000~2002년 북대서양 아조레스제도와 발레아레스제도에서 향고래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치는 모습을 드론으로촬영했다”고 3월 23일 국제 학술지 ‘해양 포유류 과학’에 발표했다.
향고래는 19세기부터 선박을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졌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이 1851년 발표한 소설 ‘모비딕’에서 포경선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주인공이 바로 향고래다. ‘모비 딕’의 모티브가 된사건은 미국 포경선 에식스호의 침몰이다. 27m 길이의 범선인 에식스호는 1820년 11월 20일 남태평양에서 향고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세인트앤드루스대 연구진은 북대서양에서 드론을 띄워 향고래를 추적했다. 3년 연구 끝에 향고래들이 서로 들이받는 사례를 세 건 포착했다. 두 사례는 어린 수컷으로 추정되는 개체 간 충돌로 추정되며, 한 번은 수컷이 머리로 암컷의 몸통을 들이받은 사례였다. 힘은 수컷이 암컷을 공격한 사례가 가장 컸다. 암컷의 몸 중심선이 눈에 띄게 밀려날 정도였다.
연구진은 향고래가 왜 박치기를 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가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컷 간 경쟁이다. 실제로 이번에 박치기한 고래는 대부분 수컷이었다. 다른 가능성은 고래들이 박치기를 놀이로 한다는 것이다. 어린 고래가 자라서 겪게 될 경쟁이나 구애, 성적 행동을 연습하고 준비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는 다른 포유류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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