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대 공연장서 동시에 울린 K팝… “여기 지금 한국?”

4월의 마지막 주말인 지난 25~26일 일본 수도권의 ‘3대 대형 공연장’인 도쿄 국립경기장, 닛산 스타디움, 도쿄돔이 K팝 팬들로 가득 찼다. 트와이스, 동방신기, 에스파의 무대를 보기 위해 약 40만명의 인파가 도쿄 일대에 몰려들었다. 이날 3곳 공연장은 10대 소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K팝 팬들이 좌석을 메웠다. 한국 가수와 일본 가수를 구분하지 않는 K팝이 일상이 된 현장이었다.
“20년이라는 시간, 제 인생 절반 이상을 여러분과 함께해 왔네요.” 25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시 닛산스타디움에 선 동방신기(일본명 토호신키·TVXQ)의 외침에 현지 관객 6만5000여 명이 환호를 쏟아냈다. 노래 ‘아이덴티티’를 부르자 관객들은 떼창과 함께 그룹명을 연호했다. 이 노래는 지난해 동방신기가 ‘일본 데뷔 20주년’을 맞아 개봉, 현지 박스오피스 8위에 오른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주제가기도 하다. 동방신기는 이틀간 13만명 관중 앞에서 20주년 마무리 공연을 펼쳤다. 도쿄에서 약 1시간가량 떨어진 이곳은 현지 최정상급 가수만 설 수 있는 야외 공연장. 2010년 유노윤호(본명 정윤호·40)와 최강창민(심창민·38) 2인조로 재편된 동방신기는 2013년 이곳에 해외 가수 최초로 입성했고, 이날까지 세 차례 단독 공연을 열며 ‘해외 가수 최다’ 공연 기록을 추가했다. 요코하마시는 이번 공연을 기념해 ‘코스모클락21’ 대관람차에 동방신기 상징인 붉은색 곰 ‘TB짱’ 모양의 조명을 점등했고, 불꽃놀이·포토 스폿 등을 마련해 도시 전체를 ‘동방신기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이날 일본에서 공연을 펼친 K팝 가수는 동방신기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최대 공연장이자 일본 가수들에게도 ‘꿈의 무대’인 도쿄국립경기장(최대 수용 인원 약 8만명)에는 트와이스가 해외 가수 최초로 입성해 공연을 가졌다. 일본 국민 가수로 가는 첫 관문인 도쿄돔(5만5000명)에선 에스파가 25~26일 이틀간 약 9만4000명 관객과 함께 이곳에서 세 번째 콘서트를 가졌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매체 엔카운트는 “일본 내에서도 드문(매즈라시이·珍しい) 현상”이라며 “관동권 5㎞ 이내 대형 공연장이 전부 K팝” “여긴 지금 한국?” 등 현지 반응을 뉴스로 전했다. 일본어권 한류 전문 매체 코레포는 “같은 기간 도쿄 게이오 아레나에서 열린 데이식스 공연까지 더하면 주말 관동권에만 40만 명 팬이 몰렸다”고 분석했다.
25일 오후 1시 도쿄 신주쿠구 도쿄국립경기장. 트와이스 공연이 5시간이나 남아 있었지만, 이미 팬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침 10시부터 와서 사진도 찍고 분위기를 즐기는 팬들이 많았다. 최대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형 공식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그간 스맙(SMAP), AKB48 등 일본 최정상급 가수들만이 공연한 곳이다. 트와이스는 이곳에서 25·26·28일 사흘간 회당 8만석 규모(사흘간 24만석) 무대를 이어간다. 콘서트에 온 팬은 주로 10~20대 여성이었고 남성과 가족 단위 팬도 보였다. 2017년 일본에 진출한 트와이스는 현지 ‘오지상(おじさん·아저씨)’들도 이름을 알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후에키테(30·회사원)씨는 “카라, 소녀시대 때부터 K팝을 좋아했고, 그 덕분에 김치도 잘 먹는다”며 “K팝은 J팝보다 춤이나 노래를 더 완벽하게 해내는 느낌”이라고 했다. 여고생 사쿠마(17)양은 “초등학생 때부터 지효를 좋아했다. 항상 최선을 다해 춤을 추는 모습이 좋다”며 “2만엔 정도 하는 티켓은 엄마가 사주셨다. 한국 드라마나 한국어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도쿄돔 앞은 걸그룹 에스파를 보러 온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로 20대 여성과 남성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니가타에서 아침부터 신칸센을 타고 3시간 걸려서 왔다는 남성 카세가와(26·회사원)씨는 “윈터를 좋아해 에스파 공연만 5번 정도 봤다”며 “에스파 오시카츠(팬 활동)는 제게 살아갈 이유다. 덕분에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카리나 팬이라는 여대생 미사(22)씨는 “K팝을 좋아하고, 한국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며 “한국 여행도 한번 가봤고, 한국어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팬들은 한국 아이돌 그룹을 마치 일본 가수들처럼 여기고 있었다. 일본의 3대 공연장에서 동시에 한국 가수들 노래가 울려 퍼져도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전문가들 사이에선 “4차 한류가 완전히 정착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겨울연가’와 ‘욘사마’로 대표되는 1차 한류(2003~2007), K팝 아이돌이 J팝 아이돌을 넘어선 2차 한류(2008~2015), K팝을 계기로 한국 패션·화장품·음식 등에 관심을 갖게 된 3차 한류(2016~2020)에 이어 이제는 한국의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선 국적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 ‘탈한류’라는 느낌마저 받았다. 트와이스 5년 팬이라는 아오야마(22·회사원)씨는 “오로지 나연만 좋아해왔다. 모든 게 다 귀엽다. 트와이스 공연만 3번 봤다”면서 “한국에 대해선 애초에 좋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문화도 익숙한 편이라 트와이스 팬이 됐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트와이스 10년 팬 사토(18)양도 “한국 음식은 잘 먹지만, 그 외 더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별로 없다”고 했다.
한류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K팝 팬덤이 세대를 이어가기도 했다. 2005년 일본 무대에 처음 데뷔한 동방신기의 경우, 남편과 손녀의 손을 잡고 함께 온 60대 여성 팬부터 20대 팬과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 관람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현지에선 K팝의 약진이 일본 공연 시장 전체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일본 음악 평론가 시바 도모노리(柴那典)씨는 지난해 현지 기고문을 통해 “2024년 1~3월 도쿄돔 공연은 총 33회로, 팬데믹 직전인 2018·2019년 같은 기간 대비 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구 쟈니즈(일본 대표 보이그룹 사무소) 그룹이 30~40%를 차지하던 도쿄돔 공연 구성이 다변화된 배경 중 하나는 K팝 활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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