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안중근' 어디 숨겼나…116년의 미스터리, 단서는

조봄 기자 2026. 4. 2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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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투데이 이슈 
일제가 철저히 숨긴 안 의사 묘소 
유해 발굴 조사도 성과 없어 
日 기자 르포서 결정적 단서 발견 
민관 협력단 출범 후 첫 토론회 
李 대통령 관심 속 성과 낼지 주목

#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서거 직전까지도 대한독립만을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일한 부탁은 바로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1909년 10월 26일)한 지 5개월 뒤인 1910년 3월 26일, 안 의사는 순국했다. 형제들에게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안 의사가 순국 전 중국 뤼순 감옥의 일본인 간수에게 써 준 獨立(독립) 유묵. [사진 | 뉴시스]
■ 116년 간 미이행된 유언= 그러나 영웅의 유언은 116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유해가 묻힌 위치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일제는 안 의사를 사형한 후 봉분 없이 평장을 하고 나무 묘표마저 세우지 않았다. 혹여 묘소가 '반일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죽은 안중근'마저 일제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2005년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에 합의한 이후, 2008년 한중 합동으로 뤼순(여순)감옥 서쪽 원보산 지역에서 합동 발굴을 추진했다. 이어 중국 단독으로도 같은 해에 인근 소포대산 지역 등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관동도독부와 조선통감부 등에서 작성한 사형집행보고서와 당시 신문 기사 등을 통해 뤼순감옥 묘지, 일명 '동산파東山坡' 지역이 매장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단서 정도만 확보된 상태다. 하지만 동산파 지역에서도 어디를 발굴해야 하는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고, 발굴 조사를 하려면 북한의 동의를 받아오라는 것이 그간 중국의 입장이라 조사가 원활하지 못했다.

■ 李 대통령이 되살린 불씨 = 다행히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APEC 정상회의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고, 지난 1월 중국 국빈 방문 때도 이를 재차 요청하면서 재조사의 기반이 마련됐다. 지난 3월 18일에는 국가보훈부를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민관 협력단'이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발굴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사료 전문가 이규수 강덕상사료연구원 원장이 최근 1910년 9월 10일 자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기사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당시 안 의사의 재판을 지켜봤던 고마츠 모토고(小松元吾) 기자가 순국 6개월 뒤 뤼순감옥 현장을 답사하며 생생한 르포르타주를 남긴 것이다.

이 원장이 공개한 기사에 따르면 일제는 안 의사를 일반 죄수 매장 깊이(약 1.2m)보다 훨씬 깊은 지하 약 2.1미터(7척) 아래에 묻었다. 묘표도 비석도 없었다. 혹시 모를 발굴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기자는 '잡초 아래 (안 의사를 안치한) 침관 크기라고 인정할 만한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지상에 드러내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는 지워진 안 의사의 이름 대신, 그 주변에 함께 묻힌 이들의 이름을 기록해 뒀다.

■ 기적같은 '인간 좌표'의 기록 = 안 의사의 무덤 바로 옆과 앞 열에는 다롄에서 환전상을 살해한 일본인 강도범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와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그리고 중국인 사형수들의 무덤이 인접해 있었다.

안 의사의 기록은 의도적으로 지워졌을지 몰라도, 일반 형사범인 이들의 재판 기록과 매장 보고서는 일본이 자료로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의 묘지 위치를 확인한다면 안 의사의 유해 위치를 수미터 내로 좁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고마츠 기자는 당시 교도소장이 붙여준 안내자와 함께 안 의사 묘소를 찾아가면서 '감옥으로부터 약 10정(약 1㎞) 떨어진 묘지' '정면에는 기병영 터가 거의 흙담이 완전한 형태로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이라며 생생한 좌표를 그려뒀다.

이규수 원장은 '통일뉴스'에 쓴 기고문에서 "(기사에 나온) 지형지물을 역추적하고, 기존의 얕은 지표 조사가 아닌 지하 2.1m의 두꺼운 소나무 관을 대상으로 하는 심층 지표투과레이더(Deep GPR) 탐사 장비를 투입해야 한다"고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또 "일제의 검열을 피해 진실을 남겼던 고마쓰 기자의 고향 일본 고치현(高知縣)을 비롯해 전면적인 조사를 실행하고, 파편화한 비공식 기록들을 온전히 짜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모두를 설득해야 하는 작업 = 하지만 묻혀진 기록들, 특히 안 의사 묘소 주변에 매장된 사형수들의 공식 기록을 확보하려면 일본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또 매장지 일대를 지표조사하려면 중국 정부의 양해도 필요하다.

여기에 무엇보다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안 의사의 고향은 황해도여서, 유해가 발굴되어도 어디에 모실지를 놓고 합의가 쉽지 않다. 효창공원에 세운 안 의사의 가묘假墓는 주인을 수십년째 기다리고 있지만, 북한이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그야말로 모두를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다. 유해 발굴의 물꼬를 다시 튼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관계기관들이 외교력과 협상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국가보훈부는 27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위한 국회·범정부 추진과제 마련 국회토론회'를 열고 국회와 범정부 협력체계를 본격 가동한다. 국가보훈부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봉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외교부, 통일부가 공동 주최하는 토론회다.

서울 용산구 효창원 내 안중근 의사 빈 무덤에 안중근 의사 손도장 대형 걸개그림이 설치돼 있다. [사진 | 뉴시스]
■ 협력단 발족, 첫 대규모 토론회 = 토론회에서는 먼저 임성현 한·중 민간상설위원회 사무처장이 유해 발굴의 연혁과 함께 향후 추진 방향을 발표한다. 이어 지질·발굴 전문가인 손정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와 사료 전문가 이규수 강덕상사료연구원 원장, 그리고 정부 부처에서는 이제복 국가보훈부 보훈예우정책관, 강영신 외교부 동북·중앙아시아국장, 강연서 통일부 사회문화협력국장이 참여한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봉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공동대표인 김성원 국회의원과 정태호 국회의원, 운영위원인 박덕흠·송기헌·허영·김용만 국회의원, '안중근의사숭모회' 회원 등 60여 명이 참석하는 이 자리는, 민관 협력단 발족 직후 열리는 첫 대규모 토론회다.

권 장관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유해발굴 추진을 위한 실질적 동력을 확보하고, 앞으로 국회·정부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체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116년 전 뤼순의 차가운 흙 속에 묻힌 영웅의 유언을 받들어, 그가 그토록 바라던 대한독립의 완성을 보고할 그 날은 올 것인가.

조봄 더스쿠프 기자
sp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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